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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佛)와 보살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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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이효상 1986년 11월 57호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하나인 법 (法)이라는 말은 일반사회에서 사용하는 법이라는 말과는 의미가 다르다. 불교에서의 법은 우주의 대진리를 의미하며, 이 우주의 대진리인 법을 깨달은 성자(聖者)를 불교에서는 불(佛)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대진리를 나타내고 표현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말로써 진리를 설명하기도 하고 글을 써서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진리는 말이 없고 조용하며 있는 듯 없는 듯하며 그러면서도 그것이 영향력을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존재 전체와 생(生)을 휘어잡고 있으면서 조용히 치명적이고도 절대적인 힘을 발휘 한다. 진리는 무소부재(無所不在)로 없는 곳이 없이 있으나, 그가 그곳에 있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바가 없다. 인간이, 그가 어느 곳에나 있음을 알지 못하고, 무지와 부덕(不德)의 행을 한다 해도 진리는 그저 그렇게 조용히 있으면서 스스로 인간을 응징하고자 함이 없으되 다만 인간이 자신의 행한 바에 따라 스스로 옹정의 결과를 불러들일 뿐이다. 이것이 또한 진리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속성일 것이다.
이렇듯이 진리는 소리도 없이 우주 만물을 움직이면서 무서운 위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진리의 전 구조를 깨달아 알고 존재의 신비가 함축되어 있는 생의 전 영역을 깨우쳐 알고 있는 지를 불(佛)이라고 부른다면, 불은 존재의 신비를 알고 있는 자, 생과 멸의 숙명을 넘어선 자, 존재의 온갖 양상과 형태를 통찰하는 자일 것이며, 따라서 그는 기쁨과 슬픔의 찌꺼기를 털어버린 자, 온갖 원을 방기한자 일 것이다. 불은 존재의 깊은 신비를 알고 있고 모든 존재가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일정한 기간동안 자신의 길을 가다가 드디어는 멸하게 되는 법칙 곧 불교적 진리로서의 존재의 법을 알고 있으므로 불(佛) 자신 속에는 참으로 무한한 능력과 불가사의한 힘이 축적되어 있을 것이다.
상징적이고 방편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겠지만 실제로 여러 불교 경전들 가운데에는 불(佛)의 신비한 방편과 불가사의한 신통력에 대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무한한 능력과 끝없는 신비를 지니고 있는 불이 이 세계에서 또는 이세계에 대하여 할
수 있는 바 역할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불(佛)이 할 수 있는 수많은 역할 가운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한 가지는, 불에 인간을 어떻게 이롭고 행복하게 해주는가하는 문제보다도 불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그자체가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안도감이다.
불교 경전에는 이 세계를 고해(苦海) 즉 고통의 바다라고 했고 또 화택(火宅) 즉 불타고 있는 집이라고도 표현 했거니와, 이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그리고 불타고 있는 집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가 영원히 속수무책으로 주저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자신이 하기에 따라서는 그 가운데에서 언제라도 떨치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주는 것이다. 불타는 집 속에 고통의 바다 한 가운데에 빠져 있는 사람이 그곳에서 결코 탈출할 수가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자기 자신이 그곳에서 벗어 날수가 없다면 그것은 영원한 절망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지 이 불타는 집과 고통의 바다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고 그 방법에 의하여 이미 그곳에서 벗어난 자가 있다면, 그러한 사실 하나만으도 인간에게는 이미 커다란 구원이 될 것이다. 곧, 이 불타오르는 고통과 고뇌로부터 벗어난 자가 불교적인 의미의 불(佛)이며 그곳에서 벗어 날수 있는 방법론이 불교적인 형태의 교설(敎說)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세계에서 전개되고 있는 각자의 삶에 필연적으로 뒤따르고 있는 고통과 고뇌가, 언제고 닥쳐올 죽음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형태를 통해서 끝이 날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내포되어 있는 짧은 이해와 공감, 화평함, 작은 불꽃과도 같이 덧없이 사라지는 자디잔 기쁨들이 있다는 것은 길게 드리운 짙은 그림자와 같은 고통과 모순과 갈등 들어 정지된 고요와 화평의 세계(적정)가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증명한자(佛)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불교의 불(佛)은 인간과 단절된 상태 곧 인간이 도저히 거기에 도달될 수 없는 그런 대상이 아니고 인간 모두가 불(佛)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佛性)을 함축하고 있으며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갈이 한면은 반드시 또 다른 한면을 전재로 하고 있는 것으로 불교의 교리는 풀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불의 상태는 아직 불이 되지 못한 평범인(중생)의 상태를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볼 때에 평범인이 없이는 또한 불도 없다는 밀어 성립될 수 있다.
