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게송산책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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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회해 - 반산
2000년 10월 224호
화엄경십지품을 설하기 위해 타화자재천궁의 마니보장전摩尼寶藏殿에서 법회가 열리고 있다. 법주는 금강장보살이다. 금강장보살이 보살대지혜광명삼매에 들었다가 부처님께서 금강장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가피를 주신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위신력을 힘입어 십지의 이름을 설하고는[첫째는 歡喜地요 둘째는 離垢地요 셋째는 發光地요 넷째는 焰慧地요 다섯째는 難勝地요 여섯째는 現前地요 일곱째는 遠行地요 여덟째는 不動地요 아홉째는 善慧地요 열째는 法雲地이다], 이어서 십지법문은 보리로 향하는 가장 좋은 길이며 또한 청정한 법의 광명문이다. 이렇게 설하고는 묵연히 있으니, 대중들이 解脫月보살을 필두로 금강장에게 법문을 청한다. 이른바 삼가오청三家五請이다. 먼저 해탈월이 청법하고 대중이 청하고 부처님께서 광명으로 법을 청한다.
타화자재천이 어떤 곳인가? 욕계에서 가장 높은 하늘이다. 이곳은 남이 변화로 나타내는 즐거움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을 줄 아는 천인天人이 사는 곳이다. 사촌이 논을 사면 함께 기뻐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십지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서로서로 쳐다보고 공경하오며 모두들 한결같이 우러르기를 벌들이 좋은 꿀을 생각하듯이 목마른 이 감로수를 그리워하듯[相視咸恭敬하야 一切悉專仰호대 如蜂念好蜜하며 如渴思甘露하노이다]들으려는 마음이 금강과 같고 부처님의 수승한 지혜 깊이 믿으며 마음 자리(心地) 아는 데 내가 없어야 이렇게 수승한 법 능히 듣나니[持心如金剛하야 深信佛勝智하며 知心地無我하야사 能聞此勝法이로다]목마를 때 냉수를 생각하듯이 굶주린 이 좋은 음식 생각하듯이 병난 이가 좋은 약 생각하듯이 벌의 떼가 단 꿀을 좋아하듯이[如渴思冷水하고 如饑念美食하며 如病憶良藥하고 如蜂貪好蜜이라]우리들도 오늘날 그들과 같이 감로 법문 듣기를 원하나이다[我等亦如是하야 願聞甘露法하노니]”
이처럼 어렵게 법문을 청하는 것은 어떤 뜻이 있을까? 대중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긴장감을 주기 위해서일 것이며, 화엄에서 십지법문十地法門이 가장 훌륭한 까닭이다. 이런 예는 법화경 방편품에서 삼지삼청三止三請의 예를 본 적이 있다. 법화회상에서는 여섯 가지 서상[法華六瑞: 說法瑞, 入定瑞, 雨花瑞, 地動瑞, 衆喜瑞, 放光瑞]을 보이신 후 말씀이 없으셨다. 이와 견주어 오늘날 우리들은 불법에 대한 믿음과 간절함이 어떠한지 되돌아볼 일이다. 간절한 청법과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득도得道의 길은 열리는 것이니, 불법을 수행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고 힘이 든다. 세상에 다른 어떤 일보다 가장 값지고 보람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세상의 어떤 기쁨보다 깨달음의 기쁨은 가장 뛰어나고 오래 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법열法悅은 한 번이면 족한 것이리라.
이어서 불법의 어렵고 미묘함을 비유로 송하기를,“허공에 그려 놓은 그림과 같고 공중에 부는 바람 모양과 같아 부처님의 지혜가 이와 같으매 분별커나 보기가 매우 어려워[如空中彩畵하며 如空中風相하니 牟尼智如是하야 分別甚難見이로다]수행이 오래잖고 지혜가 얕아 의식意識만 따라가고 지혜가 없어 이 법 듣고 의심하면 악도에 타락 그들이 불쌍하여 해석 않노라[有行未久解未得하야 隨識而行不隨智라 聞此生疑墮惡道하나니 我愍是等故不說이로라]바닷물과 겁화중劫火中에 있게 되어도 이 법을 듣자올 수 있으려니와 의심내고 믿지 않는 그런 무리는 영원히 이런 이치 듣지 못하리[雖住海水劫火中이라도 堪受此法必得聞이어니와 其有生疑不信者는 永不得聞如是義로다]허공에 날아가는 새의 발자국 말할 수도 보일 수도 없는 것이니 십지의 깊은 이치 그와 같아서 마음과 뜻으로는 알지 못한다[如空中鳥跡을 難說難可示하야 如是十地義를 心意不能了로다]”
두 번째 게송을 잠시보자. 『대혜서장大慧書狀』의 그 유명한 증개장曾開狀에서 서간법문으로 “깨닫기를 기다리거나 쉬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앞서게 되면, 관계 화상(灌谿志閑,-895)이 임제 선사(臨濟義玄, -867)에게 멱살을 잡히고 내동댕이 쳐졌더라도 결코 깨닫지 못하였으리라.” 하면서 소개한 게송이다.
이처럼 십지의 법문을 청하는 과정을 거쳐서 금강장보살의 법문이 시작된다. 이 중요한 법문도 여래가 아닌 보살의 설법으로 이어진다. 승불신력承佛神力과 여래의 가피를 입고서 말이다.
“불자여, 보살이 처음 이런 마음을 내고는, 곧 범부의 처지를 뛰어나 보살의 지위에 들어가서 여래의 집에 태어나나니, 그 가문의 허물을 말할 이가 없으며, 세간의 모든 갈래를 떠나서 출세간의 도에 들어가며, 보살의 법을 얻고 보살의 자리에 머물며, 삼세가 평등한 데 들어가 여래의 종성에서 결정코 위가 없는 보리를 얻으리니,[佛子야 菩薩이 始發如是心하면 卽得超凡夫地하야 入菩薩位하며 生如來家하며 無能說其種族過失하며 離世間趣하야 入出世道하며 得菩薩法하며 住菩薩處하며 入三世平等하며 於如來種中에 決定當得無上菩提니라.]”예로부터 화엄경의 중심은 십지법문十地法門에 있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위의 경문에서 보듯이 십지수행은 까다롭고 단계적인 수행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고려대의 큰스님이신 보조국사(普照知訥, 1158-1210)는 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을 주장한 것이 아닐까? 원돈성불론이란 선교겸수禪敎兼修의 수행관으로 화엄경의 사상을 바탕하여 완성한 성불의 길이니 곧 조계종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인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즈음 지구의 한 쪽에서는 올림픽이 열린다. 불법을 믿고 수행하는 기쁨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기쁨 중에 어느 것이 좋을까? 이 질문에 대해 개인의 업과 사고방식에 따라 답이 각각 다르리라. 유루의 행복과 무루의 행복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으랴! 하지만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것을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중생이 많은 것이 현실임을 알고, 그 근기에 맞게 불법을 홍포해야 하리라. 남의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불자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수행이 오래잖고 지혜가 얕아 의식意識만 따라가고 지혜가 없어”라는 경의 말씀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