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그 바람직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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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 지리산토굴스님
2000년 09월 223호
세상 모든 것이 마치 외손뼉이 소리가 없듯 빈 것 앞에서는 \'空化공화\'되므로 인과에 매하지 않는 것이 됨이다. 우리가 절을 하되 부처는 받음이 없고, 여색女色을 농濃하되 마음은 티끌하나 일어남이 없고 일이 어긋나도 서운함이 없으며 죽음에 이르되 이웃집 놀러가듯 하는 것이 불가 수행의 일 국면局面이다. 본래 한 물건이 없으니 모든 존재하는 것은 자慈와 비悲로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야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해가 지면 달이 돋듯 우리도 세상 연緣이 다하면 별 뜻 없이 이를 저버려야 함이 도道이다. 절에서는 주고받음이 없으니 유위有爲가 허깨비이고 생사生死마저 없다하니 지금까지의 일체 공덕功德이 쌓인 것 아님에 착着을 방하放下하고 비우는 이것이 청정한 불국토 장엄으로 삼세심三世心이 쉬는 길이다. 있는 것(有)으로 생각되는 것이 상(相)을 이루어 극락을 천상天上의 복으로 만듦에 안으로 익는 불사佛事를 유형화有形化하니 윤회에서 벗어나 도道의 평상심을 저버리는 격이다. 세간은 곧 공功과 덕德 곧 복력福力에 대한 상이니 위신력이 세勢에서 이루어지나, 이를 버림이 상없는 금강의 도리요, 안으로 무능진설無能盡說의 불과佛果를 이루는 것이다. 지난 공을 잊으매 불사요, 평범한 진실락眞實樂이 절에 있도다. 절에서 허망한 몸뚱이를 잊고 법法에 귀의하니 좋은 것에 마음 두는 바 착을 잊고 일체평등이니 아예 없도다. 부모가 자식을 기름에 흐뭇해하니 이를 버리고 공적空寂한 평등 인연법을 깨닫는 불법佛法 구함이 공과 상을 벗어 중생을 벗어나고자 함이 그것이로다. 이로서 수壽와 복이 도로 화化하니 무애無碍하여 불보살 시봉侍奉이 큰 스님 모시기에 사구화死句化가 아닌 활구活句로서 모든 행行이 여법如法하여 집을 떠나 시방세계를 얻은 대아大我가 세간의 탐진치와 속俗을 버림이 배진합각背塵合覺 됨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아님(否)\' 이것이 결국 아상我相, 곧 내가 있음이니 대긍정大肯定으로 만유萬有와 화합하는 진성眞性을 지켜 극락의 마음 밭을 키워 지님이로다. 마음이란 다 있는 것이어서 평소에 범상히 지내다가도 한 번 마음 제대로 발심發心이 되면 구경究竟에 이르니 이 마음이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곧 나이니 세상은 이른바 내가 만드는대로 되는 것이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힘들지 않으며 불법에 귀의함은 부처를 친견親見하고자 함일딘데 환幻인 몸뚱로 이 세상 인연이 끝날 때까지 마음 닦는 일 뿐이니 석가불이 마야부인 모태에 들어가기 전 중생을 제도해 마쳤고 49년 설법說法 또한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스님이 되어 태어난 집도 없고, 멈뭄(住)이 없고 상이 없고, 나(我)가 없고 함(爲)이 없으니 무심無心으로 어디든 내 집이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절에서는 티끌하나 없으니 만물이 다 부처 아님이 없고 만법이 다 불법에 귀의하는 바이다. 불법이란 생사生死·해탈의 최상승 법이니 하나 버림없이 큰 수레(大乘)로 옳은 길을 제시하여 나와 남을 모두 부처가 될 때까지 외면없이 길을 엶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으며 말을 떠난 본면本面의 소식이 불법인지라 맑은 물이든 흙탕물이든 물은 물이며 예쁜 자식이든 미운 자식이든 부모가 어찌 싫어하랴, 마음이 열리든 아니 열리든 마음은 한 가지니 개안開眼이 된다해도 세상의 산천초목이 어찌 변하겠는가! 번뇌망상이 공하고 일체가 마음 안의 일이로되 한 편의 연극놀음 깨우치지를 못하니 죄罪가 자성이 없이 마음을 좇아 일어남이로다. 죄가 그러하오니 복도, 업도 그렇고 모두가 닦기 나름이요, 결국 본원本源은 청정하게 부지런히 성불成佛에 힘쓸 뿐이다. 우리 모두 정진여일精進如一하여 모든 인연을 원만히 하고 일체 사事를 좋게 풀어 모든 이가 좋게 환희심을 느끼는 불국토가 되도록 불도를 온 중생에 회향廻向하도록 하자.
이 땅에 재財와 명색名色아닌 진리 그 자체 곧 도가 힘을 잃지 않도록 모든 불자, 이른바 수행인들이 모두 하루하루를 방일放逸없이 도道를 성취하고야마는 은근과 끈기의 큰마음을 내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