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지령 백호를 맞이하는 해인지, 해인지는 나에게 있어서 부처님이다. 해인지를 백호까지 만들어 오신 해인사스님들, 원고를 쓴 필자들도 부처님이다.
부처님은 일찌기 말씀하셨다.
“말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아서, 그로 인해 자기 몸을 망치고 모든 재앙을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이 깨달은 진수를 침묵으로 가섭존자에게 전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침묵의 전법은 미혹한 중생에게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법문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중생을 위해 45면간을 날카로운 도끼와 같은 말을 방편으로 해서 진리를 설하셨다.
해인지가 지령 백호에 이르는 동안 스님들과 필자들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은 말로써 수많은 중생들에게 진리를 알리고자 노력해왔다.
그 ‘날카로운 도끼’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얽힌 매듭을 풀듯이 자상하게 풀어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서슬퍼런 날을 들어 무명과 고통의 현실을 비판함으로써 바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화두의 역할도 해주었다.
따라서 해인지는 나에게 있어서, 이 미혹한 중생세계에 헤매이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부처님인 것이다. 물론 부처님이 불법의 진수를 침묵으로 전하셨듯이 해인지가 진정으로 이 사바세계에 전하고자 한 뜻은 백호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 속에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로는 자상하고, 때로는 서슬퍼런 해인지의 글속에서 불법의 진수를 읽고자 노력한다. 즉 행간을 읽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이다.
예전과는 달리 불교계에도 수많은 언론매체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 모든 매체들이 말로써 자기의 주의주장만을 펴려고 할 뿐이고, 진리를 전파하는데 앞장서지 않는 현실속에 해인지
가 앞으로도 행간을 읽게 만드는 포교지로 이 시대에 남아주기를 바란다.
부처님께서 진실한 말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바른 말을 지키며, 거친 말을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하신 가르침을 되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