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오묘한 빛, 그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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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에세이 - 일진
1985년 12월 46호
구름이 일어났다 가라 앉아도 하늘은 본래 고요하고, 꽃은 피고 져도 나무는 항상 그대로 한가히 남아 있음이여(雲去雲來天本靜花開花落樹常閔)라는 게송에서 진리를 눈에 보여주듯 얼마전 앞마당에 산보다도 큰 은행나무의 장엄한 모습이 한 순간에 낱낱이 나뭇잎 하나 하나로 떨어져 내리고 거대했던 덩어리는 오롯이 그 헐벗은 가지를 다 드러낸 채 여전히 고요하게, 진실한 맨 모습 그대로 거기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이 유정(有情)이었던 무정無情)이었던 관계없이 무엇이라도 시절인연이 도래(時節因緣到來) 하는 때가 되면 섬연 각각 자기의 본 모습대로 돌아가는데 깊숙히 흐르는 자신의 소리에 귀 기우리며 그 적정(寂靜)한 고요 속에서 울리는 음향(音響)을 듣는다. 자신의 소리가 무엇인지 자신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한번 비추어 보는 거울, 그것은 본래 고요했던 하늘이요 항상 한가롭던 나무 같은 것이다.
거울은 빛깔도 모양도 없으며, 가는 일도, 오는 일도, 떨어지는 일도 새삼스럽게 생기는 일도 없는 본래의 모습이다. 그저 꾸밈없이 그 모습을 비추어 주고 있을 뿐, 아무런 노력없이 생긴대로 닿는대로 드러내 보여 주는 것이다. 무거운 쇳덩어리가 비추었다 해서 거울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것도 아니요, 아름다운 꽃이 비추어졌다해서 거울이 예뻐지거나 깨끗해 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이렇듯 거울은 정구한 시간을 통하여 무변한 공간 속에서 어느 시기, 어느 곳에 있었거나 없어지고 커지거나 작아지고 또 깨끗해지거나 더러워지는 일이 없는 삼라만상의 바탕이요、 천진스러운 우리의 마음 자리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 꾸밈없는 중생의 본바탕 마음을 일러 대원경지(大圓鏡智), 즉 마음은 크고 둥근 거울이라고 비유하여 일깨우신다.
그러기에 어느날은 술취하여 욕하고 싸우던 사람이 어느날은 다소곳이 향을 사루며 부처님께 절하는 모습을 그대로 비추어 주는 것이 거울이다. 그가 미운 짓을 했다 해서 거울이 거부하여 안비친다거나 향 사루고 절을 했으니 특별히 받아들여 예쁘게 비추는 일이 없는 거울, 거울은 참 평등한 것이다.
거울은 참 진솔한 것이다. 그래서 옛 고사(古事)에 어떤 스님이 공부 중에 「마음이 거울같으면 그것으로 만족한가」 물었더니 그의 스승이 답하기를 「거울도 먼지 투성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거울보다 더 깨끗한 것이 또 있는가」
를 다시 여쭈었더니 「거울을 깨뜨려 버리는 것이 제일」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렇다. 거울이 거울인줄 알면 그것은 이미 거울이 아니다. 거울은 스스로 거울인지 조차 모르면서 다만 거기 거울처럼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성인은 깨달았다고 해서 그 깨달음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머무는 바가 없이(無住) 그냥 자유롭게 움직일 뿐이다. 그래서 깨달은 이의 뒤에는 자취가 없다. 담박하게 흘러 지나갈 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다 비추는 거울처럼 자재로운 것이다. 그러기에 거기에는 완전한 자비의 세계, 보살핌의 세계, 관심의 세계가 뚜렷이 있을 뿐, 아무런 흔적이 없다. 둥글고 오묘한 빛이 거기 그렇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날만 새면 습관처럼 거울을 본다. 머리 모습, 얼굴, 옷매무새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울을 통하여 나를 보게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오로지 거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나의 눈, 거울을 본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자기를 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거울에 비친 또 하나의 나와 장난을 치고 점점 자라면서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좀더 예쁘지 않음을 투정하고, 어느 날은 함박꽃처럼 웃으며 어느 날은 먹구름처럼 흐려 가지고 거울 속의 나를 보아왔다.
그러나 이제 어린 아이도 아닌 거울, 젊지도 않고 더욱이 늙지도 않는 거울을 보아야 한다. 밉지도 곱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자유롭게 미울 수도 고울 수도 있는 거울을 보아야 한다. 투명하게 비추이는 그의 모습에서 그의 삶에서 나는 곧 내 삶을, 내 모습을 보아야만 한다. 진실한 맨모습의 삶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