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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나의 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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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해인삼매 - 원성 2000년 11월 225호
언덕에 올라 가만히 앉아 있노라면 볼에 맞부딪치는 부드러운 바람결이 나는 좋습니다.

낯설은 산기슭에 휘 감도는 묘한 바람은 내 마음을 단단하게 부여잡게 해주는 매력이 있지요.

어린 시절, 나비처럼 바람을 타고 훨훨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그 때가 문득 떠오르는군요.
가슴을 열고 두 팔 벌려 하늘을 향해 내달리면 마치 구름 위로 떠오르듯 마음은 가뿐 해지고 이유 없는 괜한 즐거움으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일 수 있었던 그 순간을요.

가야산에 가을이 오면 관동팔경의 수려한 풍모를 자랑하는 홍류동계곡에는 수천 아니 수만 그루의 수목들이 일제히 온갖 빛깔의 옷을 갈아입는데… 아아……밤이 되면 청명한 달빛에 바람을 타고 일렁이듯 물결치는 단풍잎들의 춤사위는 낮에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게 별, 눈꽃, 은하수, 축복, 천성과도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며 신비한 환상과 꿈의 나라에로 융단을 드리웁니다.

바람은 나의 친구입니다.
언제 어느 때라도 가까이 느껴지는 투명한 그이는
내가 외롭고 슬플 때,내 등을 도닥이며 위로해주었지요.
내 눈가에 맺힌 그리움이라는 것을 쓰다듬으며,내 슬픈 사연에 귀 기울이며 함께 울어주었지요.

내가 속이 상하고 마음이 복잡해질 때에는,여유로운 품으로 나를 보듬어 안아 진정 비울 수 있는 무언의 가르침을 일러줍니다.
터질듯한 머리 속의 온갖 생각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주지요.
부끄러운 내 자신을 일깨워 줍니다.

내가 들뜨고 기분 좋아 유쾌해 하고 있을 때에도,조용히 내게 다가와 질문을 건네지요.
“오늘은 웬일로… 무슨 좋은 일이라도…”
허공을 향해 외쳐 대는 나의 기쁨을 우리는 함께 나누었더랬습니다.

바람은 애써 부르지 않을 때에도 내게 다가와 나와 함께 합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할 때에나
왠지 울적해져 혼자 있고 싶어질 때에도,정작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에도…
늘 변함없이 내 곁에 살아 숨쉬는 바람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