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숭이의 고백-선재 후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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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여로 - 정찬주
1990년 06월 100호
녀석은 결코 기형아는 아니라네. 그렇다고 이목구비가 제대로 붙어 있는 표준형도 아닐쎄. 몸집에 비해 턱없이 큰 머리통 하며 뚜꺼비처럼 둑 불거져 나온 눈 또한 유별나다네. 어찌 보면 정말 같이 서 있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못난이라네. 우리 눈보다 무려 삼사 배나 큰 눈알 하며 못생긴 얼굴에 회초리처럼 딱딱한 꼬리 등등. 녀석의 외모를 보고 있자면 절로 웃음이 터져나온다네.
녀석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서있기만 했어. 내심 무지무지하게 떨렸을 거네. 우락부락하게
생겨먹은 우리들 앞에서 말이네.
“아주 먼 나라에서 온 한 친구를 소개한다. 이름은 선재다. 여러분의 동생뻘이 될 이 친구는 이곳 생활이 처음이라 아무래도 실수가 많을 줄 안다. 그건 여러분도 처음엔 그랬다. 아무쪼록 이 선재원숭이를 잘 돌봐주길 바란다.”
“네.”
주인아저씨의 소개가 끝나자 녀석은 그때서야 어마어마하게 큰 눈을 번쩍이더군. 주눅이 들어 있다 조금 풀리는 자세였어.
“로보트처럼 생겼군 그래.”
“전생에 안경을 썼던 모양이지 ? 눈이 큰 것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
주인 아저씨가 사라지자 우리들은 그렇게들 빈정거리며 겁을 주었다네.
“전생에 사람이 아니었을까?”
“글쎄. 사람이었다면 이곳 생활이 더욱 괴롭겠지. 여긴 원숭이만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녀석이 대담하기도 했어. 어쩜 우리들이 녀석을 겁쟁이라고 한 것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분명 녀석에겐 허약한 듯하면서도 단단한 구석이 있었거든. 결코 녀석은 우리들 앞에서 아첨 따위는 하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네. 또 어찌 보면 청정한 승려 같기도 했어. 마치도 어느 정글 속의 사원(寺院)에 들앉아 수행을 하는 승려처럼 말일쎄.
아무튼 며칠이 지나서도 녀석은 역시 마찬가지였네. 눈송이 같은 벚꽃망울이 일제히 터지기 시작하자 처음엔 신기한 듯 그 거대한 눈을 반짝이더구만. 그러나 잠깐이었어. 사람들이 몰려들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끌거렸거든. 그렇게 사람들이 북적거리자 녀석은 다시 묘한 표정으로 굳어져버리더란 말이네. 사람이었던 전생이 그리워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녀석은 사람들이 던져주는 바나나 부스러기 같은 것에도 꿈쩍을 않더군.
“하, 저놈 봐라.”
사람들은 저으기 화를 내더군. 더러는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었고, 어쩜 그런 태도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네. 먹이를 던져주는데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은 난생 처음 봤을 터이니 말이네. 그러니 녀석이 사람의 마음을 가졌는지 헷갈릴 지경이었지.
정말 녀석의 마음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네. 결국 네 놈도 별 수 없을거란 우리들의 추측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빗나가는 것만 같았네. 녀석은 처음 있을 때와 달라진 게 별반 없을 뿐이었네. 녀석은 결코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부스러기 따위에는 관심 밖이더란 말이네.
정말 우리들로서는 골치 아픈 일이었네. 녀석 때문에 기분 나빠진 주인아저씨가 우리한테까지 화풀이를 해댈 때도 있었으니까 말이네.
“원숭이는 원숭이다워야지 ! ”
하지만 그런 욕설로 녀석의 천성을 바꿀 수는 없는 문제였어. 나도 틈나는 대로 녀석을 타일러보지 않았는가.
“임마, 넌 몽상가야. 우리 푼수에 미래를 꿈 꾼다는 건 비극일 뿐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 ”
또 어떤 때는 부끄러운 내 과거까지 들추면서 이렇게 구슬려 보기도 했다네.
“나도 처음엔 그랬어. 나도 전생에 사람이었거든. 더구나 나는 부처님 제자였지. 그리고 수행을 잘못한 악업으로 이런 몸으로 다시 윤회하는 것이라네. 하지만 이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생의 일이네. 이곳도 생각하기 나름으로 극락이될 수도 있어. 결코 사람들이 우릴 해치기 위해 가두어 놓진 않았거든.”
그리고 또 어떤 때는 따귀를 갈기면서 을러대보기도 했다네. 왜 죄없는 녀석을 때렸겠는가. 녀석이 나보다 힘이 약해 그랬던 것은 아니라네. 같은 한솥 밥을 먹고 있는 동반자로서의 안타카움이 앞서 그랬던 것이라네. 녀석도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았네. 그래도 식구들 가운데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축이 나였으니까 말이네. 그런 내가 고참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녀석이 온 지도 어느덧 1년. 결국엔 녀석의 고집도 꺽이고 말더군. 다른 녀석들은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나는 느끼고 있있다네. 녀석도 이젠 살아야겠다는 어떤 의미를 발견한 것 같았어. 녀석에게 친구가 한사람 생긴 것이었네. 매주 일요일이면 꼭 한 번씩 나타나는 청년-.녀석을 바라보며 시를 낭송하는 청년-. 그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인 것 같아 보였어.
녀석은 그 청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듯 그 유난히 큰 눈을 번쩍거리곤 했다네. 또한 그 청년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녀석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
그러나 녀석과 청년과의 만남도 몇개월-. 갑자기 청년은 보이지 않게 되있다네. 그러자 녀석은 또다시 절망에 빠지려 하고 있었어. 그래 나는 다시 녀석을 타일렀다네. “다시 그 청년은 오지 않을거다. 그 청년은 너로부터 어떤 영감을 얻어내려고 찾아왔는지 모르지만 그는 시인의 꿈을 포기한 게 틀림없어.”
그래도 녀석은 고개를 흔들더구만.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일세.
“아닙니다. 그분은 제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절망하지 않는 법을 말입니다.”
그후3년-.아닌게 아니라 청년은 다시 나타났다네. 어느새 청년은 결혼도 하여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걸어나오고 있있다네. 녀석은 기뻐서 미친 듯이 날뛰더구만. 하지만 잠깐이었다네. 청년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더니 녀석은 홱 돌아서버리더구만. 나는 또 이해할 수 없었네. 마치도 뒷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찔할 뿐이있다네.
청년은 분명 행복해 보였네.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칼. 단정히 맨 붉은 넥타이. 알맞게 살이 오른 얼굴. 도무지 어느 구석 하나 어둡게 보이지는 않았다네. 게다가 옛날의 그 퀭한 눈속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써늘한 명기도 이젠 맹물 같은 기운으로 바뀌어져 있었다네.
그런데도 녀석은 그날 밤 울고 있더군. 달을 쳐다보면서 말일세. 보리심으로 가득찬 얼굴에서 이제는 술독이 오른 듯 불그스름하게 변해버린, 시인의 순수한 꿈을 버리고 일상의 꾀죄죄한 생활인으로 전락한 그를 생각하며 울고 있음이 분명한 것 같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