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이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우린 ‘가치관’ 혹은 ‘인생관’이라 부른다. 물신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정신적 가치가 빛을 발하지 못한 지 오래지만, 사실은 이 가치관이란 것이 자신의 인생을 지배한다. 어떤 가치관으로 삶을 해석하고 살아갈 것인가, 삶에 대한 자기 해석이 결국 가치관이 된다.
이천오백년 전에 사바세계에 온 한 선각자, 붓다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인류에 내놓은 가치관, 혹은 삶에 대한 해석을 우린 ‘깨달음’이라 말한다. 그 깨달음의 내용이 ‘연기의 법칙을 직관하는 지혜’란 사실은 불교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불교인은 붓다의 명쾌한 직관과 통찰에 다시 눈뜨고, 이해하고 실천하려 한다. 이를 실천하게 하는 힘이 곧 수행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팔정도八正道’라는 실천수행을 통해서 가르쳤고, 후에 보살도를 이루는 실천방법으로 여섯 가지 지혜, 즉 육바라밀사상이 대두되었다.
결국 인생이란 부처님이 깨달아 세간에 내놓은 가치관을 바탕으로 수행하며 보살도를 이루기 위한 원을 세워 하나하나 성취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태교수행’이란 이런 수행과정 속에서 자신에게로 올 자식과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한 원을 하나 더 세우는 일이다. 이러한 원은 자각하는 데로부터 나오며, 자각한 마음이 수행이란 도구를 통해 힘이 되고 현실이 된다. 그러므로 태교수행의 실천덕목이 보살도를 이루기 위한 대승불교의 수행덕목인 육바라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태교수행에 새로운 장을 연 성우 스님(파계사 주지, 한국태교연구소 고문)은 그러므로 육바라밀을 바탕으로 태교를 실천수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를 맞을 이들이나 이미 잉태하고 있는 부모들이 보시·지계·인욕·선정·정진·지혜 바라밀을 내용으로 하는 육바라밀을 삶 속에서 실천해나간다면 자신의 깨달음은 물론 선근을 지닌 아이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보시바라밀, 진정한 지혜의 실천
제가 지어 제가 받는다는 인과의 정확한 법칙이 아니더라도 우린 세상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세상의 다른 것이 없다면 내가 존재할 수 있는가.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다른 것들이며, 그러므로 세상과 나는 둘이 아니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우린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것을 이웃과 끝없이 나누며 살아야 할 것이다. 특히 아이를 맞을 이들이나 혹은 아이를 잉태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태아의 앞날을 위해 복덕을 심고 가꾸어 큰 공덕을 지어야 한다. 부모가 발원하고 실천한 공덕의 힘으로 아이의 업이 맑아지고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보시해야 할 이유를 ‘우바새경’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혜로운 사람의 보시는 연민 때문이며, 남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며, 남도 보시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함이며, 모든 성인의 도를 실천하기 위함이며, 온갖 번뇌를 깨기 위함이며, 진리를 얻기 위함이다.’보시에는 세 가지가 있다. 재물로써 하는 재보시와 진리를 남에게 베푸는 법보시,남이 겪는 두려움이나 고통을 함께 하고 도와주는 무외시無畏施가 그것이다.
재물은 내게 인연이 있어 온 것이지 내 것은 아니라는 마음가짐으로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머지는 이웃과 나누는 정신이 보살도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이다. 세상을 둘러보면 이런 보살도를 행하는 사람이 많다. 평생 바느질로 모은 전재산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내놓은 할머니들이 그렇고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를 직원들에게 물려주고 회사를 퇴직해 산 속에 버려진 쓰레기 줍는 일을 하겠다던 어느 은퇴경영자의 삶은 보시를 완성시킨 삶으로 볼 수 있다.
산 속의 나무는 가을이 되면 여름 내내 빨아들였던 물을 밖으로 내보낸다. 겨울에 물을 제 몸 속에 지니고 있으면 얼기 때문인데, 늦가을에 계곡물이 불어나는 것도 나무들이 몸 속에 있는 물을 버리기 때문이다. 제 몸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세상으로 회향하는 자연의 섭리에서 우리는 ‘가짐’과 ‘회향’의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배워야 할 것 같다. 물질은 이웃과 나눌수록 오히려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워짐을 경험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이 체득한 진리를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은 물질을 베푸는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사람을 진정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불교인에게 있어 지혜란 더 말할 것도 없이 육바라밀을 삶 속에 실현하여 얻은 지혜다. 가치관이 제대로 서 있지 않은 삶, 다시 말해 지혜를 가치로 하지 않은 삶은 헛되이 한 생을 낭비하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윤회를 하기 마련이다. 자신의 믿음과 깨달음을 숨김 없이 드러내는 전법이야말로 최상의 보시라고 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삶을 향해 열심히 정진해야만 남에게도 진리를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무외시의 삶을 우린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스물한 살 때부터 전신이 서서히 마비되어 가는 불치병을 앓아 말도 못하고 신체 중 두 손가락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뿐인 영국의 스티븐 호킹의 삶도 무외시를 실현하고 있는 삶이다. 우리는 그를 통해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달았던가. 불행 속에서도 자유로운 정신과 도전정신을 잃지 않고 활발한 연구로 우주탄생의 신비를 밝히는 세계적인 과학자로 우뚝 선 그의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세상에 회향하고 있는 무한한 무외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의 장애인이야말로 인생의 진짜 장애인이다’라고 말하는 그는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들에게 고난을 이겨내는 메시지를 이렇게 전달하고 있다. ‘인생의 행복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 그리고 주변의 자연과 남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보시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눈만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한 생명의 탄생은 지어둔 자신의 업의 힘과 부모의 인연을 빌려 이 세상에 태어난다. 새 생명으로 오는 인연이 좋은 인연인지 나쁜 인연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세상을 ‘복덕의 힘으로 산다’는 말이 있듯, 내게 올 아이를 위해서 보시로 인한 공덕을 지음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값진 자산이라 할 수 있다.
큰 보시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이를 가진 이가 밝고 조용한 창가에 앉아 자신이 은혜를 입었던 이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는 일도, 혹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담은 편지를 써보는 것도 작지만 아름다운 보시가 될 것이다. 부모가 날마다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때, 이같은 아름다운 보시를 뱃속의 아이는 그대로 익힐 것이다.
아이를 가진 이는 자신의 정다운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로 행하는 베품을 태아는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으며, 그 보는 눈과 마음이 그 아이의 일생을 형성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는 이와 받는 이와 주는 물건이 깨끗할 때, 자신이 지닌 것을 베푼다는 생각 없이 이웃과 나누어 가질 때, 지혜로운 삶은 열린다. 그러므로 보시는 여섯 가지 지혜의 첫머리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