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일천강에 비치듯이
이처럼 십지법문이 차례대로 이어져서, 제8, 부동지不動地에 이르면 십신자재十身自在·십신상작十身相作에 관한 내용이 설해진다. 마치 달이 일천강에 비치지만 달은 허공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화엄에서 일곱 곳에서 법회를 아홉 번을 여시지만[普現一切衆生前] 부처님의 몸은 보리수하를 떠나신 적이 없었던[而恒處此菩提座] 것처럼 말이다.
“이 보살이 중생들의 마음에 좋아함을 알고는, 중생인 몸으로써 자기의 몸을 짓기도 하고, 국토인 몸과 업으로 받는 몸과 내지 허공인 몸을 짓기도 하며, 또 중생들의 좋아함을 알고는, 국토인 몸으로써 자기의 몸을 짓기도 하고 중생인 몸과 업으로 받는 몸과 내지 허공인 몸을 짓기도 하며, 또 중생들의 좋아함을 알고는, 업으로 받는 몸으로써 자기의 몸을 짓기도 하고, 중생인 몸과 국토인 몸과 내지 허공인 몸을 짓기도 하며, 또 마음에 좋아하는 바를 알아서 능히 자기의 몸으로 중생들의 몸과 국토인 몸과 내지 허공인 몸을 짓나니, 중생들의 좋아함이 같지 아니함을 따라서 이 몸으로 이러한 형상을 나타내느니라.[ ― 此菩薩이 知諸衆生心之所樂하야 能以衆生身으로 作自身하고 亦作國土身과 業報身과 乃至虛空身하며 又知衆生心之所樂하야 能以國土身으로 作自身하고 亦作衆生身과 業報身과 乃至虛空身하며 又知諸衆生心之所樂하야 能以業報身으로 作自身하고 亦作衆生身과 國土身과 乃至虛空身하며 又知衆生心之所樂하야 能以自身으로 作衆生身과 國土身과 乃至虛空身하나니 隨諸衆生의 所樂不同하야 則於此身에 現如是形이니라]”
“비유하면 허공에 뜬 해나 달이나 여러 곳 물 가운데 영상 비치듯 법계에 있는 보살 변동 없지만 마음 따라 나투는 영상도 그래[譬如日月住虛空호대 一切水中皆現影인달하야 住於法界無所動호대 隨心現影亦復然이로다]좋아함이 각각 다른 마음을 따라 여러 중생 가운데 몸을 나투되 성문이나 독각이나 보살들이나 부처님 몸까지도 모두 나타내[隨其心樂各不同하야 一切衆中皆現身호대 聲聞獨覺與菩薩과 及以佛身靡不現이로다]”
이 부분의 게송은 마치 법화경의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을 보는 듯하다. “부처님께서 무진의無盡意 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일 어떤 국토의 중생이 응당히 부처님 몸으로 제도할 자에게는 관세음보살이 부처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응당히 벽지불의 몸으로 제도할 자에게는 곧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응당히 성문聲聞의 몸으로 제도할 자에게는 곧 성문聲聞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 응당히 범왕梵王의 몸으로 제도할 자에게는 곧 범왕梵王의 몸을 나타내어 설법하며,―.”관세음보살은 이처럼 32응신으로 중생에게 다가가신다. 그래서 조선조에 조성된 관음상은 모두 사유하는 자세인 유희좌遊戱坐나 교족좌交足坐의 형태가 많은가 보다. 어찌하면 저 제도하기 어려운 강강중생剛强衆生들을 불법으로 이끌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니, 정진자세인 길상좌吉祥坐나 금강좌金剛坐로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리라. 조선불교는 그래서 신라·고려대보다 더욱 민중신앙화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처어법좌여사자處於法座如師子하고
역여우왕보산왕亦如牛王寶山王하며
다음은 제9, 선혜지善慧地의 게송이다. 선혜지는 설법자재說法自在를 이룩한 대법사위大法師位에 해당한다.
“모두 다 걸림 없이 묘한 변재로 적당하게 분별하여 연설하는데, 법상에 앉은 모습 사자도 같고 우왕牛王이나 보배 산의 왕도 같으며[悉以無妙辯才로 如其所應差別說호대 處於法座如師子하고 亦如牛王寶山王하며]용왕이 빈틈없는 구름을 펴고 큰 비 내려 바다에 가득하듯이, 법의 성품 깊은 이치 모두 잘 알고 여러 가지 말을 따라 연설하오며[又如龍王布密雲하야 甘露雨充大海라 善知法性及奧義하야 隨順言辭能辯說이로다]
옛 선사 스님의 시구詩句에 이런 내용이 있다. 마침 이맘때처럼 좋은 가을날이었나 보다.
“가을 물 긴 하늘에 아래 위가 온통 한 덩어리 한 빛 갈대꽃에 밝은 달이 왕래하는구나[秋水長天에 上下圓融하니 一色蘆花에 明月往來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