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흙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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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오성
2000년 09월 223호
문화는 흙과 같다. 흙이 어떤 씨앗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생명을 새롭게 싹틔우듯이 문화는 인간의 모든 삶을 담아내고 정화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갖게 한다.
그런데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지금 인간의 문화는 빈곤하다. 문화의 생명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인간 삶의 가치를 상실해 버린 것이다. 그것은 물질이 가져다주는 풍요 속에서도 인간들이 행복감을 전혀 맛볼 수 없다는 것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동서를 가리지 않고 문화는 인간의 삶의 총화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하는 노력의 결정물이다. 라틴어의 Cultus는 처음에 \'밭을 갈아 경작한다\'란 의미가 나중에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로 변화되었다. 동양에서 \'문文의 의미는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적합한 전범典範을 가리키며, 화化는 문을 이용하여 인간의 삶의 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인간의 가치 신념이 어떠한 방향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문화는 형성되고, 그 미래를 결정한다.
문화는 흙과 같아서, 좋은 씨앗을 뿌렸을 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좋은 열매란 인간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문화 풍토가 건강할 수 없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을 끊임없이 성공적으로 수탈해온 이야기로 점철되어 있다. 또 그것을 정당하고 명예스럽게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이 모든 생명에 대해 인식론적·가치론적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출발한다. 나아가 인간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고의 삶의 목표로 하고 있고, 그 결과 문화의 황폐화를 가져왔다. 인간의 전도된 가치의식과 그 업의 축적으로 인해 지금의 문화를 낳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치기준은 인간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 냉혹한 군사적·경제적·지적 불평등 관계를 낳았고, 관계의 우위를 선점한 무리들은 보편성과 객관성을 내세워 정의로움과 진리성의 권위를 확보하였다. 이러한 논리는 물질적인 성공에 의해서 더욱 굳건한 믿음을 주었고, 다시 전 인류는 학습되고 계몽되었다.
이는 신으로부터 인간이 지배권을 위임받았다는 종교관과 다윈을 중심으로 진화론자들의 타협의 결론이다. 다윈은 권위를 부여받은 인간에게 약육강식의 자연적 생존의 논리로 문명의 발전을 설명하였고, 그 결과 너무나 큰 희생을 치렀을 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위기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다윈은 위대한 생물학자라기보다 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우주를 신중심의 세계관에서 생물 또는 존재론적 세계관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해는 존재의 연기성과 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정신은 육체와, 인간은 다른 종들과, 유정 물은 무정 물들과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유기적 인과관계에 있는 것으로 인식의 지평을 확대시켜 주었다. 어떤 존재일지라도 그 존재 이유가 있고, 존재들이 서로 의존했을 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생명의 진화는, 시간성만을 갖고 이해한다면,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변화한다는 말이다. 창조되고 실존하는 존재를 변화의 개념으로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을 비판하려 하는 것은, 진화의 개념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때, 인간사가 대립과 갈등 구조를 형성하여 파괴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문화적 가치를 상품성으로 판단하게 되었고, 경제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문화간에 경쟁적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문화는 흙과 같아서, 흙이 해갈이를 하고 그 지역마다 토질이 다르듯 서로 다른 문화간에 교류와 다양성이 형성되었을 때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문화는 개인적 행동 그 자체로 단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신념과 관습이 유형화되고 양식화되어 지속성을 가질 때 형성된다. 매킨타이어는 \'이성마저도 초월적 어떤 것이 아니라 특정 문화 전통과 동일시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문화는 상대적으로 다양한 인간 생존 양식의 특수성을 띠게 된다.
그런데 특수한 환경에 바탕을 둔 문화가 일방적으로 보편성을 가지려 할 때 갈등 구조가 형성된다. 오늘날과 같이 시·공간적으로 그물net관계의 세계에서는 문화적 충돌이 심화될 우려가 높다. 공간적으로 긴밀한 관계성에 놓인 문화간의 만남은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보다 풍부한 양적·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보편적 가치의 도출과 특수한 지역성을 띠고 있는 다양한 문화의 내용을 보다 풍부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문화들 가운데 어느 한 문화가 경쟁적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보편적 가치를 내세울 경우 갈등을 야기하거나 획일화되어 생명력을 잃을 가능성이 많아진다.
즉, 전 인류의 문제는 각각의 지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에 대항하여 지역 사회는 나름의 문제 해결 방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과정이 지역사회의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류의 보편적 문제를 공유하면서 특수한 조건과 상황에 따른 각각의 문제 해결 방식에 따라 그 지역 문화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보편적 문화는 특수 문화에 의해 다양성을 갖게 되며, 특수 문화는 보편적 문화에 의해 생명력을 잃지 않게 된다.
문화는 흙과 같아서, 농사가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듯 시간을 두고 함께 노력하는 과정에서 건강한 문화가 이룩된다.
미래로 나아갈수록 시간적 변화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 때 우리들의 눈에 변화를 보여주는 사물은 사실 사물이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또한 변화의 속도가 고르지 않다. 만일 모든 과정들이 같은 속도로 일어난다면, 심지어 그것들이 한꺼번에 감속한다면 변화를 관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미래는 여러 가지 다른 속도로 현재에 침입한다. 그러므로 제각기 다른 과정이 펼쳐짐에 따라 우리는 변화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어떤 사회들이 다른 사회들보다 변화 속도가 빠르므로 해서 불균형을 낳게 된다. 그것을 오그번은 \'문화적 지체\'라 하였다. 불균형과 지체는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서 어떤 지역에서는 문화의 역사적 단절을 낳기도 하며, 미래로 나아갈 문화의 방향을 불투명하게 한다.
따라서 문화는 열린 사회의, 열린 가슴의 구성원들이 함께 했을 때만이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훌륭한 문화는 이미 그려져 있어서 도달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모여서 진지하게 함께 하는 풍토를 만들어갈 때 위대한 문화가 탄생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