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교 정신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관암
2000년 11월 225호
불교 신앙의 근본 목표는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다. 그래서 깨닫기 위한, 중생제도를 위한 다양한 수행법과 방편이 필요하다. 특히 북방 대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은 중생을 어여삐 여겨서 중생들을 이 차안에서 저 피안으로 안내하는 가르침과 수행법 그리고 이 고해를 건너는 자비로운 배로 비유되는 방편법이 그것도 근기와 병에 따라 실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다. 이것이 불교 신앙의 저력이자 무한 급의 소프트웨어적 요소이다. 그래서 우리의 유물과 유적 그리고 각종 문화에 불교를 빼고는 말할 수도 없고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불교 신앙의 매력이자 무한한 정신적 문화적 가치 창조의 가능성인 이 다양한 수행법과 방편이 사람의 마음 됨됨이와 마음 씀씀이에 따라 불교 신앙의 근본 목표을 잃어 정신은 병들고 사회를 혼란하게 하기도 한다. 교리와 방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주선하고 이행하는 사람(스님과 신도)의 의식이 문제인 것이다. 물론 선 중심의 불교 또한 맹점이 있기에 선으로 불교를 도배할 필요도 없고, 다양성이 없는 신앙도 중독성이 있기에 여러 수행법과 방편을 하나로 통일시킬 필요도 없다. 다만 무엇을 위한 수행(기도)이며 무엇을 위한 방편(불사)인지, 불사와 법회를 일으킬 때 스님은 신도에게분명히 일러 주어야 하며, 불사와 기도에 동참하는 신도는 이 점을 궁구하고 또 궁구해서 자각해야 한다.
밤이 되면 십자가가 밤하늘에 별빛처럼 즐비하고, 동양 최대의 대불에서 작은 원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은 가히 불국토처럼 모셔지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과 사회는 거꾸로 가는 느낌마저 든다. 여기에 선불교의 정신이 살아나야 하는 당연성이 제기된다. 인간의 근원적인 지혜와 미래 인류의 지적 유산으로, 대안사상으로 주목되는 선불교는 9세기를 전후하여 중국 당나라 시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실천불교의 선구자인 선승들이 선의 실천을 통하여 체득한 깨달음의 확신으로 인간의 평범한 일상 생활 속에서 불교의 참된 정신을 전개하려는 정신으로, 이것은 잿밥이나 방편과 형식에만 안주하려는 승이나, 탐욕을 채우려고 부처님과 스님을 복장수 쯤으로 알고 기도하는 신도들의 의식에 반발해서 주인공으로 살고자 하는 자기혁신과 순수한 구도정신으로 붓다 본래의 청정 수행을 더욱 철저하게 실현하려는 종교적 열정과 의지의 시대적 발로였다. 선불교 정신은 이처럼 일체의 형식과 속박에서 벗어나 인간 각자의 본래 자연 그대로의 존재-무위진인-의 참된 자아를 깨닫고 지금 여기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실의 세계를 그대로 진실의 세계로 가꾸며 중생의 고뇌와 함께 하며 살아가는 한마음의 지혜를 가르치는 정신으로 각자가 자각의 종교를 확립하여 무한한 가능성의 인격완성을 위한 끊임없는 자기 비판과 반성을 추구하는 정신이다. 우리에게 선불교 정신 즉 불교 본연의 정신을 회복하지 못하면 아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번뇌만 더하고, 기능이 늘면 늘수록 도적질만 늘게 되고, 불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매한 신자만 더할 뿐이다. 이런 우리의 현실은 어려운 문구나 논설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기준은 우리가 부처님과 인연 맺은 연륜만큼 자신의 언행과 의식이 부처님을 닮아가고 있는지 자신을 지켜 보면 되고, 대불과 원불 그리고 법당이 늘어나는 만큼 이 사회가 맑고 향기로운 건강하고 살만한 세상으로 되어 가는지 고민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