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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지금 명작처럼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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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도법 2000년 09월 223호
어쩌다보니 이 세상에 나왔고,인연 흐르는대로 가다보니 절에 와 중이 되었다.
\'막내는 스님 만드는 게 좋겠다\'는 집안분위기 속에서 \'원효대사\'와 \'사명대사\'를 읽고 \'스님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 싶어 절집안에 들어온 게 열여덟일 때였다.출가의 참뜻을 전혀 모른 채 행자시절을 시작한 셈이다.

삼십오륙 년이 지난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마치 훈련병처럼 코피 쏟아가며 일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당시 대처와 비구간의 갈등속에서 정화된지 얼마 안되었는지라 내 출가본사인 금산사는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해서 밥장사로 경제적 어려움을 보충했는데,봄가을 수학여행이 있는 계절엔 그야말로 허리가 휠 정도로 바쁜 하루 속에서 코피를 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늦게 도착한 학생들이 먹고 난 뒷설겆이를 한 다음 다음날 그들에게 줄 도시락준비를 끝내고 겨우 허리를 편 시간이 밤 11시,잠깐 눈을 붙이고 새벽 세시 예불소리에 눈을 뜨곤 하던 시절이었다.나무하고 밭농사 지으며 그 사이사이 염불을 외고 \'초발심자경문\'을 익혔으나,사실 출가의 참뜻에 대해선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분수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큰스님을 먼발치에서 보고도 신심이 나더라고 했으나, 그시절 나는 가끔씩 금산사에 들르시던 금오노스님을 뵙고는 그분에 대한 외경심보다는 무섭고 두려운 마음뿐이었을 만큼 주어진 일에만 충실했던 순종적인 예비수행자였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감자농사를 지어놓았는데 밤이면 누군가 캐가는 것이었다.하여 대중이 돌아가며 밤새껏 지켰는데,나중에 알고 보니 밤에 몰래 나와 감자서리를 했던 사람은 다름아닌 대중들이었던 것이다.늘 배가 헛헛했던 시절에나 일어날 수 있었던,먹을 것이 풍부한 지금에 와선 고전이 돼버린 얘기다. 먹거리를 귀중히 다루어 후원사람을 감독했던 별좌스님이 행자를 감시하던 기본잣대는 바로 구정물 상태,매일 설거지가 끝나면 검사를 했는데 어쩌다 구정물에 밥알이라도 뜨는 날이면 그야말로 불벼락이 났으니, 어찌 불벼락으로 그쳤겠는가.그런 날엔 영락없이 행자들에게 구정물 속게 얌전히 담겨있던 밥알을 건져서 먹게 했으니, 행자들에게 무서운 존재는 큰스님도 주지스님도 아닌 별좌스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금산사에서 단 하나뿐이었던 \'보물\'에 대한 추억이다. 그것은 금산사에서 최고의 귀중품이었고,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있으면 모두를 한자리에 모이게 했던 \'라디오\'였다. 지금 절집풍속과 견주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다.

내 행자시절은 일이 전부였을 뿐, 구도자로서의 문제의식같은 것은 없었다고 봐야 옳다. 출가한지 일년만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나는 중이 되는 사람이므로 모르는 일이다\'라고 심부름 온 사람을 돌려보내 놓고,\'너는 중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고 어머니의 아들인데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동료의 질책과 함께 존재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에 봉착한 것이 출가에의 진정한 첫걸음이었을 것이다.\'왜 태어나야 하는가. 왜 살아야 하고 왜 죽어야 하는가\', 그 문제를 풀지 못하면 어떤 삶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것이 중으로 살게 하는 결정적 화두가 되었고, 그로부터 구도자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수행해 왔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이라면, 아니 출가에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그렇게는 안했을 것이다. 나는 부처님이 출가할 적에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주목한다. 그분은 내 국가,내 민족,내 부모,내 이웃,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온다고 하셨다. 끝없이 되풀이 되는 악순환을 청산해낼 수 있는 깨달음의 길,대자유의 길을 찾아서 알려주어야 하니까 반드시 돌아온다고 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불교는 부처님이 생각하는 출가와는 달리 \'버리고 떠나는\' 한쪽 방향만 강조해 왔다. 지난해 봄 행자교육원에서 실시한 행자교육을 하면서 \"부처님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는데,\'나는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출가한 사람 있는가\"하고 물어보았더니,삼백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었다. 한국불교가 부처님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동시에 그분의 사상과 정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깨달음\'에 대해서도 잘못 인식해왔다.

최근 어떤 이가 내게 물었다.\'어느 지면에서 보니 도통道通하지 못한 게 가장 괴롭다고 했던데,당신이 의미하는 도통은 무엇이냐\'고. 이 기회에 불교의 핵심인 연기법의 사상과 정신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 한다.나는 깨달음을 얻고 대단히 깊은 종교적 체험을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범속한 논리와 사고방식으로 연기법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로 지혜라고 본다.우주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한몸, 한생명임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이 지혜인 것이다. 불교의 핵심은 \'연기법\'이다. 이것을 꿰뚫어 인식하지 못한 불교는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자비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연기적 세계관에 맞는 자비행이어야 불교적 자비가 되고 연기적 세계관으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깨달음의 행으로 의미를 가지려면 무주상無住相의 사상과 정신이 일상의 사고와 언어 행동속에 반영되어야 한다. 수행 또한 이것이 아닌가. 연기론적 세계관에 근거한 사고와 언어와 행위가 곧 부처되는 길이 아닌가.

우리의 생명,내 목숨은 무엇인가,또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내 육신과 정신을 독립적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생각해 보라,우리가 십분만 호흡을 멈추면 살 수 있는가,한 열흘만 물을 먹지 않으면 존재할 수 있는가.연기론적 세계관에서 본 생명이란 무엇도 아니고 어디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관계성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무아無我\'라고 하고 \'공空\'이라고 하고 \'연기緣起\'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 어느 것 하나도 관계를 떠나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온 우주가 한몸,한생명임을 깊이 인식하여 우리 삶속에 실천하는 것이 수행일진대,그러한 수행이 삶속에 무르녹아 내 전존재를 세상을 향해 회향하지 못할 때 수행자로서는 가장 괴로운 것이다.

연기론적 세계관으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어둠은 광명으로,속박은 해탈로,불행은 행복의 길로 전개된다.우리는 이것을 \'깨달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그러므로 나는 선禪을 하든 교敎를 하든 염불을 하든 \'연기론적 세계관\'이 기본 토양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의 관점이다. 종교는 그 바탕에 깔린 사상과 정신이 생명이다.어쩐 일인지 한국불교는 사상의 차원에서 불교정체성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은 한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러므로 한국불교의 사상적 토양이라고 할 수 있는 화엄경을 연구하기 위한 실상사 화엄학림華嚴學林의 뒷전에서 이 불교정체성을 다지는 일을 하고 싶은 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다.

천하가 말려도 \'생사문제를 해결하리\'라는 서슬퍼런 각오로 제방선원에서 수행하던 시절,봉암사 선방에 있을 때다. 도반 몇이 둘러앉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두고 말했었다.\'나는 고전으로 남을 만한 불후의 명작을 쓸 것이오\',지금은 마을로 출가해버렸으나 그당시 시를 쓰던 도반의 말이다.\'난 한 회상會上을 차려 방장이 되겠소\',다른 한 도반의 말끝에 난 그랬었다.

\"난 명작처럼 살려 하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 오십이 훌쩍 넘은 지금,그처럼 나는 살고 있는가.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벌써 서늘하다.

이제 곧 지리산에도 가을이 깊어갈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