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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黎明 - 사람에겐 향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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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남일 2000년 10월 224호
‘사람에겐 누구나 향기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외모나 특징을 기억하기보다 그 사람의 향기를 먼저 기억한다.’라는 어느 영화의 대사, 참 좋은 말이었다.
향기가 있는 사람과 향기가 있는 차를 마시고 향기가 피어나는 대화를 나누며 향기 있는 삶을 더불어 살 수 있다면 아마 그런 세상을 불국토佛國土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코스모스가 한창인, 하늘이 너무 높아서 왠지 낯설게만 보이는 요즘이다.
아침공양 시간이 지나고 강당의 강의가 시작될 때쯤의 이 시간. 해인사에도 이 시간만이 주는 향기가 있다. 고즈넉이 가슴을 저려오는 명징한 투명의 향기.
언젠가 택시를 탔는데 기사분이 하신 말씀이 있다. ‘스님한테서 향내음 같은 향기가 있네요.’아직도 나의 뇌리에 남아서 정말 스님인 것에 감사하고픈 인사였었다. 아마도 그 향기가 이 향기와 동일한 향기가 아닌가 싶다. 지금 이 시간에 강의를 듣고 있는 스님들의 몸에도, 마음에도 이런 맑고 성스러운 향기가 배어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언제쯤 누군가에게 그런 인사를 받을 것이다. ‘스님에겐 향기가 있어요.’세상에 표류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수만큼의 이별을 하게 된다. 개중에는 깊은 인상으로 남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만남 자체가 기억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외모와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꼭 다시 만나고 싶은, 꼭 만날 것만 같은 사람이 있다. 아마도 그것이 그 사람의 향기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랬으면 좋겠다.
거짓과 가식으로 치장된 향기가 아니라, 진솔함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를 간직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꽃을 보면 그 꽃의 향기를 알 듯 사람의 순수를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답게철학’이라는 것이 있다. 자기본분과 능력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일 게다.
요즘같이 ‘우월 지향주의’ 세상에서는 다시금 한번 되새겨 볼 만한 지론이다.
오늘날의 온갖 문제시되는 사회현상은 대부분 이러한 본분의 망각, 현실감각의 부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곧 ‘나다운’ 무언가가 없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곧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매력이 상실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그의 ‘향기’가 없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스님이 스님다우면 거기에는 분명 ‘스님의 향기’가 있을 것이고, 예술가가 예술가다우면 자연히 그에게서는 ‘예술가의 향기’가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여명의 시간이 지나면 이 향기는 사라질 것이다. 깊은 심호홉을 한다.
찬란한 햇빛에 산산히 부서지기 전에 좀더 많이 내 몸. 숨구멍마다 가득 넣어 두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향기는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내뿜어야 한다는 것과, 향기는 얻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아침이 더 아름답다.
그러나 지금 정말 부끄러운 것은 그 때 이후로 단 한번도 나에게서 ‘향기’가 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