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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강사 능허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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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연정 2000년 10월 224호
범어사 강사 능허스님 일주문을 지나 범어사 경내로 들어서자 길가 한편에 엿을 파는 곳이 눈에 띠었다.
산 위에서 흘러나오는 맑은 물이 고랑으로 흐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정겨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서 엿 파는 아저씨는 열심히 울릉도 호박엿을 자르기에 여념이 없다.
진짜 호박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울릉도 호박엿이야 시장에서도 종종 사먹은 바 있지만, 그 옆에 대패로 밀어 주는 넙적한 엿이 무척 구미가 당겨 얼마냐고 물으니 천원이란다.
오백원이면 적당할 텐데 하는 망설임도 잠시, 군말없이 하나를 사기로 결정했다.
먹기 좋게 가운데 꼬치까지 하나 껴준 엿을 입에 물고 가자니 오고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눈길을 던진다.
아이들이나 물고 다닐 법한 것을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여자가 들고 절안으로 들어오니 한심해 보였겠지.
그러나 그 정도는 안면에 철판을 까는 뻔뻔함이 있었으나 엉뚱한 것이 관심을 보인다. 단내를 맡고 벌 한 마리가 윙윙대며 계속 주위를 맴도는 것이다.
휘휘 손을 내저어 봤자 벌이 물러설 리 만무.
벌과의 싱갱이를 보고 있던 한 보살이 ‘엿이 있는 한 절대 안 갈 거라’며 조언을 보낸다.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쏘일까 겁이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반도 먹지 않은 엿을 버리자니 아까워 엿에서 손을 떼기는 싫고.
‘버리면 될 것을 버리면 될 것을…’ 갈등.
간신히 비상구가 나타났기 망정이다. 얼른 종무소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그리고는 엿꼬치를 뒤로 하고 모르는 척 물었다

“능허 스님 방이 어딘가요.”

“기다리세요. 일반인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벽화 속 관세음보살님이 다 알고 있다는 듯 가여워하는 미소를 띠고 있다. <이곳은 수행도량이오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일반인 출입금지구역임을 알리는 작은 팻말을 뒤로 한 채 스님들 처소 깊숙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범어사 강원 강사이신 능허 스님이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중방을 지나 옆으로 난 좁은 계단을 오르자 기와가 얹혀지지 않은 작은 가건물이 나왔다.
그 가건물 한 칸이 능허 스님 방. 두 평 정도는 될까? 대찰이라 워낙 많은 스님들이 머물다 보니 스님들 처소가 모자랐던 모양이다.
“가건물이네요 스님.”
“대중이 많아 처소가 부족해 만든 건물이지요.”
“예천에 있는 절에 주로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아니요. 여기에 주로 있습니다.”
결코 크지 않은 방임에도 웬지 썰렁해 보이는 것은, 그날 따라 나뭇잎을 세차게 부벼대는 가을바람 때문이었던 듯싶다.
언젠가 읽었던 “이 세상에 방 한칸”이라는 소설 제목이 난데없이 스치고 지나간다. 능허 스님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예천의 고찰 주지였다.
화재로 불타 없어지다시피한 절의 주지를 맡아 꼬박 십이년 동안 불사를 해 복원해 놓은 분으로,사십대 중반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던 터였다.
능허 스님은 애초부터 절 주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왕 출가했으니 ‘중노릇’를 제대로 하고 싶어 은사 스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부려 강원 공부를 마치고는 봉암사 선방에서 삼년간 두문불출정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은사 스님으로부터 전갈이 왔다.
‘초파일 바쁜 일이 생겼으니 대신 와서 일을 좀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급히 예천으로 가게 된 것인데 불행하게도 초파일 행사가 끝난 직후 절에 불이 나 거의 모든 건물을 태워 버렸다.
행사가 끝나고 모아 놓았던 연꽃등에 자그마한 불씨가 남아 있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 불씨가 능허 스님의 발목을 잡았다. 십년간 스님은 절 주지를 맡아 불타 없어진 법당, 누각, 강원, 종무소, 봉향각 등 다섯 채와 무너져가는 천불전 등 다섯 채를 해체 복원하는 등 불사를 벌였다.
열 채를 불사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님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능허 스님에게는 불사의 비결이 있었다.
“불사는 주지의 복이자 덕인데 난 나름대로 믿음을 주었다고 봐요. 처음 불사할 때는 돈이 우선이 되더라구요. 목수인건비, 목재비 등등의 걱정으로 중의 정신이 희박했어. 그런데 나중에는 신도들에게 돈을 함부로 못 받겠어. 그게 어떤 돈인데 나 좋아서 부처님 좋아서 가져오는 것같지만 다 나름대로 바라는 바 소원이 있으니 내놓는거라. 함부로 못 쓰겠더라구.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안 이루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되고. 한번은 보살이 일백만원을 가져왔어. 유용하게 쓰라고. 그런데 그 돈을 가져오기까지 보살의 마음을 살피니 내가 쓰면 안 되겠어. 그래서 나보다 훨씬 복이 될 것 같은 스님께 주었어요.
” 절대 불공은 남한테 맡기지 않고 가정마다의 상황을 파악해 지극정성으로 기도해 주다보니 신도들은 바라는 바를 얻어갔고, 스님에 대한 믿음은 깊어갔다. 용문사의 불사는 그렇게 신도들과 스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늘 가슴 한구석에 공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던 스님에게 屠6년 승가대학원이 생기면서 학생 모집 공고가 났다. 앞으로는 여기를 졸업해야 강사 자격이 부여된다는 불교신문의 기사는 스님의 결단을 재촉했다.
