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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생활 속의 불교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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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 여연 1986년 11월 57호
아난다지음,여연옮김

또 다른 중요한교리가 있다. 열린 마음의 교리 곧 생각의 자유가 그것이다. 불교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연분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킬 뿐 아니라 도그마로부터도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때를 눈앞에 떠올려 보자 BC 6세기 그 무렵에는 여러가지의 종교적인 가
르침들이 성행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새로운 교리를 내놓은 여러 종교지도자들이 사람들을 자신의 종교로 더 많이 개종시키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또 그들 새로운 종교적인 움직임 말고도 그때에 이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종교(바라문교, 역주)도 있었다. 이러한
모든 종교의 이론들은

“우리는 이미 길을 발견했다.”
“이것이 정확한 길이다.”
“당신이 여기로 온다면 구원받을 것이다.”

와 같은 것들이었다.
이렇듯이 여러 종교들이 어지러이 나서고 있을 때에,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나타나셨다.

“너의 책에 있는 내용을 믿지 말라.”
“너의 스승이 말하는 것을 받지 밀라.”
“권위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결코 맹신하지 말라.”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생각하라. 그리고 깨달아라.”
“깨닫자마자 행동은 따른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가장 위대한 자유 가운데 하나인,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자유’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음을 깨우치는 매우 참신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상도 불교가 시간을 초월할 수 있게 하는 교리이며 특히 인류가 진보함에 따라 그 타당성이 확실해지는 교리이다. 봉건제도 밑에서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권리를 그렇게 주장할 수 없었지만 진보가 점점 더 많이 성취되면 될수록 우리는 스스로 생각한는 권리를 더 많이 주장하게 될 것이다. 곧, 우리는 스스로의 탐구로 여러 원리와 사실들을 철저히 검토하고 난 후 확신을 갖고자 할 것이다. 생각의 자유 이것은 침해할 수 없는 권리이다. 또한 이것은 불교가 현대와 미래에도 계속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두번째 교리인 것이다.

불교의 역할 I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인간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주장하고 싶어 하는 바를 불교가 뒷받침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할지라도 불교가 과연 올바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일까가 그것이다. 이러한 질문 제기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기장 중요한 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꾸준히 진보해 온 것은 사실이냐, 한편으로는 현대 생활의 압박이, 곧 생존을 위한 경쟁, 남보다 더 잘 하려는 경쟁, 경제에서 정치에서 문화에서 또 다른 그 무엇에서든 경쟁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들이 긴장을 불러왔음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긴장을 풀기 위해 인간은 점점 더 많은 레크레이션과 오락을 발전시켜 왔다. 이런 레크fp이션과 오락은 긴장해소에 약간의 도움밖에 주지 못하며 결국사람 늘 점점 더 심한 악순환 속으로 몰고 가는 듯하다. 긴장 때문에 사람들은 여러가지의 현생도피적인 활동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현
실 도피적인 활동은 막대한 시간을 소모하게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생존의 과정을 뒤쫓아 가기에 더 급급하게 되며, 그 결과 한층 더 심해진 긴장속에서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정치적 계몽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생활을 정상적으로 이끌어 나가기 위해 더
욱더 많은 정신안정제를 필요로 한다. 깨어 있기 위해서도 잠을 자기 위해서도 긴장을 풀기 위해서도 정신안정제를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듯 긴장이 고조되다보니 현대화의 결과로 얻은 모든 것이 필요없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른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긴장과 더불어 또 하나의 양상이 나타난다. 고된 일에서 해방된 결과로 현대인들은 더 많은 여가를 얻게 되었고 그 역작용으로 나타난 지루함에 또 다시 대체해야만 되게 된 것이다. 또 긴장이나 지루함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을 참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다른 합병 증세들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얻을수 있는 모든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근원적인 것을 잃어버렸음을 마침내 깨달아야 할 상황에 있는가?
“누가비난을 받아야 할 것인가? 과 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기술을 비난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물려받고 발달시킨 경제 구조를 비난해야 할 것인가 ”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
당신이 이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당신은 당신 스스로를 탓할 수밖에 없다고 답하실 것이다. 당신이 당신 자신의 주인이므로 잘못된 것은 모두 당신에게 그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손 안에 든 것을 놓쳐버린 것은 바로 당신 자신 때문이다. 타인을 원망하기는 쉽다.

“당신 때문에 기회를 놓쳐버렸어. 당신의 손안에서 빠져 나가버렸단 멀어야”

이렇게 원망한들 무슨 도움이 될까? 불교의 위대한점은 책임을 바로 당신에게 묻는 데에서 그치지 않음에 있으니,

“그것으로 결정되었다. 이제 죄인을 발견했다.”

라고 말하지 않고, 그 다음 장으로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인간을 구하기 위해 또는 긴장과 권태로움에 찌든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 발전되어 온 여러 종교적, 정신적, 심리적인 치료 방법들을 살펴보면, 그 수효는 매우 많으나 불교에서처럼 실제적이고 값비싸지 않은 치료법은 드물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불교도가 되면 그 순간부터 현대 생활의 긴장과 권태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겠습니까? ”

이 질문에 대답하기란 참으로 힘들다. 왜냐라면 어떤 사람도 불교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불교도라고 분류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교는 분류가 필요한 그러한 철학이나 삶의 방법이나 종교-적당한 다른 표현이 없어서 “종교”란 단어를 사용한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살던 무렵에 사람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법열을 느낄 때에 “당신께로 귀의합니다. 당신의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는 수행인 사회)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에도 자신을 불교도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요건이 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적절하며 그 가르침이 보여주는 삶의 방법대로 따르는 것이 이로움이 있다고 확신할 때에 비로소 그는 불佛), 법(法), 승(僧)에 귀의하게 된다. 이러한 내적인 확신만 있으면 어떠한 의식이나 제의(쨌義), 등록 법적인 요구조항 없이도 불교도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 훌륭한 불교 용어 번역자인 우드워드(F.L.Woodword)는 불교를 ‘스스로 하는 종교(Do-It Yourself Religion)’라 부른다. 그렇다면 자신을 불교도라고 분류할 필요가 없는 종교에서 불교도가 되기 위해 준수해야 할 규율이나 규정 같은 것이 과연 있을까? 부처님께서 가르쳤던 삶 방법을 따라야만 할까?
오늘날에 보이는 중요한 현상은 불교 사찰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불교 의식에 결코 참가해 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타당함을 깨달아 불교 교의에 맞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세상 사람들이 오로지 몇 가지 이유로 부처님께 헌신하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거의 기적이라 여길 만한 것이다.

이 글은 불교도총회 세계 협회(World Fellowship of
Buddhists General Conference ) 에서 주간한 세미나에서
현대 생활과 불교(Buddhism in Modern Life) 라는 주제로 발표한 글이다.
연사인 아난다(Ananda) 스님은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동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지금은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이 협회를 주관하고 있다.
-역자 주(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