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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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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교리강좌 - 편집실 1985년 12월 46호
보살의 나이 서른 다섯, 수행자 고오타마는 이제 석가모니불이 되어 여래로서의 자각을 얻었다. 그의 출가수행의 목적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인도에서는 어느 시대나 자기 자신의 종교적 완성으로 만족하고 구태여 이를 세상에 전하려 하지 않는 성자가 있다.
그러나 부처님에게 있어서 우선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발견하고 실현한 진리를 어떠한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 사람들을 관찰하여 사람들은 각자 능력에 따라 대체로 3종류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사람마다의 근기를 파악한 것이다.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비유컨데 물 위에 솟아오른 연꽃과 물 위에 닿을락말락하는 연꽃과 물속에 잠긴 연꽃이 그것이다. 부처님께서 법을 전하는 가장 중심적인 대상은 중근기의 사람들, 물 위에 닿을락말락하는 연꽃을 법의 기회를 주어 물 위에 피워 올리게 하는 일이었다.
바라나시는 옛날 네란자라강에서 함께 고행을 하던 다섯 사람의 수행자가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부처님 최초의 설법이 이루어진다.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사문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가지 극단의 길이 있나니, 그 중 하나는 관능(官能)이 이끄는대로 자신을 내맡겨 욕망과 쾌락의 길로 가는 것이요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길이다. 수행자는 이 두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알아야 한다. 여래는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닫고 중도에서 통찰과 인식을 얻으며 적멸과 깨달음과 눈뜸과 열반에 이르렀다”
이 양극단은 바로 부처님 자신의 체험적인 반성에서 우러난 것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은 삼법인(三法印) 팔정도(八正道) 사성제(四聖論) 십이인연(十二因緣) 등을 설하셨다.
다섯수행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곧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렀고 곧 바로 부처님께 귀의하여 제자가 되었다. 이것이 비구(比丘)의 시초이다. 뒤이어 그곳 장자(長者)의 아들인 야사스라는 청년과 많은 젊은이들이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또한 야사스라의 부모는 부처님께 귀의한 최초의 신남(信男) 신녀(信女)가 되었다.
아라한의 경지에 이른 제자들이 많아지자 어느날 세존은 제자들을 향하여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제는 떠나라. 인간의 온갖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니 이제는 편력의 길로 떠나라. 중생의 이익을 위해, 안락을 위해, 세상에 자비를 베풀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 길을 떠나라.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 내용과 이론이 갖추어진 법을 설하라. 안정하고 깨끗한 수행생활을 보여주어라. 때가 덜 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퇴보하지 않는 법을 나누어 주어라”
이리하여 아라한이 된 제자들은 각각 포교활동에 나서게 된다.
부처님은 바라나시를 떠나 간지즈강 남쪽을 건너 마가다로 향했다. 수행자 시절의 행로를 되돌아가는 셈이 된다. 가는 도중 길에서 좀 떨어진 숲 속에서 좌선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다가와 부처님께 물었다.
“이 곳에서 어떤 여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그들은 이 근처의 지체있는 집안의 자제들인데 각각 자기 아내를 데리고 숲에 놀이를 왔다. 그 가운데 독신인 한 사람이 기생을 데리고 왔는데 노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옷과 패물들을 가지고 달아나 버린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여자를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과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자기자신을 찾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진정 그러한가? 그러면 다들 거기 앉아 내 말을 들어라”
부처님이 자기를 찾는 법을 설하자 그들은 모두 부처님께 예배하고 그 자리에서 출가를 하였다.
또한 네란자라강변의 카샤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 삼형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고는 그들이 섬겨오던 불의 신을 버리고 천명의 무리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이렇듯 부처님 교단은 마가다국에서 그대로 가장 큰 교단이 되었다.
천명이 넘는 제자를 거느리고 라자가하로 가던 중, 가야산정에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을 불타고 있다. 눈에 비치는 형상이 불타고 있다. 눈에 의한 인식도 불타고 있다. 눈과 그 대상과의 접촉도 불타고 있다. 눈이 접촉하는 데서 생기는 즐겁고 괴롭고 슬픈 것들,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들도 또한 불타고 있다. 왜 모두 불타고 있는 것일까? 탐욕의 불, 노여움의 불, 어리석음의 불로 타오르고 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고 걱정하고 슬퍼하는 불로 타오르고 있다. 귀도, 귀로 듣는 소리도, 코도, 코로 맡는 냄새도, 혀도 혀로 맛보는 맛도 몸도 몸으로 느끼는 감각도, 마음도 마음의 대상도 모두 한결같이 타오르고 있다. 이를 바로보는 사람은 집착에서 떠나며 집착에서 떠나면 해탈할 것이다. 해탈을 하면 영원히 생사윤회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될 것이다”
이는 ‘타오르는 불의 법문’으로 부처님 유명한 설법중의 하나이다. 불을 섬기던 카샤무리들에게는 자기들의 눈이나 귀•코•혀•몸이나 마음도, 그러한 것의 대상도 또 그러한 것으로부터 생기는 감각이나 감정도 모두가 타오르는 불이라고 단언한 부처님 말씀이 곧 새로운 눈뜸이었다.
부처님께서 사밧티(舍衛城)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느날 한 여인이 찾아와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하였다.
“부처님, 저는 유복자를 잃고 이제는 살아갈 용기마저 없습니다. 이 슬픔에서 헤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주머니, 내게 한가지 방법이 있소. 지금 곧장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을 일곱 군데 찾아내어 쌀 한움큼씩만 얻어 오시오. 그러면 슬픔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려드리겠소”
아주머니는 바삐 마을로 내려갔으나 며칠이 지난 뒤에도 쌀 한톨을 얻지 못했다. 풀이 죽어 다시 부처님께 돌아온 여인에게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있습디까?”
하고 물으니 그제서야 여인은 부처님 말씀의 뜻을 알아차리고 슬픔에서 벗어났다.
부처님의 설법은 늘 이러했다. 듣는 상태와 때, 경우에 알맞는 주제와 비유로 만나는 사람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 지혜롭고 평화롭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부처님 스스로도 「나는 길을 가르키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마가다의 수도인 라자가하에 도착한 부처님은 빔비사라왕과 그 신하들에게 법을 설하였다.
빔비사라왕은 매우 기뻐하며
“나는 일찌기 다섯가지 소원을 세웠습니다. 첫째는 국왕이 될 것, 둘째는 내 영토에 부처님이 출현하실 것, 세째는 그 부처님을 섬기고 받들 것, 네째는 부처님이 설법을 해 주실 것, 다섯째는 부처님 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 등이었습니다. 이제 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하며 불(佛) 법(法) 승(僧) 삼보에 귀의하였다. 빔비사라왕이 부처님께 거처를 마련해 준 곳이 바로 밸루바나(竹林)이다. 이것이 바로 사원(寺院)의 시초인 죽림정사(竹林精舍)이다. 때를 같이하여 산자야종파의 이름난 사상가인 사리풋다와 목갈리나도 각각 250명의 제자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훗날, 부처님 십대제자가 된다.
한편 카필라국의 슛도다나왕은 태자가 부처님이 되어 마가다국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고는 하루 빨리 부처가 된 아들의 모습이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몇 번이나 사람을 보내었으나 번번이 부처님을 대하고는 그 자리에서 출가를 해 버린 것이다. 왕은 하는 수 없이 가장 신임하는 우다인 대신을 보내어 뜻을 전하도록 했다. 우다인도 왕의 뜻을 전하고는 바로 출가를 한다.
부처님이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카필라국을 온통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