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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수행,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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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박원자 2000년 10월 224호
우리는 무엇인가
얼마전, 한 대학생이 부모를 토막살인해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뉴스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건이 있고 난 후 뒷소식을 들으니, 그 학생은 유수한 대학에 다니고 있을 만큼 성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모“?인정을 받지 못해 열등감에 시달렸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보도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의 처녀적 꿈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우리 나라 상황에서 여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불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렇다면 대통령의 부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바꿔 사관학교를 나온 군인과 결혼을 했다. 그런데 남편이 중도에 진급에 실패해 다시 꿈이 좌절되자, 다음엔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대리만족에의 희망이 아이들에게로 옮겨갔다. 이쯤되면 순수한 원願을 넘어선 끔찍한 집착이다. 남의 얘기이니 자세한 것은 알 수 없고 또 함부로 말할 바는 못 되지만, 그 뉴스 너머에선 그 어머니의 잘못된 집착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지 못했고, 집안에 웃음을 사라지게 했으며, 심한 열등감을 낳게 해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다고 전해 주고 있었다. 명문대학을 나온 그의 어머니가 그즈음 어?
?신학대학원에 다녔다는 뉴스의 마지막 장면은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겼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패륜이 없어야겠지만, 잘못된 가치관에서 나온 집착이, 따뜻함으로 아이를 맞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자식을 낳아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 주는 극명한 사례로 보인다.
부처님은 말씀하고 있다.
“인간의 행복이나 부귀영화, 온갖 존귀함이나 불행, 이 모든 일들은 다 자신이 지나온 겁에 닦은 공덕이 인연이 되어 나타나는 법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 생김새는 비슷하나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으로 나뉘어 그 삶이 다양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자신이 지은 것은 자신이 받는 인과응보의 결과이니라.” 결국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모두 제가 지어 제가 받는 인과의 뚜렷한 법칙의 굴레에서 윤회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인과의 법칙에 대한 인식을 깊이 해 지금 이 순간을 부처님 말씀대로 살고자 정진하는 것이 곧 수행이 아닌가. 태교는 그러므로 수행의 필요성을 자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같은 업으로 만나는 부모와 자식의 인연
남녀의 정자와 난자의 만남에서 한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이 과학의 설명이다. 불교 경전에선 생명의 탄생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체 생명 있는 것은 모두 자기의 업으로 말미암으니 업을 동무로 삼으며,업을 태어나는 문으로 삼으며, 업을 권속으로 삼으며, 업을 의취依趣로 삼아서 업이 일체 생명 있는 것을 상중하품으로 가른다.”인간의 마음에는 사백만년에 걸친 동물의 기나긴 진화과정이 내재해 있다고 한다. 곧 남녀가 만나 아이를 가지는 순간 오랜 세월 평소 스스로 익힌 업력에 의하여 그 업력이 비슷한 부모를 만나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 자식간의 좋은 인연, 나쁜 인연도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태교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다.
태교는 자신에게 좋은 인연이 올 수 있도록 마음자리를 닦는 수행이다. 수행으로 자신을 진화시켜가는 상태에서 선근을 가진 인연을 맞이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선연을 지닌 자식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아이를 맞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요즘은 예전보다 태교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으나, 부모의 욕심이 담긴 주입식 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현장에 있는 이들의 지적이다. 그리고 태교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갖고 나서보다 청소년기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태교의 중요성을 인식, 우리 불교계에서 처음 태교포교에 나선 성우 스님(파계사 주지)의 지론이다. 혹 준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아이를 가졌고, 새로 태어날 생명과 인연이 좋지 않다고 해도 어머니의 자각과 노력 여하에 따라 인연의 관계를 바꿀 수 있다. 어머니의 태내에 있을 때 수많은 생을 돌면서 쌓아왔던 악업을 녹일 수 있는 것이 곧 태교수행이기 때문이다. 태중의 교육 280일간이 태어나서 10년 교육보다 낫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태내에서의 마음공부도 중요한 것이다.
생명체가 잉태되었을 당시의 태내 환경은 부모, 특히 어머니의 심리상태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그 때 태아의 영혼의 맑고 투명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그대로 태아에게 전달되어 아이의 인격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태아의 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어머니의 영향 못지 않게 중요하다. 아이를 갖기 전후의 아버지의 삶에 따라 아이의 인성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성우 스님은 남자의 태교가 더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천수경 에선 ‘죄에는 자성自性이 없으며 마음을 좇아 일어나니 마음이 사라지면 죄도 또한 사라진다’고 했다. 수행이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빛으로 채워 오랫동안 쌓아온 무명, 곧 어둠을 없애는 작업이 아닌가. 그러므로 늦었더라도 태교수행에 대한 자각만 선다면 영혼이 맑은 아이를 맞을 수 있게 된다.

마음은 에너지다
태교수행은 무엇보다 그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인식이 뚜렷하고 깊어야 지속적인 수행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지,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가치관은 어떤지, 우리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깊이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체가 평등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사람이다. 선근을 가진 사람,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는 사람이 세상에 많이 나와야 상식이 통하고 맑은 사람이 중심이 되어 세상이 돌아간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준비하여 노력한 만큼 이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태교수행에 관심을 갖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집중하게 되고, 집중하면 힘이 나오고, 힘이 형성되면 현실이 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좋은 세상 만들기를 발원하는 태교수행은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

태교수행,그 간절한 희망의 첫걸음
세상 돌아가는 것을 가만 들여다보면 참 절망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무슨 보험금이라던가 그런 걸 받으려고 부모가 자식을 또 죽이려 한다. 아내가 또는 남편이 그 보험금을 노리고 서로를 차에 태워 교통사고를 위장해 죽이기도 한다. 예전엔 낱말조차 생소했던 ‘성폭력’이란 거친 단어가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세상이다. 정치하는 이들은 그들의 이익에만 눈이 어둡고, 가진 자들은 그들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다. 일일이 열거할 것 없이 각 분야의 모두가 그렇다.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탁류의 세상에 우리는 서 있다.
물질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자연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정신은 황폐해졌다. 이쯤해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따뜻하고 밝은 세상 만들기’에 대한 자각에 눈뜨는 일이다. 따뜻하고 밝은 세상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 선근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 준비의 시작과 끝이 ‘태교’를 위한 수행이다.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간절한 희망이 나온다고 했다. 그 간절한 희망의 첫걸음이 태교수행인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육바라밀을 기초로 한 태교의 실천방법을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