한국 사찰 사적기(事蹟記)에 관한 나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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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 진옥
1989년 10월 92호
불교는 한반도에 들어와서 이 땅에 뿌리내리면서 우리의 토양에 맞는 불교가 창출되어 한민족과 함께 호홉해 내려왔다. 그래서 한국 불교사를 연구하는 것은 불교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사를 연구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한예로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는 불교사이기도 하거니와 바로 우리 민족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사학을 정립하는 데 있어 불교사는 매우 중요하며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불교사 연구에 있어서 이미 발굴된 기본적인 역사적 자료도 중요하지만 불교사의 장(場)이 되어준 사찰의 역사는 더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사찰의 역사가 기초적으로 정립되지 않고서는 불교사 연구 전체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불교사의 전반이 사찰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사찰을 중심으로 문화 신앙 사상 등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꼭 역사의 중요성을 힘주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민족과 불교의 위치를 아는 데 사찰의 역사는 꼭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의 현재는 어떠한가. 지금 우리가 고찰(古刹)이라고 이름 붙이는 사찰은 그 연대만 보더라도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연대가 높은 것은 천사오백년이고 낮다고 하더라도 미국의 건국 역사보다 더 오랜 것들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냥 막연히 아무 일 없이 그 자리에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때는 민족의 역사를 주도하기도 했을 것이며, 어떤 때에는 겨레의 흥망성쇠를 같이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불교사에서 중요한 사찰의 역사가 지금까지 까마득히 묻혀있거나 역사의 관심 밖에 방치된 채로 사찰 한 귀퉁이에서 퇴락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속의 역사학자는 차치하고라도 이 땅의 숱한 불교도들이 찾아야 마땅한 자신들 선조의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 있음은 언어도단의 일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무엇을 해 왔고 어떤 가치세계를 추구하기 위해서 인생을 받쳐왔는지를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그런 사실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지금의 현실이다. 아마도 역사가 우리에게 왜 필요하며 무엇 때문에 그 역사적 사실들이 재평가되어야 하느냐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탓인 듯하다.
자신의 역사를 갖지 못한 민족처럼 불행한 민족이 있던가, 그리고 자신의 부모와 조상을 모르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불교도들이 위대한 조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하고, 훌륭한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역사마저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어느 사찰이든지 모든 사원은 거기에 있는 역사적 당위가 있으며 사상적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그저 옛날부터 있어 왔으니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가 보다 하는 정도의 이해라면 곤란하다.
요즘에는 문화재적 존재 이유만 강조하다보니 화석화된 문화재 이상으로는 사찰을 인식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관-민은 말할 것도 없고 출가자마저도 사찰을 관광 목적이나 휴식처 정도로 생각하기가 일쑤이다. 본래 사찰존립 목적과는 너무나도 상반된 개념들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모두가 사찰의 사적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비단 사찰의 역사뿐 아니라 유물이나 유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국보급이나 보물급이 아니라 하더라도 깨어진 기와조각이나 옛 스님네들이 쓰던 생활용구 같은 작은 것일지라도 그 속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최근대의 것이라l하더라도 그런 사적이나 유물은 잘 보관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몇 년 전에 보았던 유물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 가볼 때 어느새 없어진 것을 보고 아연해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뿐더러, 집을 보수하면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벽화를 없앤다든지 연대가 낮은 탱화라고 쉬이 없애 버리는 작태는 심히 우려할 만한 일이다.
또한 심각한 문제는 유물의 도난 사건이다. 특히 이즈음에 들어, 어디든 차가 들어가면서부터 스님네의 부도와 사찰의 석등, 탑 할 것 없이 무엇이든 돈이 될 만한 것이면 그 문화적 가치를 벌어 전문적으로 팔아 넘기는 절도단어 횡행하고 있으니,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유물이지만 더 이상 소홀하게 방치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부도라면 스님네의 무덤인데 그것으로 자신의 정원을 장식하는 소품으로 쓰는 이 땅의 재벌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으며, 탑은 바로 부처님의 몸을 상징하는데 이것을 장식물로 착각하고 있는 이 땅의 졸부(卒富)들의 무식함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의 미공개도 큰 문제이다. 역사적 자료는 개인의 재산이기 이전에 역사적 문화적인 민족 전체의 재산임을 인식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소장가들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거나 학문적 역사적 사업을 위해서는 언제라도 공개하여 보다 많은 사회적 공헌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재들이 치부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현실은 역사를 인식하는 데에 오히려 큰 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제까지 흩어져 있는 불교사적이나 유물, 유적 등은 사찰자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에 보다 많은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본다.
