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여행길
그러나 편리하고 신속한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요즈음의 우리들이 중앙아시아의 흔적 없는 사막길을 터벅걸음으로 걷거나, 천년설에 뒤덮인 인적미답의 준령들을 한 발 한 발 기어오르며 겪어야만 했던 이들 외로운 구법승들의 고난과 역경을 상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인도를 향해 떠났던 이들의 대부분은 길도 없고 인적도 없는 사막에서, 들판에서, 눈 속에서, 낭떠러지에서, 강물과 늪 속에서, 그리고 망망대해의 한가운데서, 목말라 죽고 굶어 죽고 얼어죽고 떨어져 죽고 빠져 죽었으며, 혹은 짐승들에게 물려 죽거나 잡아먹히지 않으면, 귀신들에게 홀려 죽거나 도적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들 중의 한두 사람이 천신만고 끝에 죽음의 고빗길을 넘어 인도에 당도하는 수도 있었지만, 그 험난한 길을 다시 돌아갈 엄두를 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법현法顯(339-420)도 진리를 찾아서 인도로 떠났던 스님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인도로 떠났던 사람들 중에서 다시 돌아온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가 돌아와서 남긴 인도기행문이 그 유명한 『부처나라의 여행기록불국기佛國記』는 책이다.
그는 이 기행문에서 그가 여행 도중에 겪었던 공포와 고난과 위험들을 생생하게 묘사해 놓고 있다. 사막을 건너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사막의
수많은 귀신들과 뜨거운 돌개바람들,
마주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늘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땅 위엔
짐승 하나 보이지 않는다.
모든 길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뻗어 있지만,
어느 길로 가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널부러진 마른 해골 조각이
이 곳까지의 이정표일 뿐.
눈을 감으면 아스라이 펼쳐진다. 이글이글 지져 대는 태양, 뜨겁게 달아오른 사막, 인적은커녕 짐승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어느 곳으로든 갈 수 있지만 정작 가야 할 길은 알 수 없다. 문득 발 아래 밟히는 해골 조각 하나, 앞서 떠났던 사람의 것이리라. 그것이 이 곳까지 그가 왔었을 여행길을 암시해 준다. 지나온 몇 발자국을 이 해골의 주인공이 개척하였고 앞으로의 몇 발자국은 다음 해골의 주인공이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남은 길은 이제 자신이 개척해야만 한다. 예감되는 자신의 운명이란 다음 해골의 주인공이 되어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는 것이다.
죽음을 넘어선 열정
사실 우리를 더욱 소름 끼치게 하는 것은 그의 나이다. 법현 스님이 인도를 향해서 장안을 떠난 것은 399년이다. 그가 339년에 태어난 것이 사실이라면 꼭 61세가 되던 해이다. 평균수명이 40세가 못 되었던 당시에 60세라면 고려장高麗葬 감으로나 딱 알맞은 나이다. 이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할 처지인 셈이다.
법현 스님보다도 200년도 훨씬 더 지나 앞서간 사람들이 다져 놓은 여행길을 나섰던 현장(600-664) 스님은 28살, 의정(635-713) 스님은 37살이었다. 60세의 나이에 목숨을 건 구도의 여행길을 나설 생각을 했다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학자들은 그의 생몰 연대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가 긴 여행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온 것은 414년이다. 장장 16여 년 간의 멀고도 험한 여행이었다. 그는 함께 떠났던 11명의 동료들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 남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길의 도중에서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인도에 머물러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그가 돌아오는 길로 택한 것이 한 번 가본 육로가 아닌 바닷길이었다는 사실이다. 해로가 육로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그의 끝없는 모험심의 열정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하여튼 그의 용기와 결단 앞에서 우리는 고개 숙이지 않을 수 없다.
열정이 식어 버린 우리들
도대체 무엇이 법현 스님으로 하여금 무모하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여행길을 나서도록 만들었을까? 이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할 그런 나이에 목숨을 걸고 뛰쳐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우리들의 인생목표가 되어 버린 돈을 위해서 혹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그도 그러한 여행길을 결코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결코 떠나지 못할 우리들처럼.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으려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이 두려운 사람은 그런 죽음의 여행길을 떠날 수 없다.
자기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을 위한 열정에 사로잡힐 때만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것은 오로지 붓다의 자비로운 구제에 대한 믿음과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60을 넘긴 노인으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 않는 먼 여행길을 떠나도록 고무鼓舞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진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아니고서는 해골의 이정표가 되어도 좋다는 그러한 여행길을 결코 나설 수 없다.
이기적인 경쟁을 본성으로 삼는 현대의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군상들은 진리를 향한 열정이 없다.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탐구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그런 분이 계신다면 나의 존경을 아끼지 않으리라.
존경할 수 있는 분을 알고 사는 것도 작은 행복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