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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을 새기던 그 정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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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일백호 기념특집 - 원철 1990년 06월 100호
원철/해인사 승가대학 학인


예전의 스님들께선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펴고자 열심히 노력하셨으며 또한 그 가르침을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참으로 많은 정성을 기울였다. 대륙에서 정진하던 구도자들은 하북(河北) 석경산(石經山)의 돌위에 일체의 경전들을 새겨놓았다. 반도(半島)에서 수행하던 스님들은 가야산 해인사의 옻칠한 나무위에 당신의 말씀을 기록해 놓았다. 섬에서 공부하던 교학자(敎學者)들은 종이 위에 불법(佛法)을 정리해 놓았다. 그리하여 뒷날 우리들은 방산석경(房山石經)이니 고려대장경이니 신수대장경이니 하는 이름들을 붙였던 것이다. 무슨 신심과 원력 그리고 정성들이었길래, 저러한 결정체(結晶體)들을 남기게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수끄러진다.
경전에 조금 관심이 있어 강원(講院)에서 몇년째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이것도 인연인지) 책 만드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거들게 되었다. 덕분에 글 한줄 메꾸는 것이 그리고 책 한권 묶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게 되었지만…
「해인」지가 100호로 이어졌다.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을 표방하는 이 집안에서 ‘외도(外道)가 아닌가? ’하는 눈총( ? )을 받아가면서도 머리를 맞대 연구하고 또 먼길도 마다 않고 뛰어다니면서 한권 한권만들어 왔으리라. 고려대장경을 새겼던 선인들의 정성과 원력을 오늘에 이어 받으려는 그 신심이 현재의 「해인」지를 있게 한 근원적인 힘이리라. 그렇다고 해서(몇호 이어지지도 못하고 슬그머니 없어져 버리는 불교집안의 다른 잡지들과 비교하면서) 이 정도에서 만족하거나 우쭐해 하지는 말자. 적어도 「해인」에게는 이 땅 불교의 제자리 찾기를 위한 목탁이 되어야 할 의무가 주어져 있고, 나아가 이 시대 문화를 주도해 가야하는 책임이 부과되어 있으니까.
앞으로도 더욱 빛나는 날들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