그러한 까닭에 불이 인간에게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가령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불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을 고양시키고 고무시키며 더 나은 경지에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여지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세계의 깊은 고통과 혼돈 속에서도 결코 선(善)의 씨앗을 잃지 않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불의 존재성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상징적인 역활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실제적인 문제이다.
한편 불교의 관점에서 볼 때에 보살은 타자(他者)를 위하여 스스로 비원(悲願)을 간직한 자라고 볼 수 있다. 보살은 타자의 슬픔을 진정 슬퍼하는 자이며 타자의 슬픔을 제거하기 위하여 자신을 불사르는 자이며, 또한 타자의 기쁨을 진정으로 기뻐하는 자이다. 불교의 해석에 따르면 보살은 불교적인 진리 곧 법의 원리를 통달하고 존재의 온갖 신비와 그 원리를 아는 자이며 생과 멸을 초월한자이지만, 스스로 이 세계의 고통속으로 곧 고통의 바다와 불타는 집 속으로 걸어 들어온 자이다. 인간의 슬픔을 제거하려는 원(願)을 품고서.
이렇듯 보살 그 자신이, 진리의 법칙에 의하여 제약받지 않는 예외자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진리의 제약을 기꺼이 받아들어는 한 존재자로서 이 세계에 걸어들어 온 이상, 그는 필경 자유로운 예속자이고 무한한 유한자이며 무한정한 한정자인 것이다. 보살은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슬픔을 진정 슬퍼하는 자, 선인(善A)의 옆에도 있어 주나 똑같이 악인(聽A)의 옆에도 있어 주는 자, 아무런 조건도 없이 모두에게 따뜻한 자인 것이다.
열반적정의 고요와 평화로부터 박차고 일어나이 세계의 고통과 혼돈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온 자로서의 보살은 그 개념이 대단히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온갖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는 보살이 ‘함께’ 있으며 고통하는 자의 옆에도 보살이 ‘함께’ 있다. 함께 있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무지를 제거하며 선을 지향하는 자를 위해서는 더욱 큰 선(善)을 행할 용기를 그리고 악을 지향하는 자에게는 악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도와준다. 보살은 인간의 외부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부에서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선의 경향을 증진시키고 불성(佛性)이 흐려지지 않도록 하며 양심과 순수가 최대한 발휘되도록 인간을 소리 없이 이끌고 인도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자신이 보살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며, 이렇게 하여 결국은모든 인간이 불(佛)이 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이 세계가 완전한 불국토가 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불사르는 자가 바로 보살이다.
보살의 원력(願力)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보살의 원력은 이 세계에 미치지 않는 곳이 밟으며 진려 그 자체의 속성에 따라서 보살의 원력은 결국에는 이 세계에 완전한 진리를 이룩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흘러 넘치듯이 선(善)의 법이 축적된 곳에는 누가 구태여 그것을 보상하고자 하지 않아도 그 결과가 오게 마련이며, 악의 법이 축적된 곳에도 역시 같은 원리가 작용하는 것이 불교적 진리인 법의 구조이다.
보살은 이러한 법의 구조 속에서 영원한 평화이며 고요한 불(佛)이 되기를 보류하고, 이 세계에서 끝없이 함께 슬퍼하는 보살로 남아 고해(苦海)와 화택(火宅) 속에서 타자를 위하여 자신의 원을 불사르는 것이다. 보살의 역할은 모든 존재자들이 고통과 무지를 뚫고 나아가가 다 함께
보살이 되고 또한 불이 되어 영원한 행복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자신을 고통의 바다에 던져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불(佛)은 모든 존재자들에게 마치 어둠속의 등대와도 같이 생(生)의 표적과 희망이 되며, 보살은 모든 존재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 속에 씨앗으로 존재하는 불성(佛性)올 열어 불(佛)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 준다.
그러므로 불은 그 존재 자체가 불의 어떤 능동적인 역할보다도 가장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으며, 보살은 모든 존재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이 저마 불을 실현하여 이 세계가불국토가 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불사르는 역할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