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해인사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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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이행자
1986년 11월 57호
4319년 10월 25일 26일의 이틀간에 <도서출판 한길사〉에서 12회째 계속하고 있는 ‘한길역사기행’으로 이름조차도 여운이 그윽한 해인사엘 다녀왔다.
‘불교문화의 재인식’ (합천 해인사를 찾아)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차창 앞에 붙이고 우리가 서울을 벗어난 시간은 토요일인 10월 25일, 낮 2시.
나는 만추의 해인사기행도 물론 좋지만 지난 9월 7일 계속 잠만 자고 있어서 사화산인 줄만
알았던 승려들이 휴화산이었던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희열에 들떠 있었다.
승려들의 용솟음치는 힘을 개운사입구 현장에서 본 날
“이아! 역시 내가 그토록 귀가 닳도록 떠들어대는 기독교를 믿지 않고 늘 불교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살아오길 참 잘했구나! ”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데, 바로 이 불꽃이 피기 시작한 해인사로 내가 간다고 생각하니 마치 나도 그 볼꽃송이 중의 극히 자그마한 한 송이가 되어 불꽃이 시들지 않도록 하는데 한 몫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황홀한 착각을 하며 캄캄한 밤 ‘해인사’에 도착했다.
역사기행 주최자측의 인사말과 참가자들의 소개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해인사에서 교무 일을 맡고 계시는 ‘여연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나는 어느 교수의 명강의보다도 감명깊게 살 속을 파고드는 속이 시원한 이야기들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차내의 토론에서는 교수를 초빙하지 않아 불만인 분이 여러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문화가 권위주의를 벗어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느 학자가 여연스님만큼 명쾌하게 우리 불교계의 실정을 얘기해줄 수 있으며 어느 건축가가 우리의 팔만대장경이 숨쉬고 있는 〈팔만대장경각〉에 대해 그 건축구조와 자연과의 어우러짐을 그토록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다는 말인가? 그 땅을 딛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그
땅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도’ 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 바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도이고 더불어 잘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도이며 또 인간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 한마음속에 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꽤나 인상적이었다.
일제에 온갖 것을 다 빼앗기고 초근목피로 농민들이 죽지 못해 목숨을 부지해 가고 있던 일제시대 말기에.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마을마다 술 익는 냄새…”
라는 내용의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시를 쓴 어느 시인처럼, 불교가 험한 곳에서 뼈아픈 고통을 겪고 있는 민중을 외면하고 계속해서 아름다운 금수강산 꼭대기에 조용히 않아 목탁이나 두들기고, 참선만 하고 있다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 우리에게 찾아 온 날, 과연 불교가 발을 붙일 곳이 있을까?
절대로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아무리 불교 문화가 고색창연함을 자랑한다 할지라도, 그건 이미 죽은 문화인 것이다.”
부처가 모든 권위와 재물을 버리고 민중 속으로 뛰어든 것과 9월 7일의 승려대회가 무엇이 다른가?
다른 승려들은 몰라도 이 대회에 참석했던 승려들만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본받은 불도들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신자도 아닌 내가 외람되지만 불교계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9월 7일!
해인사에서 피기 시작한 수천의 불꽃송이들이 우리 강t 골고루 흐드러지게 피어 찬란한 우리 봄을 맛이하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타오르기를 두손모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