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세기, 전통의 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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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이춘근
2000년 09월 223호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인간의 삶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인간에게는 정신적인 풍요가 물질에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물질적인 풍요와 아울러 정신적인 풍요가 함께 이루어질 때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인 풍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문화라고 한다면, 한나라의 문화적 역량은 곧 민족 구성원 개개인에게는 그를 가장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이 됨은 물론이요, 사회를 가장 사회답게 하고, 민족을 가장 민족답게 하며, 나아가서 나라를 가장 나라답게 하는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다. 특히 고도산업사회로 치닫고 있는 오늘에 있어서 문화적 역량은 바로 그 나라의 국력을 표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세계는 지금 공업과 군사력의 시대였던 20세기가 지나 정보와 지식이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문화의 세기에 살고 있다. 문화의 토양을 일구고 거기에 밭을 꾸며 문화의 씨앗을 뿌려야 되는 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 본다. 농부에 있어서 자신의 밭은 생명의 원천이다. 온 몸으로 밭을 일구는 농부에게 우리는 풍요로운 가을의 수확을 예견하고 있다. 문화와 토양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자 생명력이다. 문화가 곧 재화라는 인식위에 세계각국이 문화 경쟁력을 키우는데 몰두하는 오늘, 5천년의 오랜 역사 전통과 문화 새창조의 저력을 자랑하는 한민족이야말로 문화의 세기에 자신의 가치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지나온 세기의 문화 궤적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우리 문화유산은 병자호란·임진왜란 등 수많은 외침을 거치면서 소실, 파괴, 변형되었고, 수많은 예술품이 탈취 유실되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문화유적도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통 가치관의 붕괴로 인해 업신여기고 경제개발의 우선 순위에 밀려 문화유적 보존·관리에 소홀히 했다. 최근 용인지역의 난(亂) 개발로 인하여 자연경관이 마구 파헤처져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지키고 가꾸어야할 문화유산이 있는 곳에도 예외는 아니다.
더군다나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여가생활을 바닷가나 이름난 명산의 일상적인 풍광과 위락시설 등을 찾고 있을 뿐으로, 조상의 숨결이 깃들여 있는 문화유산을 몸 가까이 대하면서 문화역사의 가치 추구보다는 일회성의 향락주의에 흘렀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했었고, 그래서 우리나라 문화유적의 참다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동한시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실상이다.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을 손꼽아보라고 하면, 전문식견이 있거나 없거나 전통공연 예술을 드는데 대부분 의견을 같이한다. 그러나 오페라, 발레, 클래식 등 공연을 즐겨 찾는 관객은 그 분야 예술을 이해하고 맛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전통예술 공연장에 가보면 주 관객이 중·노년층이고 서양음악에 비해 그간 홀대를 받아 왔던 게 사실이다. 이는 서구 학문 중심의 교육풍토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이 진무하다 시피 하여 나타난 현상이 결국 전통문화를 소외해 왔다.
외국인이 우리의 문화를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지를 생각해 보자. 작년에 주한프랑스 문화원장이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문화는 특징이 없다”는 내용의 이한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미국 하버드대의 새무얼 헌팅턴 교수도 세계의 문명권을 9개로 분류하면서 중국과 일본을 독자적인 문명으로 거론하고 한국은 중화문화권에 포함시킨바 있다. 서구 지식인들의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탓하기 앞서 이는 우리에게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 전통문화의 독창성과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데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바야흐로 문화의 시대가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21세기는 문화가 그 나라의 국력을 좌우한다고 했다. 이런 뜻깊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긍지를 살리면서 문화민족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립과 문화유산의 보존이다. 민족문화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그 지역의 역사적 전통이 고이 간직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정비 할 수 있는 지원과 아울러 사라져 가는 유·무형문화재를 신규 발굴·보존하는 것이다.
둘째, 전통문화예술 인구의 저변 확대와 문화 보호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이다. 일찍이 단채 신채호 선생이 “우리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우리역사를 배워야 한다”고 일깨웠듯이, 내 것의 소중함을 알고 나서 남의 것을 배워야 올바른 세계관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우리 전통문화를 체계적이고 올바르게 이해 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과 문화강좌 등 문화향수 기회를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또한 국민은 문화유산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향유자, 더 나아가 감시자로서 역할을 하여야 한다. 특히 문화재가 국민 생화속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국민의 사랑과 관심이 없으면 문화유산을 성공적으로 가꾸어 나가는데 기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상품을 창조해 나가야 한다. 세계는 자국의 전통과 역사를 기반으로 한 상징로그와 문화상품 개발을 통해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한 예로 일본과 김치와 기무치의 전쟁을 벌일 지경에 이른 것은 그만큼 김치를 제대로 연구하고 개발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일본이 기무치를 팔고 있는 동안에 우리는 손을 놓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종문화를 방치하고 21세기를 준비할 수 없다. 우리는 5000년 역사의 찬란한 문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도자기, 칠기, 한지공예 등 제작 기술면에 세계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지만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므로 체계적인 지원 육성이 필요하다.
넷째, 전통문화와 관광을 연계한 전략산업으로 지원·육성이 필요하다.문화유산은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관광객에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릴 수 있는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관광자원으로 활용방안은 주제별로 역사테마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든지, 전통 종가(宗家)와 민속마을을 관광객들이 직접 방문하여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관광상품 개발과 농경문화의 생활상을 보열 줄 수 있는 대보름 행사와 농악 놀이 등을 들 수 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화유산과 환경의 재정비라든가 관광객 욕구를 충족 시켜 줄만한 관광안내원 확보, 숙박시설 확충, 또한 각 지역별로 특색 있는 이벤트를 열거나 수용태세를 개선하여 역사문화 관광자원의 가치를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이 필요하닥 본다.
세계 각국은 21세기가 경제와 더불어 문화·관광사업이 국가경쟁력의 양대 축으로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을 예측하고 문화·관광을 전략적 사업으로 육성해 나가고 있으며, 이를 위해 자국이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 관광자원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우리 문화 특히 독창적 민족문화국가의 전통과 예술창조의 저력을 토대로 한 문화·관광 상품을 육성해 국가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는 길만이 우리 문화의 독창성과 고유성을 지켜나가는 일이며, 세계 속의 한국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문화역량을 길러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