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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참담한 초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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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트 - 한승원 1990년 06월 100호
딸 둘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영동댁은 그날 회진 상설시장으로 닭 한 마리를 사러 갔다.
식은 땀을 흘리곤 하는 남편과 늘 어지럽다고 하곤 하는 큰딸한테 보를 해주고 싶었다. 작은 딸과 막내 아들도 얼굴이 창백했다. 식구들 모두가 고기맛을 본지가 몇 달쯤은 되었을 터이었다. 찹쌀과 마늘을 넣고 푹 곤 닭죽을 식구들 모두에게 먹이고 싶었다.
여느 여름철과 달리 푹푹 찌는듯이 더웠다. 태양은 산 머리에서 타고 있었다.
상설시장의 그늘 밀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 벌써 더운 김이 꽉 차 있다. 건어물 냄새, 닭전의 닭똥 냄새, 과일 냄새, 마늘과 고추 냄새들이 한데 어울려 수런거렸다.
영동댁의 눈에는 수박도 보이고 참외도 보였다. 저것들도 몇 개 사다가 식구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다른 것은 사지 말고 닭부터 사야한다. 닭전으로 직행했다. 그 상설시장의 닭전이라고 해보아야 기껏 닭 열대여섯 마리를 닭장 안에 가두어놓고 있는 가게가 둘뿐이었다.
영동댁은 호리호리한 키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여자의 가게를 외면했다. 뚱뚱하고 복스럽게 생긴 여자의 가게로 들어섰다. 복스럽게 생긴 여자쪽이 물건을 후하게 줄 듯싶었다.
“닭 좋은 것으로 한 마리 잡아주시오.”
영동댁의 말에 복스럽게 생긴 여자가 반색을 하면서 닭장 앞으로 갔다.
“오서 오시오. 내 아주머니한테 첫 마수고 허니께 기막히게 좋은 닭으로 싸게 한 마리 주께.”
그 여자가 잡아낸 것은 암닭이었다. 한데 병신 닭이었다. 어디서 모질게 다쳤는지 한쪽 다리를 쓰지 못했다. 그 닭은 닭장 안쪽으로 심하게 절뚝거리며 달아나다가 그 여자의 손에 붙잡혔다.
“그것 말고 다른 놈으로 잡아주시오.”
영동댁이 말했다. 모처럼 식구들한테 보를 해줄 닭이 병신닭이라니, 속이 꺼림칙했다. 그녀는 자식들한테는 무엇이든지 신선하고 병들지 않은 것을 먹이려 했다. 안 먹이면 안 먹일지라도 상처 입거나 병든 것은 먹이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먹이면 자식들의 몸에 이상이 생길 듯 싶었다.
“건강하고 깨끗한 놈으로 바꿔주시오.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이 맘에 안들구만요. 장차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살아갈 딸들한테 먹일 닭이요”
영동댁이 이렇게 말을 했는데도 닭을 잡아든 여자는 고개를 회회 저었다.
“아따, 뭔 소리를 그렇게 하시오. 시방 아파서 고생하고 있는 이놈한테 고생을 없애주는 것도 좋은 일이요. 그리고 이 닭을 보시요. 촌에서 잘 먹인 무거리 닭 아니요? 양계장에서 알 빼먹을 만큼 빼먹은 레구홍 닭 같은 것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요. 아무소리 말고 가져 가시오.”
그 여자는 한 손으로 날개 둘을 움켜쥐고, 다른 한손으로 목을 비틀었다. 영동댁이 재빨리 소리쳐 말했다.
“안돼요. 암만 살이 많은 닭이라도 나는 싫소. 작더라도 건강한 닭 사갈라요.”
복스럽게 생긴 여자는 영동댁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닭은 모가지를 비틀린 채 죽어갔다.
“사람이 생각해주면 생각해준 본정을 아시오.”
