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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 사이의 海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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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일백호 기념특집 - 소흥렬 1990년 06월 100호
소흥렬씨/이화여대 철학과 교수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가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한다.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도 그것이 종교적 비약을 통해서만 체험될 수 있는 초월적 세계임을 시인한다. 그러한 초월과 비약이 없다면 이토록 우리 인간을 종교적으로 갈망하게 하는 지향성이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언어적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체험의 경지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방대한 경전이 있다. 종교적 선각자들이 안내하는 길의 정통성과 전통을 지켜주는 언어적 표현들이다.
그것은 먼저 종교적 수행자를 위한 안내의 길이지만 또한 종교적 경지로부터 다시 우리의 생활세계로 내려오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늘을 오르게 하는 길은 다시 땅으로 내려오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따라서, 오르는 길의 초월성과 비약은 그대로 내려오는 길의 비약이 된다.
언어적 표현만으로는 종교적 깨달음의 경지와 현실의 생활세계가 직접 연결될 수 없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그렇지만 언어적 표현만큼 풍부하고 다양하게 그 길을 안내해줄 수 있
는 것도 없으므로 저 방대한 경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경전의 언어는 이미 우리의 생활언어가 아니다. 살아있는 오늘의 언어로 그 뜻을 풀어주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오늘의 선각자들은 그들의 언어로 하늘과 땅을 잇는 그 길을 새롭게 다져주어야 한다.
학술언어, 예술언어, 일상언어, 실천언어, 시각언어, 행동언어 등 다양한 언어적 표현이 높고 심오한 개달음의 세계를 번뇌와 갈등으로 어두워진 현실세계와 연관되게 하는 폭넓은 길, 친절한 길, 다정한 길, 이것이 「海印」의 길이다. 여기서 만나는 다양한 얼굴들, 진지한 마음들은 현실세계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빛이다. 반목하는 절망에서 화합하는 희망으로 이끌어주는 안내자들이다. 아름답고 평이하고 살아있는 우리 글로 맞아주는 다정한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