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과 계발 -지리산, 가야산 그리고 설악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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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0년 08월 222호
불교계 7, 8월의 시선은 해인사와 지리산 그리고 봉정암에 모아지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영남과 호남, 강원도라는 거리감을 지니고 있지만, 세 곳의 공통점은 깊은 골짜기와 높은 봉우리를 거느린 산중이라는 점과 국립공원이라는 것, 그리고 ‘환경’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데 있다.
환경이 화제가 되는 것은 이제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그래도 문제를 삼아야 하는 이유는 망가지는 환경이 행 정력을 등에 업고 자본의 논리를 철저히 관철시키려는, 그리고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의 가운데는 지방자치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지방자치제도가 전면적으로 실시된 95년부터 불교계는 사찰환경 훼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재정 확충을 위해 개발에 경쟁적 으로 나서기 시작했고, 개발 대상지는 국민들의 여가 활용 욕구의 증대에 편승해 관광지 또는 휴양지로 제격 인 소위 명산대찰이 꼽혔다. 빼어난 경관에 역사·문화의 배경을 두루 갖추었으니 비켜갈 리 만무하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고,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해인사 팔만대장경 인근에 골프장을 지 으려는 움직임은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직지사, 석남사 등 사찰 일주문 바로 앞에 대형 음식점을 짓겠다는 욕심과 이를 막으려는 사찰 측의 의지는 사법부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사찰과 개발업자·자치단체 사이에 벌어지는 환경분쟁은 전국적으로 10건을 넘는다. 수행과 포교에 전념해야 할 스님들과 스님들을 뒷바라지해야 할 신도들이 법당을 뒤로 하고 거리에 나앉는 일이 그치지 않고 있다. 삼보정재가 어쩔 수 없이 재판 비용으 로 빠져나가고 있다. 지방자치제도 시행 이후 5년 동안 거듭하는 일이다. 안타까움과 어이없음을 넘어 불자들 을 분노케 한다.
지리산은 어떤가. 우리나라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 일대에 5, 6개의 댐을 세우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낙동강 갈수기에 식수공급원으로 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얼핏 정부의 계획은 타 당성이 있어 보인다. 낙동강이 오염되어 더 이상 식수로 쓸 수 없는 사정이고, 갈수록 물 부족 현상이 심화된 다는 연구자들의 보고도 있으니 댐 건설을 최상의 방안으로 삼을 만하다. 물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댐을 당연히 세워야 한다. 우리 나라는 UN 산하기구인 국제인구행동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물 부족국가이다. 따라서 부족한 물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서는 댐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5, 6개뿐이겠는가. 현재 건설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26개보 다 더 많은 산에 콘크리트 물막이를 올려야 한다. 그런데 불교계와 시민단체 그리고 물 전문가들의 생각은 정부의 계획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한마디로 댐으로 물을 관리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낡은 수도관을 교체하면 연간 9억300만 톤의 물을 절약할 수 있으며, 이 수치는 댐을 3개 만드는 효과와 같다. 비용도 최근 백지화된 동강댐 건설비와 비슷한 1조원 정도라는 것이다. 절수시설 설치비용 780억원을 들이면 댐 1개 건설로 얻는 물을 확보할 수 있다. 또 나무를 심는 방법도 있다. 현재 산림이 함유하고 있는 연간 물 부존량은 180억 톤 정도인데, 댐 50개의 효과를 낸다. 물이 부족하니 더 이상 산을 헐지 말고 나무를 심는 간단한 방법이 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지리산 댐 건설에 반대해 이 달 말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단체와 시민환경단체는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 을 결성한다. ‘국민행동’에는 300여 단체가 참여한다. 이들 단체들은 물 문제와 관련해 정부와 매우 다른 견 해를 가지고 있는데, 300여 종교, 시민환경단체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것은 대단히 막중한 사안이다. 그 런데도 정부는 종교, 시민환경단체의 물에 대한 생각에 대해 반박하지 않고 있는 것은 종교인과 시민들의 생 각이 틀리지 않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왜 생태계를 교란시키며 문화·역사 유적을 훼손시키면서 댐 건설을 강행하려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청와대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언론에서 오보할 경우 적극적으로 해명 하고 바로잡겠다고 했는데,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는 청와대의 방침까지 외면하려는 것인가.
국립공원이며 세계문화유산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있는 가야산은 어떤가. 88고속도로와 연결하는 가야산 순 환도로를 내겠다고 경상남도와 합천군이 나섰다. 경남도와 합천군은 가야산 자락의 마장 주민들의 생활 편의 제공을 도로 개설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관광도로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88고속도로와 새로 개발하 는 온천지구-해인사를 연결해 세수를 늘리겠다는 것이 밑그림이다. 그리고 가야산과 해인사, 덕곡면 주민들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해인골프장 건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대법원까지 오르는 지리한 법정 싸움을 벌였으며, 지금도 행정소송에 계류돼 있는 상황이니 엎친 데 덮친 격의 처지에 다름 아니다.
지리산과 가야산의 환경침해 사례를 보며, 개발과 보존으로 맞선 두 측의 확연한 입장 차이를 확인한다. 다음 의 두 문장이 두 측의 간격을 좁힐 수 있는 실마리가 될 듯하다. ‘국립공원의 관리 목표는 국토의 뛰어난 자 연생태계, 경관 및 문화사적을 보존하고, 현 세대 뿐만 아니라 후손들도 그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데 있다.’ ‘국립공원 관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국가가 국립공원을 지정, 직접 관리해야 하고 제한된 범 위 내에서 국민들의 이용을 도모해야 한다.’ 98년 9월 14개 시민환경단체와 3개 국립공원 관련 전문학회가 공동으로 국립공원 정책포럼을 개최해 정부당국과 유관기관에 낸 ‘21세기 한국 국립공원 정책 건의문’ 가운 데 일부이다. 국립공원을 보존하되 제한적 범위 내에서 이용하자는 것이다. 제한적 범위라는 데서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보존이라는 전제에서의 이용을 뜻한다.
지리산 댐, 가야산 순환도로, 해인골프장을 만들려고 하는 정부당국과 지방자치단체, 개발업자는 국립공원 정 책 건의문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동의를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지리산 댐과 가야산 순환 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이유는 국립공원 정책 건의문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상황은 매우 단순 하다. 개발강행론과 보존론의 대치이며, 이는 속된 말로 세싸움이 결론을 말해 줄 수밖에 없다는 데 이른다.
해인사와 지리산 그리고 봉정암은 국립공원과 환경 훼손이라는 같은 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앞의 두 곳이 환경 훼손의 위기를 맞아 막기에 나선 반면 봉정암은 훼손의 당사자인 것이 다르다. 불교 계 30여 단체와 3천여 명의 사부대중이 모여 ‘지리산 살리기·댐백지화 추진 범불교연대’가 창립하며 불교 환경운동의 새 장을 연 엿새 뒤 ‘봉정암 헬기장 공사 계곡 파괴’라는 제목의 기사가 문화일보 사회면 부톱 으로 공사 현장 사진과 함께 실렸다. 같은 불교계 안에서 한쪽에선 산을 있는 그대로 두라고, 조계종 총무원장 까지 나서서 “북의 백두, 동의 금강, 서의 묘향, 남의 지리산은 민족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4대 명산으로 반드 시 보존되어야 한다”고 외쳤는데, 다른 한쪽에선 산을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이 보도되자 봉정암측 에선 즉시 공사를 중단하고 원상복구에 들어가 더 이상 사건이 확대되지 않았으나, 국민들 보기에 민망할 따 름이다.
사찰환경 훼손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자 조계종은 특별기구로 환경위원회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