그 여자는 죽인 닭을 끓는 물 속에 넣었다가 꺼내서 털을 뜯으면서 말했다. 영동댁은 그 여자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 닭을 죽이기 전에 분명히 병신닭이 싫다고 말을 했는데도 억지를 써서 그 닭을 죽인 것이었다.
“나 그 닭 안사가요. 다른 닭을 잡아주시오. 병신 닭인지 알고서야 어떻게 기분이 나뻐 사가겄소?”
영동댁이 돌아서면서 뺏대었다. 만일, 기어이 그 여자가 그 닭을 팔려고 들면 다른 가게로 가겠다는 뜻이었다.
“아니, 살 많고 부드러우면 됐지, 병신닭이면 어떻고 성한 닭이면 어떻소. 그리고 그 닭이 병아리 짝부터 다리 병신인 것도 아니고, 팔려오다가 닭장 문짝에 다쳐서 그리 된 것인데 뭣이 기분이 나쁘단 말이요?”
“그래도 나는 싫소. 그 닭은 다른 사람한테 팔고 다른 성한 것을 잡아주시오. 나는 가난하기는 해도 흠있는 것은 새끼들한테 안 먹이는 사람이요.”
복스럽게 생긴 여자는 닭을 잡아 비닐봉지에 넣어 가지고 계산대 위에다 던지듯이 놓으면서 영동댁을 노려보았다.
“아나 참말이요?”
“나는 빈 말 않는 사람이요”
그 여자는 허공을 향해 웃었다.
“아첨부터 이것이 뭔 일이라냐? 첫마수거리라 싸울 수도 없고…으흠, 어쩌겄소? 내가 참을라요.”
그 여자는 안간힘을 섞어 이렇게 말을 하고는 비닐봉지의 닭을 냉장고 안에 넣어버렸다. 닭장 앞으로 가더니 영동댁에게
“잘 보고 당선 눈에 드는 놈으로 고르시오. 나 살다가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만나요”
하고 말했다. 영동댁은 눌눌한 털에 윤기가 있는 암닭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라켜 주었다. 복스럽게 생긴 여자는 그 닭을 잡아내서 목을 우악스럽게 비틀었다.
“으음, 당신은 살생을 하나 했으면 말지, 무슨 놈의 살생을 둘씩이나 하게 하고 그러시오? 아파서 고생하는 놈 목숨 끊어주는 것도 닭한테는 좋은 일인 것인다…으음.”
영동댁은 얼굴이 화끈 뜨거워졌다.
그 여자가 새로 잡아준 닭을 가지고 집으로 가면서 영동댁은 그 여자의 말이 자꾸 귀에 걸렸다.
“무슨 놈의 살생을 둘씩이나 하게 하고 그러시오? 아파서 고생하는 놈 목숨 끊어 주는 것도 그 닭 한테는 좋은 일인것인디…”
빌어먹을 년, 왜 자기 고집대로 해 놓고 내 탓으로 돌려? 누구는 병든 닭을 사다가 자기네 귀한 자식한테 먹이고 싶을까? 여자들은 병든 고기, 상처난 열매를 안 먹고 커야 장차 시집가서 실하고 깨끗한 아기를 낳는 법이라는데…빌어먹을 년, 빌어먹을 년…
한데, 집에 이르렀을 때, 뜻밖의 큰일 하나가 벌어져 있었다. 공사장에 일을 하러 나갔던 남편이 허리를 다쳐가지고 들어와 있었다. 오래지 않아서 학교에 간 큰딸이 다리를 절룩거리며 들어왔다.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져서 무릎을 찍었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무릎에는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오른손 손바닥도 찍혀 있었다.
영동댁은 남편의 허리에 찜질을 해주고 큰딸아이를 데리고 보건소로 달려가면서 “아하”하고 부르짖었다.
“무슨 놈의 살생을 둘씩이나 하게 하고 그러시오” 하던 닭전 여자의 말이 뒤통수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