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혁명가 선지식 - 성철 스님의 수행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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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원철
2000년 11월 225호
요즈음 재가자 몇 분들과 함께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을 읽고 있다.
상·하 두 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에다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일요일 오후를 택하여 하다보니 벌써 일년이 다 돼 간다.
양도 양이거니와 그 내용이 만만찮아 그냥 읽고만 지나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이것저것 참고할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방편을 동원하다보면 적지 않은 품이 든다.
이미 만들어 놓은 책 읽는 것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해인총림 초창기에 백일 동안 하루도 빼지 않고 철필로 긁어 만든 교재를 사용하여 법문을 하셨다고 하니 가히 이제는 ‘전설’이라 하겠다.
당신의 육성 녹음 법문집을 정리하는 제자들도 이 책 정리가 제일 힘들었다는 후일담이고 보면 이 책의 난해도는 가히 짐작할 만하다.
다음 생에서라도 한 사람이 이끌어가는 백일법문의 현장을 다시 만날 수 있길 발원해 본다.
하룻날 한두 시간 정도는 ‘부처님을 능가하는 소리’를 내지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이 아마 삼일이면 밑천이 모두 드러날 것이다.
내가 출가했을 무렵에는 이미 당신 나이도 일흔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백일 연거푸 법문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근력은 아니었고 그저 보름에 한 번 결제 때나 그것도 시간적으로 길지도 않은 짧은 법문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당신의 사상은 열반 후 법문집 정리가 끝나고서야 전체적으로 한 번 살펴볼 수가 있었다.
2500년의 불교사 속에서 자기 목소리로 자기 안목을 후대에 남긴 선지식도 흔치 않다.
그래서 우리가 ‘성철 스님 성철 스님’ 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선림교해禪林敎海 속에서 자리장엄이나 해주고 밥이나 축내다가 한 생을 마치기 때문이다.
죽반승飯僧이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나 보다.
그래도 ‘그저 어느 놈이 사자새끼인 줄 몰라서 전부 옷 주고 밥 준다’는 당신 말씀 그대로 죽을 때까지 (부처님을 포함하여) 어른스님들의 음덕으로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동구불출洞口不出하고 산 속에서 평생 살게 한 것이었을까? 한마디로 말한다면 ‘불교 안에 녹아 있는 비불교적 요소, 선종禪宗 안에 스며 있는 비선종적 요소를 제거’하여 불교를 불교답게, 선종을 더욱 선종답게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한평생을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라는 미증유의 500년 장기법난기를 거치는 동안 승단은 자기동일성마저 포기해 버린 반유반승半儒半僧· 반승반속半僧半俗에다가 일제시대 해방 이후 온갖 잡동사니가 뒤범벅되어 불교라는 정체성마저 의심스러울 정도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수행정신의 회복과 수행체계의 확립으로 요약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나태와 안주에 물들어 있는 승단 기득권 벽을 쳐부수어야 함을 의미한다.
엄청난 물리적·심리적 저항이 뒤따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선 논리성과 도덕성 그리고 실천성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그 원력이 당신을 평생 버티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이는 수도팔계修道八戒와 돈법頓法사상 주창으로 구체화되었다.
수도팔계는 수행정신의 확립을 위한 구체적 8가지 방법 즉 절속絶俗· 금욕禁慾·천대賤待·하심下心· 정진·고행·참회懺悔·이타利他를 말한다.
법수法數가 부처님의 팔정도八正道를 연상시킨다.
①절속絶俗과 ②금욕禁慾은 반승반속적 마음이 일어날 때에 대한 경고이다.
③천대賤待와 ④하심下心은 사문이 무슨 바라문 혹은 양반계급 혹은 지주처럼 거들먹거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를 경계하기 위한 말이다.
⑤정진과 ⑥고행은 게으름과 나태에 물들어 현실에 편안히 안주하려는 마음이 그 대상이었을 것이다.
⑦참회懺悔와 ⑧이타利他는 ‘수행합네!’ 하는 아만심과 ‘나 몰라라’ 하는 소승심小乘心을 향한 외침일 것이다.
그리고 ⑤정진의 구체적 모습은 첫째 잠을 많이 자지 말 것, 둘째 책을 보지 말 것, 셋째 간식을 하지 말 것,넷째 말을 많이 하지 말 것, 다섯째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 것이라는 ‘신수좌오계新首座五戒’ 로 집약되었다.
적게 자고, 적게 말하고, 적게 먹고, 지식에 안주하지 말고, 제자리를 지키라는 가르침이다.
수행정신 회복이라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처님 오계는 신라 때는 원광 법사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로 변용한 바 있다.
계율 역시 연기적 관점에서 늘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재해석되어 왔다.
성철 스님 역시 계율을 이러한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개차開遮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었던 것이다.
선종의 돈오법頓悟法을 분명히 드러내어 이를 수행대중들에게 철저하게 주지시켰다.
이는 『선문정로』에 집약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점수법漸修法이 만연된 풍토에서 즉각 ‘돈점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까지 으레이 통용되었고 당연히 그런 줄만 알고 있었던 점수이론은 선불교의 수행이론이 아니라 교종敎宗과 선종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기 위한 ‘정치적 타협이론’임을 성철 스님은 간파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선종의 본래적 수행이론인 ‘돈오법’을 다시금 천양하게 된 것이다.
사실 현재의 조계종 속에 만연한 ‘통불교론’ 역시 사상적 잡다함과 다양한 계층을 함께 아우르기 위한 현실과의 타협을 위한 시대적 산물이요, 어쩔 수 없는 안案이라는 궁색함을 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사상적 정체성의 미확립은 교단내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필경에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결국 파열음을 일으키면서 불교 외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결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결과론적 타협이론은 장기적으로 결국 하나도 좋을 게 없었다는 것은 그 동안의 교단사敎團史가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성철 스님은 선종을 표방하면서 선종 외적인 요소들을 발라내려고 애를 썼고, 불교 속에서 불교 외적인 것을 척결하기 위하여 당신의 전 역량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이제 미완성 부분은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