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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쉴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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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현정 2000년 09월 223호
○○스님께

저는 늘 산중을 바라보기를 이렇게 했습니다.

\"산사山寺는 산중山中의 등대이며 수행자는 그 등대의 불빛이다.\"

막막한 세상을 살다보면 산사의 불빛은 막연한 즐거움이 되며, 길을 가는 수행자들의 물들인 옷자락에서도 중생들은 본원처本源處에 대한 희미한 향기를 느끼게 됩니다. 사는 것이 그저 막막했을 때, 내가 찾은 곳은 산사山寺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냥 그ㄹ게 산사를 찾아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산중에서 사람들은 가쁜 숨을 고르며 그저 맑은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쉬어가고 싶어합니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은 그 맑은 물 한 모금이 그리워 산길을 찾고 산사를 찾았을 것입니다. 중생의 발걸음이 산중으로 향하는 것은 우리네 관광지라 일컬어지는 거의 모든 곳이 사찰과 함께 있다는 단순한 이유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저 어렴풋이나마 그곳에 가면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겠거니 하는 막연한 향수일 수도 있을 것이며, 다른 편에서 생각한다면 사찰이 있는 곳이라면 그 경관이 뛰어난 곳이므로 그러한 기대감이 이를 부추기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불자였든 아니든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선뜻 우리는 사찰을 택하는 것이 오래된 습習이 되어버렸습니다.

스님,

이것이 우리의 오래된 오해에서 비롯된 휴가문화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탓을 넘겨야 마음이 편하겠지요. 부끄럽게도 들어가기 쉬운 곳으로 여기고 들어선 만큼 사람들의 발걸음은 너무나도 종횡무진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산문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여러 가지 아이러니와 마주치게 됩니다. 적당한 댓가를 치르고 온 곳이니 만큼 할 만큼은 하고 가겠다고(!) 벼른 마음가짐은 좌우에 늘어선 매점과 식당에서 한껏 고조되었을 것이나, 막상 경내에 들어서고 나면 \"외인출입금지\", \"정진 중\", \"출입금지\"라는 팻말과 함께 기가 죽게 마련입니다. 그러다보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나오면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툭 던지지요.

\"아까 본 데랑 똑같아!\"

그런데, 불교 사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떠합니까. 아침 저녁으로 외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요체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대웅전과 극락보전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습니까. 불교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은 산중의 높으신 스님들의 몫으로만 생각하다보니 불교의 진리는 그저 모호하고 애매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스님, 많은 사람들은 사찰은 언제나 갈 수 있는 무슨 관광지쯤으로 여기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는 오히려 우리의 생활과는 동떨어져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되어야 맞지 않을런지요.

불법은 우리네 고단한 생활과 숨쉬는 순간순간을 이해시켜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운 진리이며 이것을 실천하는 수행자들이야말로 사찰을 수행처이게끔 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산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요사채 앞 툇마루나 혹은 돌부리에 옹색하게 앉는 방법 이외에는 쉴 곳 없는 곳이 이곳입니다. 또한 그 쉴 곳 하나 없는 관광지가 또 어떤 문화적인 가치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몰이해한 곳이 바로 우리네 절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그곳에 사시는 스님들도 마찬가지의 괴로움이 있을 것입니다. 관광지로 자리를 내어주고 난 뒤부터는 휴가철이나 공휴일에는 후원에 갖혀 사는 신세가 되어버리셨을 것이고, 여기저기서 기웃거리는 눈길과 막무가내로 올리는 큰 소리는 공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수행다운 수행이 될 리가 없으니 그저 민망할 따름입니다. 관광객들의 흘리는 쓰레기와 소음의 치다꺼리가 더 큰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양자兩者는 한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서로를 극복해야 하는 힘든 관계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스님,

아무리 좌우의 늘어선 매점과 식당이 우리를 유혹한다고 해도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 일주문에 들어서는 사람은 이미 구도자의 길을 가고 있는 수행자가 된다는 사실을 작은 글귀로라도 깨우침을 주신다면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느 순간 달라질 것입니다. 일주문이 그러하고 천왕문, 금강문, 해탈문을 지나는 마음이 그러할 것입니다. 각 문과 전각 앞 작은 팻말이나 안내판에 조화롭고 정성이 깃든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아시다시피 관청에서 걸어놓은 문화재 안내판은 우리 불교의 아름다운 사상과 전통을 하나의 유물로 전락시킵니다. 또한 그 문구조차 애매하고 어려워 일반인들은 잘 알아듣지도 못합니다. 사찰은 그 건물보다는 그 건물마다에 깃든 의미가 더욱 중요한 우리의 유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스님들은 세간을 사는 중생의 스승이며, 그 사찰은 하나의 좋은 교육장입니다. 이렇게만 된다면 우리가 사찰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더욱 풍성해 질 것입니다.

산중에 있는 사찰이라도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사막입니다. 그 넓은 경내에 잠시 다리를 쉬고 마음을 쉴 자리가 없습니다. 맑은 샘물이 있을지라도 그곳에서 잠시 쉴 수는 없습니다. 산으로 향하는 길은 다니기 어렵고, 작은 산책로는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스님들의 생활을 방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찰을 찾아 온 사람들에게 잠시 쉴 공간을 경내 중간 중간마다 마련하여 그 곳에서 마음을 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역시 불교의 도량일 듯 싶습니다. 또한 산길을 따라 산책로를 만들고 자신을 돌아보는 조용한 명상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교육일 수 있을 것입니다.

스님,

사찰은 우리가 삶의 지혜와 잊혀져가는 역사와 전통을 배울 수 있는 늘 가지런하고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다가서야 할 곳입니다. 그러므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을 걷고 계신 스님께서 중생들의 일상에서부터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숨이 들고나는 한 순간에 이미 진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상의 발걸음, 사찰 안에서의 발걸음에서 미혹한 중생들이 찾아야하는 진리의 길을 안내해 주신다면 우리의 발걸음이 이렇게 우왕좌왕이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사찰로 발길을 향할 때는 관광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좀더 큰 무엇을 지니고 옵니다. 돌아가는 발걸음을 더욱 즐겁게 하는 것은 방문한 그곳에서의 여정에 비례합니다.

산길을 지나는 사람이든 혹은 시중을 걷는 사람이든 비스듬한 햇볕을 뒤로하고 들리는 종소리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고요해집니다. 우리네 불교가 맡아야 할 부분이라면 그 고요한 마음 그 자체가 아닐른지요.
산사를 찾는 중생에게 고찰에 깃든 문화의 향기는 대단하며 여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표현해내는 소프트웨어를 가미한다면 한국릐 불교문화와 일깨움의 미학은 무궁한 보배의 샘물이며 그리고 인간지고의 가치와 영혼을 살찌우고 일깨우며 번뇌로운 마음을 내려놓은 문화의 중심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