당시 스님의 나이 사십칠 세. 나이는 그렇다 치고라도 주지라는 직책을 갖고서는 입학할 수 없다는 말에 능허 스님은 은사 스님께 주지직을 떠넘기고는 과감하게 짐을 쌌다.
“화엄경 하면 부처님 말씀 가운데 가장 방대하고 뜻이 큰 경인데 강원에서도 대교과목에 있기는 하지만 대략 이런 것이다 개략적인 것만 듣지 보지도 못하고 졸업하거든. 소위 중이 돼 화엄경 하나 못 보고 중노릇 끝낼 수 있겠느냐고 평소 맘먹고 있었는데 과목중에 화엄경이 있더라구.”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영남제일 강원으로서 과거 용문사의 위용을 떨쳐보고자 하는 야무진 내심도 있었다. 그 길만이 현재의 말사를 일으켜 세우는 길이라는 장기적인 안목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는 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수월한가. 공부를 하러 간 지 일년 반만에 은사 스님은 타계하셨고, 절에는 새 주지가 부임함으로써 스님의 계획은 순조롭지 않게 되었다.
스님은 “원래 내것이 아니니, 인연이 닿으면” 하시면서도 스님도 역시 사람인지라 미련이 쉽게 가시지는 않는 모양이다. “변소 한 칸이라도 자기가 지어본 사람이면 그 어려움을 다 알아요.
지어보지 않으면 그 마음 모르지.
그 때는 자다 한시건 두시건 잠이 깨면 밖에 나와 기둥도 만져보고 바닥도 만지고 그랬어.
그렇게 애착이 간다니까.
” 지금 스님은 승가대학원을 졸업하고 범어사 강원 사집 강사로 학인들을 가르치면서 강원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연구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능허 스님에게 유형의 많은 것을 포기케 했던 은해사 승가대학원은 전문 강사를 길러내기 위해 지난 屠6년 신설된 조계종 유일의 승가대학원이다.
그 일기 스님들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강원교육을 논의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 경학원이다.
그리고 경학원 회장에는 만장일치로 능허 스님이 추대되었다.
스님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데다 후덕한 인품으로 회원들을 포용하는 점도 감안됐겠지만 그뿐 아니라 경전해석의 남다른 안목을 다른 스님들도 인정하고 있다.
능허 스님은 이런 주위의 말에 늦게 시작하다 보니 아무래도 독해능력 등이 떨어진다고 겸손해 한다.
“아무래도 주지하는 기간이 길어 늦게 공부를 하다보니 글을 보는 독해능력, 해득능력은 좀 떨어져.
내용에 대한 이해나 안목 같은 것은 나도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보지만.
” 경학원에서는 요즘 조계종 교육원의 의뢰에 따라 강원교과과정의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 1, 2차 워크샵을 갖는 등 그 가닥을 잡아가기에 여념이 없다.
일단 강원교육은 과거 11∼12년 걸려 하던 것이 3∼4년으로 압축되다 보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과거에는 한문에 익숙해 내용파악이 쉬웠지만 지금은 한문세대도 아니기 때문에 내용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졸업을 하게 되므로, 졸업을 하고서도 배운 것이 포교 등 각 분야에 응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능허 스님의 생각은 이렇다.
“사실 사년 동안 한문을 익히다 보면 내용파악이 어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용파악을 좀더 빨리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인데, 그것은 한글화가 첩경이예요.
그러나 문제점이 정확한 번역이 어렵고, 한글로는 뜻글자가 주는 깊은 맛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글화는 하되 원문은 손대지 말고 주해서를 한글화하는 방안이 제일 좋지 않을까 해요.
강원교과 과정이 개편된다 해도 그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 강원교육은 안팎으로 변화를 요청받고 있는 듯하다.
교과목은 일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지만 시대상황은 엄청 변화하였고, 그 안을 들여다 봐도 학생들의 의식과 수준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학생들의 연령이나 수준이 많이 달라졌습디다.
과거에는 학생들도 어리고 불교에 대한 상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강원에 들어왔다면, 요즘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범어사만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학력을 보니까 서울대, 단국대, 동대 등 학력들이 일단 높아요.
그리고 나이도 많고, 불교에 대한 이해도 상당히 높습디다.
”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한문의 해석보다는 내용의 이해.
그동안 한문 해석을 주로 해왔던 상태에서 솔직히 벅찬 면도 있다고 고백한다.
스님은 강사답게 불교의 미래를 교육에 둔다.
교육은 인간의 위대한 발견 가운데 하나지만 교육도 인간관계가 얽힐 때 혼탁해지고 왜곡되니만큼, 시험을 통해 등급을 내고 공정한 등용이 이루어져야 불교가 살아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예전보다는 종단에서도 교육에 많이 신경을 쓰고 있어요.
종단개혁 이후 승가대학원을 만들어 전문강사를 길러내고, 고시위원회를 두어 금년부터는 비구계를 받으려면 사급 승가고시에 합격해야만 할 겁니다.
많이 나아졌어요.
그러나 아직도 강원의 강사를 주지가 임명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러니 주지가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울 수 있는 거라.
교육원에서 강사 자격증만 줄 것이 아니라 임명권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힘이 없어요.
” 능허 스님은 승가고시의 부활을 꿈꾼다.
모든 스님들의 점수가 나오면 자연 스님들 사이에 공부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고,스님들이 공부를 하면 불사는 저절로 될 것이니.
그러면 지금은 큰절에 주지만 달랑 있는 조용한 시골 말사의 절에 스님들이 공부하러 가지 못해 애쓸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