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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율원장 혜능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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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연정 2000년 11월 225호
아침저녁으로 제법 싸늘한 냉기가 옷깃을 파고드는 10월 중순에 찾은 가야산은 벌써 겨울채비에 들어선 듯, 짙푸르던 옷을 점잖은 색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산은 늘 앞서 준비하고 있다.
계절의 정점에서 유심히 산을 보노라면 어김없이 머지않아 다가올 날들을 예고한다.
한여름 산에 들면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북풍한설 몰아치는 날의 산은 따스한 온기에 감싸여 있다.
계곡에는 수량이 많이 줄었지만 청량한 물맛은 여름의 그것과 또 다르다.
이맘때의 물이야말로 나무에서 나오는 진짜 약수라나.
여름내 흥건한 물을 뿌리에 가득 담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다가, 이제 그동안 모아두었던 것을 조금씩 흘려보내며 몸피를 줄여 겨울을 채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해인사를 찾을 때마다 언제나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
범접하기 힘든 맑고 성성함이랄까.
특히 겨울 언저리 아침 기운은 어찌나 카랑카랑한지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게 한다.
좁다란 오솔길을 오르고 올라 겨우 도착한 산 속의 작은 절에서 오는 정겨움을 해인사에서는 기대하지 않는다.
묘한 것이 절마다 느낌이 다르다.
포근히 감싸주는 아늑함, 시골집 앞마당에 들어선 듯한 정겨움은 통도사에 비할 데가 없고, 노스님을 대하듯 편안하면서도 정열된 듯 질서가 있는 곳은 송광사만한 데를 알지 못한다.
풍수가들은 산의 형상을 보고 그 기운을 말하고 거기 사는 사람의 품성을 점친다던가.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상도에는 돌화산이 없는데 가야산은 뾰족한 돌이 잇달아서 불꽃 같으며 따로 공중에 높이 솟아서 극히 높고 또 빼어나다.
” 고 했다.
흔히 해인사 스님들은 강기强氣에 개성이 강하다고들 말하는데, 확실히 사람은 자연을 닮아가기 마련인가 보다.
해인사 율원을 향하는 발길은 괜시리 죄지은 양 무겁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어제 무엇을 먹었던가, 혹 고기를 먹지는 않았었나? 뭐 부정한 짓 한 일은 없던가? 급기야는 율원에 들어서려 하자 없던 문이 갑자기 닫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에 휩싸이고….
곰곰 생각해 보니 율원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스님들 세계를 세속에 사는 일반인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선원과 강원의 일상은 세인들의 호기심 속에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많이 알려져 듣고 본 바가 있지만, 율원은 따로이 소개된 바가 없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승가생활의 법률이라고 할 수 있는 율장律藏의 앞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재가자는 보지 말라.
” 출가자라 하더라도 비구, 비구니계를 받아야 율장의 열람이 가능하다.
물론 요즘에는 누구나 인터넷이나 동국대학 도서관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가 있지만, 지금도 출판되는 율장의 표지에는 이 문구가 들어 있어 함부로 보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율장에는 어떤 비밀스런 얘기가 있기에 비구, 비구니만 보라고 하였을까.
불교에 대해 일자무식에 가까운 사람이 감히 율원장 스님을 가까이서 뵙는다고 하니 긴장해 몸이 빳빳이 굳어왔다.
백용성 스님으로부터 비롯된 해인사 율사의 맥은 종수, 일타, 지관, 성우, 철오 스님 등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쟁쟁한 불교계의 거목들에게로 이어졌고,율원장 혜능 스님은 성우 스님의 계맥을 전수받은 분이라는데.
“율원장 스님께 인사드리세요.
” 아주 잠시지만 놀랐다.
깡마르고 기름기 한 점 없는 말간 낯빛의, 보기에도 깐깐한 스님이 눈을 지그시 감고 앉아 계시리라 생각했는데, 율원장 혜능 스님은 율원의 학인이라 해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동안童顔인데다 권위를 전혀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분이셨다.
“율장은 깊고 어려운 수행방법도 아니고, 수행자의 신비로운 종교체험도 아닌 지극히 인간적이고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단면을 세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갈한 삶이라고 할까요.
밥 먹을 때는 어떻게 하고 걸어다닐 때는 어떻게 해라.
밥그릇은 어떻게 씻고 씻고 나서는 물이 빠지도록 엎어놓으라는 말까지.
일반인이 볼 때는 스님들이 이런 생활밖에 못하나 하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고, 스님은 왜 그렇게 안 하느냐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요.
” 재가자는 왜 율장을 보지 말라고 했느냐는 물음에 혜능 스님은 웃으며 이렇게 답하셨다.
세속에서는 도덕률이 땅에 떨어져 사회가 어지럽다고들 한다.
불가에서는 계율정신이 사라지고 있다고 개탄한다.
일부에서는 시대에 맞게 계율도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혼탁해지면 혼탁해질수록 청정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칠흑 같은 어둠은 곧 여명으로 이어지기 마련.
계율정신을 살리자는 소리가 높아만 간다.
이런 일이 있었다.
율원 학인들이 큰스님께 인사드리러 산에 올랐다.
학인들은 평소와 같이 여법하게 법복을 갖추어 입고 줄을 지어 단정히 걸어갔는데, 이 모습을 산내 암자에서 수행하시던 비구니 스님이 보았던 모양이다.
