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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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편집실
1985년 12월 46호
한국인의 사고방식 중에는 결과에 대해서만 좋은 쪽으로 생각할려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저물어가는 세월의 뒷 끝에서 우리 모두의 마음이 조금은 푸근해져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며 갈수록 살기가 힘들다. 한 해를 보내며 보살펴 주신 어른들과 어려움과 기쁨, 생의 애환(哀數)을 함께했던 이웃들에게 조그마한 정성이라도 전달하고픈 풋풋한 인정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지는 것은 각박한 현실의 탓이리라. 어느 때와 달리 올 겨울은 암담하고 혹독한 추위가 우리네 삶 깊숙이 엄습할 것 같다.
하지만 험난한 내일일지라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각고(刻苦)한 희망을 가지고 현실의 여러 어려움들과 의연하게 맞서야겠다.
내일이란 환상의 꿈을 갖고 현실의 간난을 이겨내는 과정이 바로 우리들의 뭇삶인(실존의 역사) 것이다. 역사 속에서도 뭇삶들이(民衆=衆生) 현실적 고통을 새로운 질서가 지배하는 이상향(Utopia) 의 건설로서 극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신분계급이 철저했던 이조시대의 역사적 질곡을 극복하고 신분(계급)제도로부터 삶을 자유롭게 하고자하는 노력과 바램이 홍길동의 이상향(율도국)으로 나타났으며 봉건지배 체제속에서 착취와 수탈에 허덕이던 뭇삶들이 시련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미륵이라는 구세주의 구원을 통해 용화세계에 새롭게 태어나기를 갈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극복을 위한 이상향에의 거듭남이 현실적 제조건과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인식과 실천이 결여되었을 때는 바람직한 현실극복이 되지 못하고 환상에 대한 심취와 탐닉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이러한 현상은 막연한 미래에 대한 환상 때문에 현실적 극복의지가 마취되어 버리고마는 상태인 것이다.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우리 뭇삶들의 현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어렵다. 이렇게 현실적 경제조건이 열악하기에 미래에 대한 조그마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경제적 확대재생산은 무척 어려운 형편이다. 소시민적 조그마한 꿈을 이룰 수 있는 경제적 현실조건도 제공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뭇삶들은 우주시대의 우주여행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몇몇 특수계층에 독점되어 있는 20세기의 물질적 풍요가 지금의 지구촌 모두의 것인양 착각 속에 살아가게끔 조작되어 있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전달매체를 통한 소비성향의 조작과 구매욕의 촉진이 빚어내는 소비가 미덕이라는 현실적 가치는 우라 뭇삶들을 이중적으로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소비성향의 조작을 위해 동원되는 수단의 중요한 부분이 월부금재도인데 이 월부금제도는 채무에 대한 인식을 흐리게 하고 개인의 소유만을 충동시켜서 뭇삶들에게 현실적 경제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소비성향을 자극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들의 하루하루는 환상에 사로잡혀 “세일즈맨의 죽음”처럼 그렇게 엄청난 구조와 체제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현실문제의 극복은 이상향으로 향한 변증법적 실천으로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도 현실문제의 극복을 막연한 환상으로서의 미래에 대한 간절한 바램으로서가 아니라 현실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통찰력을 먼저 갖고(苦諦) 이러한 현실문제의 원인은 무엇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인가에 대한 비판적 분석(集諦)으로 이러한 현실문제를 지금 이곳(here and now)에서부터 시작하는 역사성과 사회성을 수반한 중도적 실천, 즉 변증법적 실천(道諦)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상과 현실과의 괴리는 이상에 대한 환상과 현실에 대한 체념으로서는 도저히 그 거리를 좁힐 수 없으며 오직 현실문제에 대한 구체적 인식을 통해 역사 사회속에서 변증법적인 실천이 수반될 때 이상향은 우리 뭇삶들의 저변에 공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부처님 제자들의 이상향인 미륵의 세상은 미륵상생으로서가 아니라 미륵하생으로서 지금 이곳, 즉 예토를 정토화 하는 것으로서 가능해지리라.
겨울 강물이 깊게 얼고 있다. 올 겨울은 눈이 많다고 한다. 참담한 우리의 현실에 서설(瑞雪)이라도 푸근히 내려 우리들 피폐한 가슴이라도 조금은 따뜻하게 녹여 주었으면 하고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