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 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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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주경
2000년 09월 223호
근래 일부 재가불자들의 법회에 참야하면 삼귀의례를 할 때 부처님과 가르침은 그대로 하면서 세번째의 스님을 승가 또는 승보로 바꾸어 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처음 이렇게 바뀌어진 삼귀의를 접할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화에 어색함과 약간의 당황함이 따랐으나 두세번 이러한 현상을 반복 경험하게 되면서 왜?라는 당연한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단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삼보의 \' 승보\'가 \'스님\'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주장의 핵심은 현대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중 하나인 \'사부대중\'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사부대중\'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통칭하는 말로 출가와 재가대중을 아우르는 불교인 모두를 뜻하고 있다. 불교인 모두를 뜻하는 사부대중이란 말이 왜 삼보의 하나인 승보와 동일시되고 그 개념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는 삼귀의례를 변화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느냐의 문제를 짚어 보자면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겠지만 대표적인 이유를 찾아 본다면 근대 한국불교사의 왜곡된 흐름에 그 주 요인이 있다고 하겠다. 조선 500년의 억압속에서 극한까지 추락한 승가의 위상, 일제하에서 승려의 대처(결혼)로 대표되는 왜색화 그리고 해방이후 시작된 비구대처의 분규 이 분규가 가까운 근래에까지 계속되어 이어지는 종단의 분란은 스님들에 대한 불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려 왔다.
이러한 스님들에 대한 불신의 증폭은 일부 재가불자로 하여금 승가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논리적 근거를 찾게 했고 이러한 발상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사부대중\'의 개념을 승보와 일치시키게 되었으며 또 전통적으로 출가승을 뜻하는 \'승가\'가 가지고 있는 \'화합하는 대중\'이라는 뜻을 역으로 적용하여 \'화합하는 대중은 승가\'라는 논리의 창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사실 재가불자들이 승가(스님)만큼 청정한 삶을 살겠다고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승가의 불화를 문제로 재가가 승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재가의 위상을 승가와 함께 하겠다고 한다면 분명한 문제의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시절 절에 수련회를 갔을 때 큰방의 윗자리를 놓고 다툼을 벌이던 지도교수와 법사스님의 모습이 아직 마음에 걸리고 출가한 뒤 학창시절의 지도교수를 만나 불교학과 출신임을 밝힌 뒤 따르는 어색하고 불편함으로 모교의 불교전공 교수를 만나도 더 이상 불교대학 출신임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
불교인에게 스님은 귀의해야 할 대상이지만 대학에서 수업을 들었거나 혹 재가불자의 강의를 듣게된 인연을 지은 스님은 승보로서의 권위와 존경을 잃고 재가불자의 제자라는 새로운 관계설정에 승가의 위상을 접어야 하는 현실이 실로 불교밖의 일이 아니다.
경에 이르기를 \"사자는 자신의 몸에 기생하는 벌레에 의해 죽음을 맞아하고, 쇠는 그 속에서 생겨난 녹에 의해 소멸한다.\"고 하였다. 행여 뜻 있는 재가불자들의 불교를 살리기 위한 시도와 불교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오히려 불교를 해치고 손상시키는 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