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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세상 창조 많이 하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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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관암 2000년 10월 224호
나는 절집과 다겁에 인연이 있음인지 어릴 때부터 부처님의 향기를 그리워하며 마음이 허전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발걸음은 고적한 산사로 향하곤 했다. 출가전 학생 시절, 어느 늦가을 오후. 나는 가을이라 시린 옆구리를 안고 완행 열차를 타고 홀로 곤양 다솔사로 향했다. 내가 자주 찾는 이 곳은 부처님 진신 사리탑이 모셔진 그윽한 고찰로 반갑게 맞아 주는 아는 스님도 계셨다. 오늘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스님은 다솔사 야생차밭에서 직접 따서 만든 작설차를 꺼내어 차 한잔 하면서 부처님의 좋은 가르침을 일러주었다. “군대 갔다왔나?” “예! 제대하고 이번 가을학기에 복학했습니더.” “그래, 군대에서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말이 있지만 이것은 좀 전투적이고 무식한 말이고 불가佛家에서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어.” “모든 것은 마음이 소작한 바요. 마음먹기에 달렸다 이거야.” 스님은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이야기를 원효의 해골바가지 일화와 경허와 만공 스님의 일화 등으로 재미있고 감명 깊게 이야기하면서 나에게 대뜸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우스갯소리로 “가을이고 해서 마음에 드는 이쁜 여자하나 생기는 것입니더”라고 대답해 버렸다. 스님은 핀잔을 주시면서도 “내가 니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마”라고 했다. 기분 좋게 인사하고 절에서 내려와 열차에 올랐는데 내 옆자리에 정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이쁜 여학생이 나에게 호감을 가지면서 살며시 앉았다. 나는 속으로 스님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하면서 부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우리는 이야기가 잘되어 진주에 도착해서는 저녁도 같이하고 촉석루 공원에서 데이트도 즐겼다. 꿈이 아니었다.
전망 좋은 등받이 의자에 앉아 별도 보고 불빛에 너울져 흐르는 강물도 보았다. 얼마 후 그녀는 내 곁으로 한뼘 가까이 당기면서 춥지 않으냐고 말해왔다. 그 말에 나는 얼른 오늘 스님의 법문을 생각했다. “부처님 말씀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했심더.” “한생각 돌이키면 추운 것도 없는 기라예.” 하면서 나는 똑똑한 채 스님께서 말씀하신 세상만사도 마음이 만든 것이라면서 열을 올려 설명했는데 반응은 정반대로 “그래요! 혼자서 세상 창조 많이 하이소” 하고는 휑하니 돌아서 가버렸다. 달려가 얼래고 달래봐도 변해버린 마음은 돌이킬 수 없었었다.
며칠 후 다솔사로 스님을 찾아가서는 스님의 일체유심조 법문 때문에 이쁜 애인 하나 놓쳐 버렸다고 따지듯 지난 일을 설명했는데 스님은 도리어 나에게 “이 멍청한 놈아, 배웠으면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잘 써먹어야지… 그 때는 유심법문唯心法門이 아니라 일심법문一心法門이야. 일체는 동근同根이요 동체同體라는 불교의 한마음으로 돌아가 옷을 벗어 감싸주어야지 하시면서.” “니도 일찌감치 머리 깎는 편이 낫겠구먼….”부처님의 기본 교과서에 실려 있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진리는 일찍이 알았으나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말을 난 몰랐었다. 요즈음 스님과 절이 제 구실을 못하는 인因이 어찌 부처님 법에 있겠는가! 모두가 잘 써먹지 못하는 우리네 탓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실은 자기 것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지식과 재능, 재물 그리고 육근六根(눈·귀·코·입·몸<손,발>·정신)마저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까 생각하는 가을이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