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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암사淨巖寺 수마노탑水瑪瑙塔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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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정영호 2000년 10월 224호
정암사淨巖寺 수마노탑水瑪瑙塔 정암사淨巖寺는 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한리 산214번지 함백산咸白山 기슭에 위치한 고찰로 『태백산정암사사적太白山淨巖寺事蹟』에 의하면 「태종정관십구년을사 자장창립건불사리탑太宗貞觀十九年乙巳 慈藏創立建佛舍利塔」이라 하여 신라 자장율사가 선덕여왕14년(645, 당唐 정관19년)에 창건하고 불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정선 함백산 밑에 「갈래절」이라는 유서깊은 옛 사찰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 곳에 보석으로 만든 사리탑이 있다는 소문을 일찍부터 들었기에 꼭 한번 찾아가려고 항상 마음먹고 있었다. 1960년 8월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길을 나섰는데 그 때만해도 교통이 좋지 않아 정암사까지 가는데 2∼3일이 소요되었다. 지금은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중앙선 혹은 함백선 열차를 타고 고한역에서 내려 버스나 승용차 등을 이용하면 당일로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해졌다.
처음 찾았을 때의 일이다. 걷고 걸어도 정암사는 보이지 않고 가끔 광산트럭만이 시커먼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갈 뿐 민가도 사람도 없었다. 얼마를 걸었던지 다리도 아파 오고 온몸에 땀과 먼지가 뒤범벅이 되어 좀 쉬어 갈까 하는데 계곡쪽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혹시 민가나 마을이 있나 하고 소리나는 쪽으로 갔더니 십여명의 장정들이 천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갈래절(정암사)을 찾아 왔다고 하였더니 절은 바로 저 위라고 하며, 다 왔으니 목이라도 추기고 가라면서 술잔을 권하였다. 그리고는 안주라고 하며 펄펄 뛰는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초고추장에 찍어 통째로 주는데 그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몇 년 후 두 번째 갔을 때도 그 곳 마을 사람들이 천렵을 하며 똑같은 안주를 먹고 있었는데 그 때는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 73호(정암사의 열목어熱目魚 서식지)로 지정 보존하게 된 후였으며 필자로서는 그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설명하면서 앞으로는 절대 실수하지 않도록 부탁하였었다. 그 후 열목어는 보호되고 그 서식지는 넓게 책정되어 주변 환경까지 잘 보존되게 되었다. 천렵꾼들의 말대로 한 굽이를 돌아 골!
짝으로 올라가니 곧 정암사가 보였다. 절 마당에 이르러 주지스님을 찾았으나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툇마루에 앉아 땀을 닦으며 쉬고 있는데 계곡 위쪽에서 스님 한 분이 내려와 반가이 맞아주었다. 인사를 드린 후 이 절을 찾아온 연유를 말하니 수마노탑은 바로 저 산 중턱에 서 있다고 손으로 가리켜 주었다. 스님이 가리키는 곳은 적멸보궁寂滅寶宮 바로 뒤편의 산 중턱인데 산간이라 일찍이 해가 져서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여 올라갈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이 찾기로 하고 스님이 기거하는 윗방에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당시의 그 스님은 후일에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 된 서옹西翁 큰스님이셨다. 지금도 간혹 만나뵈오면 밤새도록 이야기 하던 당시의 일을 회상하곤 한다.
정암사는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자장 율사 창건이라 전하나 상고上古의 유구는 없고 오직 적멸보궁에서 수마노탑 한기를 볼 수 있다. 이 탑은 절에서 약100m 떨어져 함백산(해발1573m) 비탈에 건립된 칠층 모전석탑模塼石塔인데 이 곳에서 많이 채굴되는 수성암류의 석회암을 한변 30∼40cm의 대소大小 전형塼形으로 절단하여 생석회生石灰 등을 사용하여 축소하였다. 전돌塼石은 곱게 다듬어 갈았고 회록색灰綠色으로 보였다. 「마노瑪瑙」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칠보七寶의 하나인데 정암사에 전하는 사적기에 의하면 탑내에는 불사리佛舍利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진보珍寶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탑의 전체높이는 9m로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4각형의 기단은 화강암으로 큰단大段을 이루었는데 상·하 각 삼층의 석질과 구성에 있어 차이가 보이는 것은 창건 이후의 개수改修로 인한 듯하였다.
일층 탑신은 높이 103cm, 너비 178cm로서 남쪽면 중앙에 너비 13cm의 화강암 석주石柱로 문틀을 마련하고(높이 60cm, 너비 62cm) 1매석의 문비門扉는 중앙에서 음각 단선單線으로 양분兩分하였으며(1매의 너비 20cm) 구 중심에는 쇠문고리를 달아 놓았다. 옥개받침은 일층이 일곱 단인데 상층에 따라 한 단씩 감소되었으며 낙수면의 층단 또한 제 일층의 구단에서 칠층의 삼단에 이르기까지 한 단씩 감소되었다. 각층 옥개의 네 모서리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엿보이며 곳에 따라 남아 있는 것이 주목되었다. 상륜은 청동제로서 노반으로부터 높이 170cm 찰주에는 화판형花瓣形을 돌린 보륜寶輪 다섯 단과 보개寶蓋 보주寶珠가 남아 있어 거의 완전한 모습을 이루고 있다. 또 찰주로부터 사층옥개에 이르기까지 철쇄鐵鎖를 걸어놓은 것은 법주사팔상전法住寺捌相殿 상륜부와도 유사하다.
사적기에 의하면 창건 당시 이 탑을 건립했다고 하나 그 후 「건릉사십삼년乾陵四十三年(1778) 무술중춘戊戌仲春 수마노보탑水瑪瑙寶塔 중수사적重修事蹟」 및 「대청동치삼십년大淸同治三十年(1874) 갑술오월수마노보탑중수지甲戌五月水瑪瑙寶塔重修誌」 또는 천의산정암사비명天倚山淨巖寺碑名(적멸보궁寂滅寶宮 오른쪽에 건립되어 있음)의 「건릉삼십육년乾陵三十六年 경인庚寅(1770) 사월이십일시역四月二十日始役 신묘辛卯(1771) 사월이십팔일종역四月二十八日終役」 등의 기록으로 보아 이 탑은 수차 중수를 거듭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단의 상부·삼층이 하부와 서로 다른 것도 기단부의 개축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남쪽면 탑 앞에는 공양석이 있는데(가로 55cm, 세로 40cm, 높이 20cm) 상면 중앙의 연화문과 측면의 안상 등이 고려시대의 수법으로 생각되었다. 사찰경내에서 연화대석 한 개와 파손된 광배 한 석石이 발견되었는데 광배의 화염문과 중앙의 중판中瓣 연화문으로 보아 이것 또한 고려시대의 조성으로 생각되었는데 이러한 모든 조형물은 수마노탑 건립 연대추정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기타 경내에 !
기와편이 산란하였으나 문양이 있는 기와는 발견하지 못하였다.
정암사수마노탑은 그 후 국가보물 제 410호로 지정 보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수마노탑은 처음 조사 때부터 각층의 모전석이 결실 혹은 파손되어 지정 당초에도 보수의 문제가 논의되었던 것이다. 이후 여러차례에 걸친 현장조사로서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어 마침내 1972년도에 이르러 전면 해체 복원작업을 시행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