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과 불교. 무소유를 생활의 한 원리로 가르치고 있는 불교에서 돈과의 관계는 그리 밀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많은 불자들과 우리 국민들의 인식이다. 그래서 불교 하면 떠오르는 여러 말들 가운데 청정이라는 말도 빠지지 않으리라 본다. 무소유가 곧 청정이라는 이미지와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없음이 곧 청정은 아니다. 그러나 돈이 있음은 청정하지 않음과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재물을 쌓아 두면 탐심을 일으켜 죄를 범하고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을 경계한 것이 율장의 가르침이다.
재물에서 빚어진 욕심은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큰 장애 요소이다. 그런데 최근 깨달음을 근본으로 삼는 불교계에서 돈과 관련된 불미스런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조계사신용협동조합 고객예치금 횡령, 복지법인 승가원에서의 공금 유용, 총무원 재무부 직원의 공금 유용 등의 사건이 그것이다. 조계사신협 횡령 사건은 지난 8월 일반 언론에도 보도되어 불교의 청정성에 먹칠을 했다.
지나간 일이지만, 사건의 개요를 되짚어보며 불교계 돈 관리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헤아려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아니다. 또 다른 외양간에서 소를 잃지 않기 위한 방편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교계 언론 보도와 총무원 호법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계사신협 과장인 송모씨와 감사 조모씨가 고객예치금을 빼내 주식투자와 구권화폐 매입에 썼다. 횡령 금액은 무려 172억원, 손실금이 50억원에 이른다. 자산금 107억원의 조계사신협에서 50억원의 손실금이 발생했으니 조계사신협을 뿌리째 뒤흔든 사건이다.
송모씨는 지난 해 6월부터 자신과 자신의 부인, 전 총무원 직원 강모씨, 조계사신협 명의로 주식투자에 뛰어들었다. 적발되기까지 1년여 동안 108억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돈이 불법으로 입출금됐으며, 이 과정에서 34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올 1월부터는 조모씨의 제의로 구권화폐를 매입하려고 고객예치금 71억원을 세 차례에 걸쳐 빼냈다. 이 과정에서도 16억5천만원이 날아갔다.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2천만원이 넘는 예금자라도 원금을 되돌려 받는다. 따라서 1750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경제적 손실은 최악의 경우는 면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자산금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가 없어져버렸으니 조계사신협의 정상 운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파산까지도 예상된다.
조합원(주로 신도)들간의 상부상조, 신도와 사찰을 더욱 든든히 이어주는 매개로써 사찰 내에 신협을 설립하고 운영했지만, 조계사신협은 설립 4년만에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다.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서로에게 불신감과 금융기관을 사찰에서 운영하기 쉽지 않다는 자괴감만 남기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나. 관리·감독자의 금융업무에 대한 무지, 관리·감독의 소홀이 뒤섞여 빚어진 전형적인 금융사고라는 지적이다. 1년이 넘도록 자산금의 두 배 가까운 금액의 횡령이 저질러졌어도 눈치채지 못했다. 조계사신협 이사장은 송과장으로부터 1주 또는 2주에 한번 꼴로 입출금관리 등에 대한 보고를 들었으나, 당연히 송과장은 허위 내용을 보고했다. 이사장이 거래은행에 잔고액수만 확인했어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는 아쉬움을 달래는 소리일 뿐이다. 조계사신협 정관에 따라 3개월에 한번씩 하기로 되어 있는 자체감사도 99년 1월 이후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다.
감사도 실시하지 않았고, 허위 보고를 해도 1년이 넘도록 횡령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번 횡령 사건이 단순히 송·조씨 두 사람에 의해만 저질러진 것이냐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정치자금을 둘러싸고나 나올 법한 ‘몸통설’이 불교계에서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하다.
조계사신협 횡령 사건이 발생하자,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하여도 투명하게 운영할 능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차라리 운영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탄식에 가까운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매우 소극적인 태도이지만, 좋은 제도일지라도 늘 좋은 결과를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 세상일이라는 이치를 담고 있기에 수긍하지 못할 말도 아니다.
우리에게 충격을 준 또 다른 사건은, 수년 전 후원금을 횡령해 큰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소쩍새마을의 운영 법인인 승가원 이사 ㅂ스님이 이 법인의 기본재산 5억여원을 유용한 것이다. ㅂ스님은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병원을 개인적으로 인수하기 위해 이사회 결의 없이 지난 1월 5억여원을 유용했다. 이 스님은 유용사건에 책임을 지고 지난 8월 승가원 상임이사직과 소쩍새마을 원장직을 사퇴했다.
금융사고 예방책을 내놓아야 할 총무원도 금융사고의 예외가 아니다. 조계사신협 횡령사건에도 관여된 재무부 조모 과장이 지난 4월 총무원 공금 2~3억원(추정액)을 빼내 3일 동안 자신 명의의 통장에 입금했다가 되돌려놓은 사건이다. 다른 사건에 비해 큰 액수가 아니었고, 단기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총무원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이 사건은 조계사신협 횡령사건이 밝혀진 직후 조모씨가 총무원 공금에도 손을 댔는지 확인하기 위한 조사과정에서 밝혀졌다.
총무원에서는 처음에 “그런 사실이 없다”며 사건 발생 자체를 부인했다. 또 다른 유용은 없었는지, 관리상 어떤 문제점이 있었는지, 이후 경리사고 방지 대책은 무엇인지 등 아주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불교계에서 발생한 금융사건은 10건이 넘는다. 95년 가짜 스님 일력의 소쩍새마을 후원금 횡령, 97년 불교방송 경리과 직원의 횡령, 99년 조계사와 불국사의 사찰공금 횡령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회계 전문가들은 “내부통제시스템이 빈약한 종교단체에서 횡령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불교계도 기업의 관리제도를 도입해야 하며, 수익사업을 할 경우에는 철저하게 사업 차원에서 접근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처지에 놓이지 않기 위한 방편은 간단하다. “전문가에게 맡길 것은 맡겨 자문과 내부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아울러 재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다시금 강조해야 할 대목이다. 사분율에는 서른 가지 니살기바일제(30 사타라고도 한다. 사타라 함은 재물·탐심·죄업을 버리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서른 가지 가운데 돈·재물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부분이 세 가지나 된다. ‘금은이나 돈을 저축하지 말라.’ ‘보물을 바꿈질하지 말라.’ ‘물건을 서로 바꿈질하지 말라.’ 이를 어길 경우 재물을 내놓고 대중 앞에서 ?
恍맨臼㈍?한다.
이 같은 계율이 정해진 것은 부처님께서 기사굴산에 계실 때의 일이다. “부처님 제자가 돈과 재물을 사고 파는구나. 또 돈을 저자에 맡기고 갔다”는 거사들의 이야기를 들은 여러 비구들이 부처님께 이 일을 알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발란타 비구를 나무라셨다. “네가 한 일은 옳지 않다. 위의와 사문의 법과 청정한 행과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할 바가 아니거늘 어찌하여 제 손으로 돈을 맡기고 갔느냐.” 부처님은 또 돈이 생길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이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 것이니, 그대가 알아서 하라’ 하며 정인(淨人, 절에 있으면서 스님네를 받들어 섬기는 불자)에게 맡게 할지니라.” 요즘의 세상살이에서 이천오백년 전의 부처님 가르침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따지는 일은 둘째로 치고, 그만큼 돈과 재물이 화합을 그르치고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원인제공자임을 알려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