자꾸만 불교사를 사회가 잘못 알고 있다고 불평만 하지말고 우리가 발굴하고 정리하여 그들이 바로 알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따라서 이젠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일을 포기하거나 남에게 전가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불교도가 자신의 역사를, 역사적 문화적 유물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취급하거나 훼손한다면, 그 어느 뉘가 불교 문화재를 보호하고 보존할 것인가, 우리의 정신문화를 스스로가 무시함은 이때까지 찬란하게 이어져 내려온 불교문화에 크게 역행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인식해야겠다.
이미 잘 알려진 자료들도 있지만, 우리의 인식 밖에 있는 많은 유물들 가운데서 아직도 눈 밝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묻혀 있거나 역사적 의의를 발견해내지 못한 사원의 유물은 얼마든지 더 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안목과 시각으로 자신 속에 있는 참다운 보물을 찾아내는 일과 이미 보물이 된 것을 잘 보관하여 불교적 유산으로 남기는 일이다.
조그만 자료들이 모두 모여 총체적으로 새로운 평가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사원의 역사적 진실은 그 속에 사는 스님네들 손으로 다시 정리되고 또 가려진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일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작은 자료들이라도 놓치지 않고 정리를 잘 해두면, 이것이 모여서 한국불교사와 한국사의 골격을 이루게 될 것이다. 건축, 탱화, 벽화, 불상, 현판, 그밖의 불구류 들, 비록 그것이 최근에 이루어진 것들이라도 잘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과거 조상들은 이런 기록에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앞섰던 것 같다. 사적기를 정리한것도 그렇고 중수비, 공적비, 사적판, 상량푼 등의 기록들은 거의 빼지 않고 해놓은 것을 우리 후인들은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잦은 전쟁으로 아까운 문화유산을 많이 잃었다. 특히 다른 민족의 침략으로 잃어버린 문화유산의 수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유물은 외국으로 반출되었고, 나라 안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것마저도 관리 소홀로 유실되고 있다. 심지어는 주지가 무식하여 고 탱화를 없애버리고 조잡한 요즘 탱화로 바꾸어 버린다든지 현판이나 중수기를 불쏘시개로 만든 예도 있으며, 극성스런 기독교인들이 국보급 탱화나 벽화에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리는 등 그 파괴가 극심한 형편이다.
따라서 현존하는 유물의 보존을 위해서도 사적기는 필요하다. 사적기를 만드는 데에 전문인력이 필요하겠지만, 전문인력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우선 그 사찰의 주지나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고 사적기를 만든다면 시간적 여건이나 제반 조건이 전문가들보다 더 유리하리라고 본다. 물론 한편으로는 사찰내의 전문인력의 양성에도 힘써야 한다.
이번에 흥국사의 사적을 정리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 함께 했던 수군 승병들의 활약상이 밝혀져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의승 수군 400명의 활동이 비교적 상세히 드러나 감격이 컸다. 더구나 이 사실이 이제까지 방치되었던 사료에서 비로소 밝혀졌다는 데에서 놀라움과 함께 가슴 가득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수행자들이 추구하는 진여세계가 결국 연기세계를 기본으로 하듯이, 지고한 진리의 세계도 현실과 사실을 떠나서는 이룰 수 없다. 그러할진대, 사회 현실에 대한 참여와 관심에 앞서서, 우리 불교 내부의 당면현실인 불교사의 발전-이는 민족사의 발전이기도 하다-을 위하여, 그 기초가 되는 사적기의 정립부터 선행하여 내부의 충실을 기하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하루 빨리 발굴해내어 빛을 보게 해야 할, 보물과 같은 묻혀진 자료들이 너무나 많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