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 중심제 폐지하고 본사 중심제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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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9년 01월 203호
바야흐로 1999년 정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계절이 돌아왔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지난해 말 치욕스럽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추악한 분규사태를 일으킨 조계종은 특히 다른 어느 단체보다도 반성과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할 입장에 놓여 있다. 해가 바뀌었지만 종단분규사태의 충격은 여전하다. 외견상 분규는 마무리되고 있지만 쓰라린 상처가 아물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누가 되든, 또 어느 편이 되든 진심으로 참회하고 각성하는 수행자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있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분규사태를 놓고 불교계가 이제부터 고민해야 할 부분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시는 이러한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분규사태를 없앨 방안을 연구하고 고민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교계사정에 정통한 많은 불자가 지금의 총무원장중심제로는 결코 분규를 막을 수 없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총무원장 자리가 남아있는 한 권력을 향해 불나비처럼 달려드는 권승과 정치승의 발호를 막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이들은 총무원에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중앙에 교육원과 포교원 등 중앙총무행정 부서가 설립되어 있으며 , 중앙종회와 같은 권력기관이 늘 있는 현 종단의 행정과 권력 체계를 고수하는 한 빗나간 승려들의 이권과 권력, 명예를 향한 욕망은 억제될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수행자 집단이어야 할 조계종의 승단이 수행과 전법이라는 고유 기능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일환으로 도입한 사판제도의 남용과 오용으로 인해 수행은 없고 종무행정만 판을 치는 주객이 뒤바뀐 형국에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들의 주장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옳은 지적이라는 데에 있다.
총무원과 교육원, 포교원에 총무원장을 비롯해서 수십 명의 승려가 원장이나 부장, 국장, 과징이라는 벼슬을 달고 상주하고, 막강한 권한을 가진 종회 의원 81명이 늘 중앙에 머물며 이른바 종단정치를 하고 있다. 이뿐인가 이러한 자리를 노리는 제방의 야심 있는 승려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견지동과 수송동, 인사동 등 조계사 주변을 배회한다. 수시로 만나 권력을 차지할 모의를 하거나, 서로의 이용 가치를 탐색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조계사 주변에서는 이미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점은 조계사 주변을 오가는 승려의 대부분이 소속 교구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각 교구본사나 말사에서 맡겨진 소임도 잘 처리하고 포교나 수행에도 뒤지지 않는 승려가 그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야 이들도 종단을 위해 조금 더 비중 있는 일을 맡아보려는 애종심으로 조계사 주위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디 혼탁한 곳에 와서 이런 저런 이유로 머물며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다 보니 함께 혼탁해지고 마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해진 수순이요 관례였다. 이들 스님은 만일 조계종의 행정체계가 중앙집권적 형태가 아니었다면 각 지역에서 포교와 행정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 지역 불교를 활성화시켰을 주역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지금 조계종 권력과 행정구조는 참신한 승려들조차 어설픈 정치승이나 권승으로 만드는, 아니 양산해내는 바람직하지 못한 제도이다.
이번의 분규사태를 겪으며 많은 불자가 지금의 중양집권적 종무행정 체제를 지방교구본사중심의 체제로 빨리 바꾸어야 한다는 데 폭 넓게 공감하고 있다. 총무원 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지방교구본사중심제를 채택하고 서울에는 연락기구 정도만 두면 된다.
또 하나의 권력기관인 중앙종회도 아예 폐지해서 본사주지회의 또는 원로회의에서 그 기능을 대신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그 수를 대폭 줄이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들이 많은 부분에서 일정한설득력을 얻고 있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먼저 지방교구본 중심제가 시행될 경우 지금과 같이 서울 한복판에서 종단권력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추태가 원천적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 총무원 중심제는 과거 60년대 정화이후 30여 년 이상 시행해오면서 실패한 제도로 판명이 난 이상 더 고집해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다. 특히 왜색불교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하는 정화爭化를 종단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는 조계종이 일제강점기에 성립된 제도인 총무원 제도를 고수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지방 교구본사 중심제는 지방자치 제도 실시 이후 중앙정부의 행정업무가 대폭 지방정부로 이양되는 시대적 조류와도 부합하는 제도라는 점도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많다.
이 밖에도 지방교구본사 중심제를 실시할 경우 설사 분규가 일어나더라도 지방에서 벌어지는 작은 싸움이 될 것이며, 본사주지의 권한이 지금 총무원장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으므로 지금처럼 피를 부르는 혈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또 지방 교구본사 간 선의의 경쟁이 자연스럽게 유도되어 불교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 각본사별로 저마다 특성을 살려 발전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지방교구본사 중심제의 장점으로 두루 거론되고 있다.
물론 강력한 중앙집권제도가 특정한 집단이나 단체를 빠른 시간 안에 크게 발전시킬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음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화 뒤, 아니 조계종 창종 뒤 줄곧 실시해온 총무원 중심의 중앙집권 제도가 현실적으로 종단의 발전보다는 퇴보를 초래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중앙집권 제도가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이를 수행할 구성원들이 그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부작용만 양산해왔다면 제도를 바꾸어 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조계종 권력구조 및 종무행정 체계의 변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요즘 교계 일각에서는 자주 한국가톨릭의 제도가 바람직한 모텔로 거론되고 있다. 가톨릭의 경우 서울 대교구, 수원 대교구, 원주 대교구 등 지방대교구별로 별도의 교구장이 인사와 재정을 독립해서 관리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이 제도가 별다른 문제를 야기시키지 않아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조금씩 공감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독립법인화가 되어 있는 가톨릭의 각 지역 대교구는 인사 및 재정부문 등 독립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각 대교구의 대표들로 구성된 모임을 통해 한국 가톨릭 전체의 공통적인 문제나 안건을 논의한다. 한국 가톨릭은 이러한 제도를 통해 최근 십여 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런 점을 감안해 교계에서는 조계종이 이러한 가톨릭 제도의 장점들을 지방 교구본사 중심제로의 전환을 통해 많은 부분 수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경위와 과정이 어찌 되었든 조계종이 명백히 한계를 드러낸 총무원장 중심제를 더 이상 고집해야 활 명분과 까닭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조계종은 ‘분규라는 파고를 만나 난파선 형국이 된 상황에서 또다시 총무원장 중심제를 버리지 않는다면 아주 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종단주변의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조계종은 지방 교구본사 중심제를 채택해 종단관리체제에 혁명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교계 안팎의 여론에 직면해 있다. 물론 지방 교구본사 중심제만이 조계종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변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이 밖에 달리 뚜렷한 대안이 제기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조계종의 분규 당사자들은 이제라도 제 2선으로 물러나 겸허한 반성과 함께, 뜻 있고 참신한 스님들을 중심으로 ‘종단제도개혁추진단’ 같은 기구를 구성해 종단의 체제를 뜯어 고치는 일에 서둘러 나서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또 그렇게 해야 만이 그들이 불조佛祖와 1천만 불자, 그리고 국민에게 저지른 막중한 죄업을 조금이라도 씻는 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