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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유인의 삶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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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당 솔바람 - 경성 2000년 10월 224호
전한前漢시대 선제宣帝 때 태자의 스승인 태부太傅의 벼슬에 오른 소광疏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 벼슬에서 물러날 때에 황제와 태자가 많은 재물을 하사하였다.
소광은 그 재물을 자신이나 자기 자손들을 위해 쓰거나 앞날을 위해 모아두지 않고 어렵게 사는 친지와 이웃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
그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자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자 소광은 현인다재즉손기지 우인다재즉익기과 賢人多財卽損其志 愚人多財卽益其過 즉, 어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재물이 많아지면 그 지조를 손상할 수밖에 없고, 어리석은 사람은 재물이 많아지면 그 허물을 더하게 되는 법이라고 하였다.
심예필심훼 심장필심망 甚譽必甚毁 甚贓必甚亡 명예를 누리는 것이 심하면 반드시 그 명예를 심하게 훼손당하게 되는 일이 생길 것이며, 뇌물을 받는 것이 심하면 반드시 심한 멸망을 초래할 것이다.
명예를 누리는 것이 심하다는 것은 자기의 분수에 맞지 않는 명예를 다른 사람들이 안겨 준다든가 자기 스스로 어거지로 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출가 승단에서 참회를 허용하지 않는 네 가지 바라이波羅夷, P r jika죄 가운데 하나인 대망어망설자득상인법 大妄語妄說自得上人法도 도道를 깨치지 못한 비구가 거짓으로 도를 얻었노라고 하여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으로 이것을 범한 사문은 ‘사람이 목을 잘리우고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처럼, 바늘 귀가 떨어진 바늘을 다시 쓸 수 없는 것처럼, 쪼개진 바윗돌을 다시 붙일 수 없는 것처럼’ 다시는 비구의 생활에 들어올 수 없는 극중죄極重罪로 다스려진다.
분수에 맞지 않는 명예를 누리던 전직 고관대작들이 한결같이 그 명예를 심하게 훼손하고 마는 예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뇌물을 받음이 심하면 반드시 심한 멸망을 초래한다는 것은 연일 신문 정치면이나 사회면에서 접하는 상황이다.
『법구경法句經』에 보면 다미사라는 임금이 선심을 일으켜 보시를 행하고 자 하여 칠보를 산처럼 쌓아 놓고서 얻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한 줌씩 가져가게 하였다.
이것을 아신 부처님께서 그를 교화하기 위하여 바라문의 행색으로 왕 앞으로 나아갔다.
왕이 나와서 구하는 바를 묻자 부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보물을 얻어다 집을 짓고자 함이라”고 하셨다.
왕은 “좋다, 한 줌 가지고 가라”고 했다.
부처님께서 보물을 한 줌 쥐고 몇 걸음 나오시다가 다시 돌아가 본래 있던 자리에 내려 놓았다.
왕은 이상스럽게 생각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으로는 겨우 집 하나 지을 수밖에 없다.
집만 있으면 무엇하나, 장가들 비용이 없는데.
” 라고 대답하셨다.
왕은 “그렇다면 세 움큼을 가져가라” 고 했다.
부처님께서는 가져가시다가 다시 돌아와 또 내려 놓았다.
왕이 까닭을 묻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이것으로 집을 짓고 장가들 비용은 되겠지만 전답도 없고 가축도 없으니 어찌 살 수 있겠는가.
” 왕은 이번에는 일곱 움큼을 가져가도록 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돌아와 내려 놓으며 “경사나 흉사 등 큰 일이 닥칠 때는 어찌하겠는가”라고 하셨다.
왕은 그 보물을 모조리 가져가도록 하였다.
부처님은 받았다가 다시 또 내려 놓았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원래 내가 구한 것은 모두 생활을 위한 것일 뿐,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의 모든 것은 덧없어 오래도록 소유할 수 있는 방도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물이 산처럼 쌓여 있을지라도 내게 영원히 이익될 것은 없다.
탐욕이란 고통만 주는 것일 뿐, 차라리 무위無爲의 도道를 구하는 것보다 터럭만큼도 나을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보물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 이에 왕은 크게 깨닫고 귀의하자, 부처님께서는 광명을 보이시며, 왕의 귀의를 허락하셨다.
설사 보물을 산처럼 쌓아 놓는다 할지라도 인간의 탐욕은 채워지지 않는 것이다.
탐욕조차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재물에 끄달려서 허비하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지 않은가.
탐욕과 재물을 놓아 버린다면 부패를 자행하지 않을 것이며, 부정이나 부패와 손 잡지 않는다면 떳떳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포난사음욕 기한발도심 飽暖思淫慾 飢寒發道心 『경행록景行錄』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쓸데없는 쾌락만을 생각하고, 굶주리고 추운 형편에 처해야지만 바른 마음이 싹트고 자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의식주의 문제가 해결되고 생활에 여유가 생긴 후에는 몸의 쾌락을 구하게 마련이다.
그런 욕망 가운데에 음욕은 맹렬히 타는 불처럼 우리의 몸을 사로잡아 태워 버리므로 한번 음욕의 쾌락을 맛본 사람은 헤어 나오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욕망은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여 가정과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편이 나아져서 배부르고 따뜻하게 될 때에는 마치 발 앞에 재앙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바짝 정신을 차리고 긴장해야 하는 것이다.
북송北宋의 제삼대 황제로 거란족과의 오랜 분쟁을 해결하고 태평성대를 이룬 진종황제眞宗皇帝는 평안을 누리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위식험知危識險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고 어록에 남기셨다.
지위식험이란 내 앞에 놓여 있는 위태함을 알고 위험함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별없이 무턱대고 앞으로만 나갈 것이 아니라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미리미리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돌다리도 두드려보며 건너가는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높은 지위에 오르든가 커다란 권력을 갖게 되었더라도 항상 바로 앞에 위태함과 위험함이 놓여 있다는 긴장감을 버리지 말고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평안을 누리고 가문의 번영을 이루는 길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빙자하여 자기 집안을 일으키고 자기 가문의 부귀영화를 도모하기 위해서 손인이기損人利己, 즉 남을 해롭게 하여서 자기를 이롭게 한다든가 해중성가害衆成家,많은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며 자기 집안의 영달을 꾀하는 것은 오래지 않아 자기뿐 아니라 자신의 집안까지도 망치는 패가망신敗家亡身의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인 것이다.
신라시대 원효 스님께서는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에서 수행인을 경책하시기를 배슬여빙 무연화심 아장여절 무구식념 拜膝如氷 無戀火心 餓腸如切 無求食念 할 것을 당부하셨다.
즉 부처님께 절을 올리는 무릎이 시려서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더라도 따뜻한 방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처럼 배가 고프다 할지라도 밥을 구하는 생각조차 내지 않으면서 수행해야 한다고 하셨다.
수행인의 이러한 자세를 일반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시대 착오적인 발상일 테지만 그러나 보다 참된 인생의 가치는 물질적인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가려진 내면 세계에서의 자기완성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히말라야 산의 눈과 갠지스 강의 물처럼 많은 금과 돈을 얻는다 하더라도 끝나지 않을 탐욕을 벗어버리고 양심과 도덕과 법을 지켜간다면 하루하루가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고 즐거운 대자유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