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편으로 빚은 우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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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0년 10월 224호
시간의 흐름에 밀려 추석 명절이 한바탕 지나갔다.
지리하게 느껴지던 여름도 흐르는 시간 앞에 자리를 내 주고 저만치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난히 울던 매미의 자리는 어느새 귀뚜라미가 대신했고, 이제 들길에는 달맞이, 개망초, 달개비를 대신해서 파란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향기 짙은 들국화와 구절초가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다. 누군가가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던가? 잎사귀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유난히 뜨거운 햇살은 대지와 이별하고 쌀쌀한 바람과 손잡을 것이다. 문득 시간 위에 우뚝 선 자신은 무엇을 비우고 어떤 모습으로 가을 속으로 걸어가야 할 것인가 앞으로 향해 있는 발끝을 본다.
참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에 묻혀서 희미해져 가는 사미니 시절 추억으로 자리하지만 추석 명절만 되면 생각나는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스님들의 솜씨로 태어난 팔도 송편은 둥근 우주선 같은 모양, 장난감 기차 같은 모양이며 별 모양, 달 모양 등 다양하게 빚어진 송편은 큰 쟁반에 누워서 오똑오똑 폼을 잡고 있었고, 그 솜씨들을 평가하시는 어른 스님들 말씀에 큰방에서는 웃음꽃이 문틈으로 새어나고 있었다. 먼저 송편 찐 것 잘 고여서 각단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큰방 대중스님과 각방에 계신 어른스님들께 공양을 나누는 일까지 차례로 일은 끝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각방으로 공양 올린 송편 맛을 품평하는 어른 스님들의 방에서부터였다.
치문반 시절에는 그저 대중 규칙에 어긋남 없이 자신을 길들이느라 여념이 없던 때라 도반들과 어떤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상반스님들은 어쩌면 그렇게 감쪽같이 일을 도모할 수 있을까…… 아직 강원의 생태를 모르는 아랫반 시절에는 상반스님들 참 재주도 기막히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송편 속을 나를 때는 밤이나 완두콩, 땅콩, 참깨에 설탕 섞은 것이며, 계피 등이었는데 언제 그렇게 송편 속이 둔갑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떤 어른스님 방에서는 고춧가루가 속에 가득한 송편이 나왔다 하고, 어떤 상반스님 방에서는 소금이며 겨자 같은 속을 탱글탱글 담은 송편이 나왔다고 야단이었다. 도량의 소란스런 웅성거림은 큰 방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에 묻혀서 맑은 가을 하늘로 사라질 뿐이었다.
강원에서 몇 해를 지나면 일을 도모하는 솜씨는 해마다 늘고, 어른 스님들이 단호하게 꾸짖으시는 목소리에는 나도 예전에 그랬던 적이 있었단다… 아니면 그래 강원시절이 아니면 또 언제 그런 악동 노릇을 하겠냐는 말씀도 내심에는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해마다 일어나는 일이지만 알면서도 속아 주시고 함께 웃어 주시던 어른 스님들이 계시는 한은 살얼음을 밟듯이 살아가는 학인 시절이 그리 팍팍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올해는 함께 송편 빚던 불자들이 어디 ‘차 한잔의 선율’ 스님 방송하는 목소리만큼 송편도 잘 빚는지 보자고 벼르는 통에 예전부터 음식을 만드는 손재주가 워낙 없던 나로서는 변함없이 둥근 우주선 하나 만들어서 얼굴 빨개진 쑥스러움을 대신했다.
계절이 오고 가는 길목에 맞이한 명절, 수행자에게 명절과 고향의 의미는 어떤 걸까? 저마다 한 가지 의미와 가치는 품고 살아갈 것이다. 세간에서 고향이 부모님 품 같은 편안한 곳이라면 출세간에 사는 수행자들에게 고향은 바로 견성見性의 자리가 아닐까? 삼독심三毒心 다 벗어 놓은 그 자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