“요즘도 저런 스님들이 있느냐.
”고 감격해 하며 율원의 모든 학인들에게 장삼을 지어 공양을 했다.
해인사에서는 지난해 율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어른 스님들의 생각에 따라 요사채 정행당淨行堂을 신축하였다.
따라서 학인 수도 늘었다.
1년 과정을 2년 과정으로 개편해 현재 율원에는 8명의 학인이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율원에는 1∼2명이 공부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현재 율원은 성황(?)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혜능 스님은 장소만 허락된다면 더 많은 학인들이 함께 정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부터 해인사 강원에는 일주일에 1시간씩 계율학을 배우도록 하고 있다.
이 역시 강원 학인들에게도 계율의 중요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일이다.
율장에는 출가하면 5년 동안 경이나 참선 공부하지 말고 계율만 배우라고 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3주간의 행자교육 후, 구족계 일주일 이외에는 계율을 따로이 공부하지 않는다.
혜능 스님은 기본적으로는 학제가 바뀌어 경전을 배우기 전에 계율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최소한 강원교육 4년 과정 중에 일주일에 1시간이라도 계율학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인사 강원에서는 금년부터 이를 시행하고 있는 셈이다.
스님은 나날의 생활이 맑고 향기롭기를 바란다.
“깨달음은 정화의 과정을 나타내는 법칙이고 수행자의 긍극의 목표는 열반을 얻는 데 있습니다.
열반이 번뇌가 멸진된 상태라면 열반은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라기보다 섬세하고 고요한 삶 속에서 정화돼 얻어지는 것이지요.
” 혜능 스님은 육조보다 신수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 고등학교 시절 경주로 수학여행 갔을 때 옆으로 지나쳤던 수려한 외모의 어떤 스님과도 비슷하다.
수행자 하면 그리게 되는 전형적인 모습.
“스님 죄송한데 세수가 어떻게 되시나요.
”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염치 불구하고 여쭈었더니 그냥 미소로 답하시며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불교 공부가 너무도 하고 싶어 세속의 옷을 과감히 벗어 버린지 26년이 되신다고만 하신다.
출가자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스님 역시 율사의 길을 걸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참선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학교공부를 뒤로 하고 출가를 한 것인데, “학교 공부를 마치라.
”는 은사 스님의 권유에 따라 출가 후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과정(동국대)까지 마쳤다.
그리고는 일본 유학까지.
법랍 18년 되던 해 스님이 찾은 곳이 율원.
계율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았다고나 할까.
유학을 통해 접한 공부는 의외로 밀교였다.
우연히 밀교학개론서를 보고 ‘부처님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해 그 의문을 해결하고자 공부를 시작했는데 결론은 “밀교는 대승불교의 꽃이며, 제3의 종교는 이러한 만다라적 세계관이겠다.
”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철저하게 계율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후기 대성불교시대에는 본초불이라는 얌윰상도 등장하는데 이는 부처님이 명비를 안고 있는 상태로 선정에 들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모습의 불상이 나타났을까 생각해 봤는데,열반의 지고한 경계를 경험의 세계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한 것이라 해석해 봅니다.
또한 번뇌와 보리가 둘이 아님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해요.
비로자나 부처님의 수인은 부처님이 한 손의 손가락을 다른 손이 쥐고 있는 모습인데, 이 역시 번뇌와 보리가 둘이면서 하나라는 불이不二의 관계를 나타내지요.
” 계율, 밀교, 불이不二… 중생의 깜량으로는 알 듯 모를 듯.
확실한 것은 스님은 밀교를 통해 계율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고 보다 철저해졌다는 점이다.
혜능 스님은 불교회생의 길을 계율에 둔다.
“그동안 불교교단에서 계율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불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계의 정신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계율은 깨침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바른 생활이 되지 않으면 바른 선정, 바른 지혜도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계율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지요.
”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을 지키는 일은 수행자에게 국한되지 않는 일.
일반 불자들 역시 깨침의 경지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계율에 근거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혜능 스님은 생각한다.
“불자로서의 자각은 믿음에서부터 일어난다고 해도 좋지만 불자로서의 행동은 계를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불자들을 대상으로 율원 주최의 자비수참 법회를 연다.
매달 음력 10일 12시부터 2시까지 열리며 여기 참석하는 불자들은 200∼300명 정도로 팔관재계를 지키면서 참회기도를 한다.
스님은 계율만큼이나 참회를 신행의 기본이라 말한다.
계율은 일상생활을 해나가면서 깨뜨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계율을 지키는 생활이 곧 참회하는 생활이라는 것이다.
스님의 맑고 겸허함은 바로 이 참회의 생활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가 마루 끝을 희미하게 비추기 시작하자 “쓰윽 쓰윽-” 쓰레질 소리가 하루의 마감이 임박했음을 알려준다.
비질에 커다란 곡선 무늬가 만들어진 마당 위로 일군의 스님들이 조심스레 열을 지어 밖을 향한다.
쓰레질로 시작해서 쓰레질로 마무리하는 산사의 스님네들.
그 위에 살며시 남아 있는 발자국들.
정갈한 삶의 모습이 번뇌에 흐트러진 마음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