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탄압, 문화재관람료 분리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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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7년 10월 188호
국립공원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의 분리징수 강행에 따른 파문은 불교게가 그 동안 얼마나 안이하게 살아왔는지를 알려 준 사건이었다.
국민 여론은 합동징수를 고수하려는 불교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불교계가 내세운 것은 산문폐쇄라는 다소 원시적이고 거친 인상의 카드였을 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산문폐쇄 카드는 불교의 대국민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분리징수와 산문폐쇄 소동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잿밥싸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번 파문이 정말 잿밥 싸움이었을까. 만일 그렇다면 불교계는 주저 없이 반성의 자세를 보여야 마땅할 터이다. 그러나 이번 파문은 잿밥 싸움과는 전혀 별개의 사건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불교계의 속사정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번 일이 정부-내무부와 국립공원관리공단-가 여론을 등에 업고 불교의 목을 조르는 비열한 행위라는 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의 말이겠지만 불교계는 이번 사태와 같은 일에 대해 미리 대비를 했어야 마땅했다.
불교계가 이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첫째 매사를 준비하지 않는 고질적인 타성 때문이요, 둘째 막상 일이 터지고 나면 허둥지둥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적당히 넘어가는 만성적인 경향 때문이다. 정부가 그동안 여러 차례 분리징수를 강행하려는 조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시도했는데도 이에 대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응논리를 마련하는 데 소홀히 한점과 막상 일이 터지자 종무행정 집행부가 사건의 핵심을 읽어 일사분란하게 대처하기 보다는 각 합동징수 사찰이나 관람료 위원회에 일의 해결을 미루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 것은 나중에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하기사 해마다 열리는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행사 시작 두어 달 남기고 졸속으로 처리해오던 관행이 최근에까지 이어져 왔음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경향은 그리 낯설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받지 않을수도 있는 비난과 눈총을 그 근본적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했다는 것에서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감출 수 없다. 분리징수냐 합동징수냐를 놓고 한바탕 벌어졌던 소동은 9월말 추석 한가위를 거치면서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소강 상태가 태풍전야의 고요에 지나지 않는다는데 있다. 10월 15일까지 불교계가 제시한 요구사항, 곧 사찰소유토지를 공원에서 해제할 것, 공원입장료를 폐지할 것 등을 정부가 수용할 것인지의 여부에 따라 이른바 분리징수 파문의 앞으로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불교계의 요구사항을 들어 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교계에 좋지 않은 여론을 등에 업고 분리징수를 관철시키거나 아니면 12월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적당한 선에서 사건을 유야무야 시킨 뒤 적당한 기회에 또다시 분리징수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것은 불교계의 대응이 얼마나 치밀하고 합리적이며 강경한 것인지에 따라 정부의 태도가 결정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지금 불교계의 가장 시급한 일은 합동징수의 불가피성이나 정부의 분리징수 강행 배경에 깔린 불교 음해 기도 등을 국민에게 충실히, 그리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것이다. 사찰의 뜻과는 관계없이 사찰과 사찰 소유토지나 임야가 공원으로 지정되고 관광지로 개발됨으로써 불공과 시주로 유지되던 전통적인 사원 경제의 틀이 파괴돼 사원 경제가 문화재관람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진 점, 따라서 아무런 보완조치 없이 분리징수를 시행할 경우 사찰의 운영이 마비 될 수밖에 없고 이 파장이 불교계 교단 전체로 파급된다는 점, 공원 지정으로 인한 토지나 임야 이용권 제한 등으로 파생된 불교계의 피해가 일반 국민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라는 점,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징수하는 국립공원입장료의 상당 부분이 공원 관리보다는 매표소 직원들의 인건비로 충당되고 있다는 점 등을 국민에게 자세하게 알리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정부가 지난 72년 합동징수를 약속한 이래 지난 90년 12월에 문회부내무부 총무처 장관의 합의로 합동징수를 약속했고, 95년 3월과 97년 2월에도 행정지침에 따른 합동징수가 바람직하다는 약속을 해 온 점 등을 상세하게 국민에게 알리고,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마치 불교계가 돈만 밝히는 집단인 것처럼 호도한 부도덕성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해명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안터깝게도 지금 이러한 일들을 총괄해서 집행해야 할 총무원 집행부의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먼저 일의 해결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이 능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관람료위원회나 합동징수 사찰주지회의에서 결의된 사항을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려는 자세보다 남이 해야 할 일을 고약한 시절 인연으로 마지못해 하게 됐다는 인상마저 풍기는 듯하다. 물론 총무원이 그동안 정부가 불교계에 해 온 행정지침에 따른 합동징수 원칙이 유효한지를 묻는 추궁성 공문을 내무부에 발송하고, 대국민 홍보자료 이십만 부를 제작해 각 사찰에 배포했으며, 국립공원에서 사찰과 사찰소유토지를 제외시키는 헌법소원을 내기 위해 법률적 검토를 하고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웬지 그런 모습이 내켜서 하는 일처럼 비춰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찌 되었든 충분한 대국민 홍보 노력 없이 10월 15일을 기해 전국의 관랍료 징수사찰이 또다시 사찰문을 걸어 잠근다면 불교계는 다시 한번 비판적 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비판의 강도는 이전의 것보다 훨씬 거셀 것이 분명하다.
10월 15일까지의 얼마남지 않은기간은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든 그렇지 못하든-불교계의 재정적 기반을 지키느냐 아니면 일시에 붕괴시키느냐를 결정해 주는 중요한 시간이다. 이 일을 해결하는 데는 불자라면 누구든 나와 남이 있을 수 없다. 치라리 문화재관람료도 받지 말고 공원입장료도 받지 않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식의 일부 발언이나, 문화재관람료의 사용 내역을 밝혀야 한다는 등의 무책임한 발언을 할 시점도 아니다. 이런 일들은 발등에 떨어진 당장의 일을 총력을 기울여 해결한 뒤에야 거론할 성격의 일일 것이다. 굳이 독화살의 비유를 들지 않더라도 일에는 앞뒤가 있다는 말이다.
특히 정부의 분리징수 강행에 맞서 불교계가 제시한 국립공원입장료의 폐지 운동이나, 공원지정에서의 사찰토지해제 안은 매우 획기적인 안으로 평가된다. 이 안들은 국민에게 잘 전달되기만 한다면 공원으로 지정됨으로써 파생된 각종 피해 사례들을 홍보하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불교계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은 한마디로 사전에 충분한 대책을 세우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가 정부에 제시한 10월 l5일까지의 얼마남지 않은 기간은 지금까지의 기간보다 훨씬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 확실하다. 이 기간 동안 불교계가 얼마나 노력하고 철저히 대비하는지의 여부는 불교계가 앞으로 겪을 고통의 양을 정해 주는 가늠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이치와 다를 게 없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불교계가 일심으로 단결하여 치밀하게 철저한 준비를 한다면 분리징수 파문으로 인해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는 일이나, 불교의 권익을 지키는 일을 모두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세간의 대통령을 뽑는 일에서도 이른바 ‘준비된 대통령’ 론이 국민에게 공감을 얻어 가고 있지 않은가. 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