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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가운데 보배 밝히는 등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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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일백호 기념특집 - 명성 1990년 06월 100호
명성/운문사 승가대학장


까마득한 먼 옛날 아직 언어나 문자가 생기기 전에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갖은 행위와 표현을 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어떤 행동과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느낌 그대로가 말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한 마디의 말씀도 없이 가섭존자에게 이심전심으로 언어문자 밖의 깊은 소식을 전하였던 것이다.
실상(實相)은 이언(離言)이오 진리(眞理)는 비동(非動)이라, 즉 실다운 상은 말을 여윈 자리요 진리는 변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자로 표현하기 이전부터 있었던 실상의 자리 그것이 참으로 심오한 침묵속의 불변의 진리라면 지금까지 피력해온 해인에 실렸던 수많은 말들은 한낱 사족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저 언덕에 건너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야 하며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물을 필요로 하듯이 언어라는 매개 없이는 불법을 전달하고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불 언어라는 방편을 벌어서 불법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비유컨대 어두운 가운데 보배는 등불이 없으면 가히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불법도 설하는 사람이 없으면 비록 지혜스러우나 능히 요달할 수 없으며, 비파나 거문고에 비록 미묘한 소리가 있으나 만약 그것을 타는 손가락이 없으면 마침내 좋은 소리를 낼 수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좋은 말은 축복이 될 수 있고 나쁜 말은 저주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한 마디의 잘못된 말이 전쟁을 도발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고 반면에 한 마디의 좋은 말이 세계평화를 도모할 수도 있는 것으로 보아 언어의 위력이 얼마나 큰가는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번에 해인지가 벌써 100호를 펴내게 된 데 대하여 진심으로 경하해 마지않으며 앞으로 더욱 발전있기를 두손 모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