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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벗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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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당 솔바람 - 경성 2000년 09월 223호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
술을 마실 때는 형제처럼 절친한 친구들이 천명이나 되지만, 위급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진정한 벗이 가장 필요할 때에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 그저 함께 어울려서 술을 마시며 세상의 쾌락을 즐기는 친구들은 많지만 정말 어렵고 곤란할 때 속마음을 나누며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친구, 물심양면의 어떠한 도움이라도 아까워하지 않고 기꺼이 베풀어주는 친구는 드문 것이다.
친구를 뜻하는 우友 자는 손 두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 모습을 본떠서 만든 상형문자이다. 일생동안 서로 서로 손을 잡고 격려해 주며 보듬어 주고 아껴주는 관계가 바로 우정friendship인 것이다.
군자지교담여수君子之交淡如水 소인지교감약예小人之交甘若醴
군자가 벗을 사귀는 것은 그 담박하기가 마치 물과 같이, 소인이 벗을 사귀는 것은 달콤하기가 마치 단술과 같다.
올바른 친구와의 만남은 겉치레나 꾸밈없이 소박하고 맑아 얼핏 보면 정이 없는 것처럼 무덤덤해 보이지만, 그 속은 깊고 자상하여 무엇보다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아서 투명하고 담담하다. 그러나 그릇된 친구들의 경우에는 처음 사귈 때부터 요란하고 마치 간담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듣기 좋은 말만 하기 마련이다.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나 연인인 것처럼 칭찬해 주지만, 그런 사귐은 얼마 되지 않아 변색되고 그 이기적인 동기가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사분율四分律에서는 벗의 종류에 있어 네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첫째는 꽃과 같은 친구이니 활짝 피었을 때는 머리에 꽂다가 꽃이 시들어 버린 후에는 버리는 것처럼 형편이 좋을 때에는 곁에 있지만 어렵고 곤란해 졌을 때는 버리는 것이 바로 화우華友이다. 둘째는 저울과 같은 벗이니 물건이 무거우면 낮아지고 가벼우면 곧 높아지는 저울처럼 주는 것이 있을 때에는 공경하다가 이익이 없어지면 곧 교만해 지는 것이 바로 칭우稱友이다. 셋째는 산과 같은 벗이니 울창한 산에는 자원이 풍부하므로 그 산에 깃 들어 사는 새나 짐승들의 형색이 좋아지는 것처럼 자신이 귀한 지위에 오름으로써 능히 친구들을 영화스럽게 만들어 그 부富와 낙樂을 같이 즐기는 것이 산우山友이다. 마지막 네 번째는 땅과 같은 벗이니 백가지 곡식과 초목草木들이 모두 땅을 의지해서 자라나는 것처럼 도와주고 보호해 주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바로 지우地友이다.
부처님께서는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다섯 가지의 방법으로 서로서로 보시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첫째, 베풀어 줄 것(시여施輿)
둘째, 친절하고 부드러운 말을 할 것(애어愛語)
셋째, 벗에게 이익 되는 일을 할 것(이행利行)
넷째, 뜻을 함께 합하여 도모할 것(협동協同)
다섯째, 속이지 말 것(불기不欺)
또한 경계하고 멀리해야 하는 친구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첫째, 무엇이든지 가져가는 친구
무엇이든지 가져가는 사람은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가져가므로, 적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얻기를 원하므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까닭에 경계해야 한다고 하셨다.
둘째, 말뿐인 친구
말뿐인 친구는 해야 할 일이 닥치면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핑계를 대는 사람이다. 예를 들자면 어디에 동행을 해 달라고 하면 이미 선약이 되어 있다거나, 병이 생겼다든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노라는 등의 말로 발뺌을 하는 사람이다.
셋째, 감언이설을 하는 친구
앞에서는 좋은 말만 하지만 뒤돌아 서서는 헐뜯고, 나쁜 일에는 동의하지만 좋은 일에는 동의하지 않는 친구이다.
넷째, 방탕하게 노는 친구
경계하고 멀리해야 하는 사람들은 친구의 재산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소유하려 하고,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두려움 때문에 마지못해 자신의 책무를 어쩔 수 없이 이행하며,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도 노력하지 않고 포기해 버린다. 또한 항상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말하는 헛된 주장만을 일삼으면서, 막상 친구를 도울 기회가 닥치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런 친구들을 적으로 알고 무섭고 위험한 길을 피하듯이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실한 친구란 어떤 사람인가. 친구를 북쪽에 비유하는 육방예경六方禮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진실한 친구란 도움을 주고 후원을 아끼지 않는 자이며, 행복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변함없이 곁에 있어 주고, 친구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충고를 아끼지 않는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다.
도와주는 사람으로 때로는 후원자로, 친구가 태만할 때에는 지켜주고, 친구가 재산관리에 소홀할 때에는 그 재산을 보호하고 관리해 주며, 친구가 번뇌에 빠져 있을 때에는 위로를 아끼지 않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친구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그 필요한 액수의 곱절도 마다하지 않고 베풀어주고, 친구가 행여 악행惡行에 빠졌을지라도 구원하여 선善으로 인도하고, 친구가 듣지 못한 것을 그에게 들려주며 행복의 길을 알려주는 친구가 바로 진실한 벗이다.
마음이 통하는 진실한 친구는 벗의 불행에 즐거워하지 않고,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친구를 비방하고 헐뜯는 사람을 제재하고, 친구를 칭찬하는 사람을 칭찬해마지 않는다.
현세에 자신이 태어나는 가족을 선택하는 것은 전생의 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며, 친구를 선택하는 것은 현세의 환경과 행위에 보다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것으로 고려시대 불일보조국사스님께서도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나쁜 주위환경에 물들지 않고 좋은 인연을 맺어 정진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방법으로 \'모름지기 악한 벗을 멀리하고 어질고 선한 벗을 가까이 하라(수원리악우친근현선 須遠離惡友親近賢善)\'고 강조하셨다. 향을 담았던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담았던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듯이 세상의 오염을 덮을 향기를 갖춘 사람이 되는 첫 단계가 바로 좋은 친구들과 인생을 함께 하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내 친구들의 좋은 향기를 위해서 나 역시 올바른 벗으로 중생들의 고통과 행복을 함께 하는 것이 이십일세기 이 땅에 극락정토를 구현하는 첫걸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