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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행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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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혜만 2000년 11월 225호
강의를 마치고 나서 건너편 산자락을 우연히 바라보노라니 언제부터인가 단풍이 너무나 멋드러지게 오색찬란한 옷을 갈아입고 있다. 깊어가는 가을에 나 자신도 느낄 겸 나만의 포행을 맛보기 위함으로오랜만에 가야산을 향하여 보았다. 엊그제 그 무덥던 여름이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어느새 가을을 맞고 보니 율원에서의 생활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하나둘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노라니 어딘지 모를 허전함이 배어 나옴은 왜일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낙엽처럼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떠났어도 다시 또 찾아오는 이가 있다. 한 번 갔다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들은 다시 반겨줄 수 있는 정情을 심어주지 않았기 때문이요, 여러 번 떠났어도 다시 찾아오는 이는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가슴을 열어 두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13년 동안 먹물 옷 입어 오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도록 박정하게 대해서 가슴 아프게 한 일은 없는지… 젊음은 항상 있는 것도 아니요 머무르는 것도 아닐진데, 내 주위 내 주변 사람들에게 혹시나 섭섭히 대하지 않았나 오랜만의 포행길에서 나 자신에게 반문하여 본다.
율장律藏을 본다고는 하지만 과연 나는 열심히 계율을 지키며 살고 있는지…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은 나 자신이 너무나 모자라는 점이 많은 것은 어찌하랴…19기 행자교육을 마치고 율원장 스님을 모시고 대만 계율도량 참배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날은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예불에 참석을 못하고 어른스님께 인사를 드리는데 어느 스님이 가사장삼을 수하고 우리에게 찾아 왔다. 4분율四分律의 승가바시사죄를 범한 뒤 13일간 숨긴 사실이 있어 대중스님에게 참회懺悔를 한다면서 우리에게 참회懺悔를 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나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참으로 열심히 살고 계시는 이 곳 스님들을 보면서 그 여운이 계속 뇌리를 스치고 지나감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말았다. 대만 정각정사의 스님들은 계율이 먼저 형성되어야만 진정한 수행자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다. 계율戒律이야말로 우리 승가僧伽의 기본이 아닌가. 우리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못할 때가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일도 일이지만 자신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있어야 되지 않을까?백장청규百丈淸規 중에서 내가 제일 가슴에 와 닫는 부분이 있다.
“시라청정불법현전 피지부존모장안전 고경운 정진지정계 유여호명주 尸羅淸淨佛法現前 皮之不存毛將安傳 故經云 精進持淨戒 猶如護明珠 계가 청정하면 불법이 현전하니 살갗이 없는데 터럭이 장차 어디에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경에 이르되 정진하여 깨끗한 계를 지님은 명주 (밝은 보배 구슬)를 지니고 있는 것과 같다” 계율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문구文句이다.
깊어 가는 가을 포행길에서 계율의 소중함과 함께 모든 수행자가 건강하게 정진 잘 하시리라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