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적 나와 개성적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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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바라봅시다 - 이죽내
2000년 10월 224호
인간은 독립된 개체, 개인으로서 남들과 구별되는 유일한 존재인 동시에 남들과 공통적인 면을 함께 하고 있는 사회적 존재이다. 전자가 ‘개성적 나’라고 한다면, 후자는 ‘집단적 나’이다. ‘집단적 나’는 내가 속해 있는 사회집단이 나를 포함한 그 집단 구성원에게 한결같이 요구하는 일정한 행동상의 규범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집단구성원들의 ‘집단적 나’는 한결같이 같은 행동양식을 띄게 된다. 가령 ‘교수로서의 나’는 다른 교수들과 똑같은 교수역할을 하게 된다. 공적 생활에서 모든 사람들?나름대로의 지위와 역할이 있다. 그 역할수행을 하는 것은 ‘집단적 나’ 이다. ‘집단적 나’는 내가 나로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이다. 일종의 가상假相이다.
따라서 가상인 ‘집단적 나’를 자신의 진상眞相인 ‘개성적 나’와 구별함은 자기실현과 정신건강을 위해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는 자신의 지위나 역할이 마치 자기자신인것처럼 착각하여 자기소외나 자기부정에 빠지기 쉽다. 특히 일상에서 ‘개성적 나’와 ‘집단적 나’의 혼동을 볼 수 있다. 일례로, 사람들이 곧잘 나의 생각, 나의 가치관, 나의 신념이라고 하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결코 자기의 생각, 가치관, 신념이 아니라 남들의 것, 즉 부모, 선생, 친구의 것이거나 신문이나 책에서 읽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부모, 선생, 친구의 생각이나 가치관이란 것도 그들 자신의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속해 있는 어떤 집단이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주입된 것이 대부분이다. 말하자면, 집단적으로 주입된 생각이나 가치관을 마치 자기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개성적 나’는 억압되고 만다.
물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집단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상, 가정과 사회의 교육을 통해서 그런 공통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을 형성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특히 청소년기에 이르기까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루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부모, 선생, 자신이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닮고, 그런 사람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내 것으로 만들어 간다. 그것이 다름 아닌 사회화 과정이다. 남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비정상인으로 취급받아 그 집단으로부터 소외 내지 왕따 당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유행에 민감하게 된다. 청소년들을 비롯한 인생의 전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장애는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사회적응의 문제로 나타난다. 사회적응이 제대로 안 된다는 말은 집단화 혹은 사회화가 잘 안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와 같이 인생의 전반기의 주된 발달과제는 사회화를 통한 ‘집단적 나’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후반기의 발달과제는 개성화를 통한 ‘개성적 나’를 실현하는 것이다. 대개 사십대로부터 시작되는 인생의 후반기는 자신의 개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다. 이는 마치 봄이 오면 그 다음에 여름, 가을, 겨울이 뒤따르는 자연의 이치와도 같은 것이다. 하루의 해에 비유하자면, 인생의 전반기는 아침에 떠오른 오전의 해라면, 인생의 후반기는 석양을 향해 지는 오후의 해와 같은 것이다. 인생의 전반기의 주제가 삶이라면, 인생의 후반기의 주제는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동시적 현상이지만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즉, 삶이 세상과의 관계를 뜻한다면, 죽음은 세상과의 단절을 통해 내적 자기자신과 관계를 맺어 새롭게 태어남을 뜻한다. 내가 새롭게 태어날 때 내가 보고 있는 세상도 새롭게 태어난다. 그전의 세계와의 관계가 유위有爲의 대상관계였다면, 이제는 무위無爲의 일여관계이다. 유위의 대상관계에서는 모든 대상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에 불과했다면, 무위의 일여관계는 모든 대상과 ‘하나’되는 사랑의 관계이다. 유위의 대상관계가 소유의 관계라면, 무위의 일여관계는 존재의 관계이다. 존!
재의 실현은 소유에 대한 집착을 끊음으로써 가능하다. 소유에 대한 집착을 끊고 끊어 무소유에 이른 상태가 존재의 실현이다. 그런 집착이 끊어진 상태를 무아無我라 하고, 무아가 하는 행동이 무위이고, 무위에서 모든 것은 스스로의 모습(自然)으로 드러난다. 이런 무아無我, 무위無爲, 자연의 상태가 개성이 실현된 상태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삶의 의의는 궁극적으로 ‘개성적 나’의 실현에 있다. ‘개성적 나’의 실현으로 역시 사회와 시대를 위해 건전한 ‘집단적 나’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성적 나’의 실현은 한 개인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과업이요, 역사와 시대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시대는 개성의 실현 혹은 ‘개성적 나’가 위협받고 있는 시대이다. 너무도 집단정신이 지배하고 있는 시대이다. 그 대표적 한 예가 현대인의 합리적 사고의 일방성一方性이다.
‘합리적’이란 말은 보편성, 일반성을 띈 말이다. 보편성이나 일반성은 집단성을 가리킨다. 개개인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보편성 외에 그 개인 특유의 개별성이 있다. 그 특유의 개별성이 그 개인을 특징하고 있는 것이다. 개별성이 없다면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그 개별성으로 인해 개개인은 각자 특유의 삶을 다양하게 구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삶은 그 개인에게만 속한 유일한 것으로서, 그것은 보편성을 띈 합리적 사고의 영역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개인의 개별성은 비합리적 영역이다.
50대 중반의 한 교수가 상枾?찾아온 적이 있다. 수년 이래로 때때로의 두통, 불면, 불안 증세가 별 이유도 없이 있다가 요즘은 심해져서 연구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고혈압이 있어서 내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기도 하였다. 그런 증세가 생기기 전에 집에 돌아오면 하찮은 일에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하여 자신이 왜 그런가하고 생각해 보았으나 별 이유가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가족들에게 신경질이 잦아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평생 학문에만 전념해 왔고 누구못지 않게 그 분야에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 분의 문제는 구체적인 삶의 결여였다. 그는 삶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만 파악하고 살아왔다. 학문세계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야 하겠지만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합리적인 것이 보편성, 추상성을 띄고 있는데 반하여, 비합리적인 것은 개별성, 구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비합리적인 것이 합리적인 것보다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살아야 건강해진다. 정신장애는 비현실적 삶에서 생긴다. 삶은 전체로서 살기를 원한다.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비합리적으로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집단적 나’로서 뿐만 아니라 ‘개성적 나’로서 살기를 원한다. 그렇지 않을 때는 불건강해지거나 병이 생긴다. 합리와 비합리, 집단성과 개성은 상반되는 대극적對極的 쌍雙으로서 마치 부부관계(陰陽)처럼 불가분적인 것이다. 이것을 서양에서는 대극對極의 합일合一(coniunctio oppositorum), 동양에서는 상반상생相反相生으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