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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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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바라봅시다 - 이죽내 2000년 08월 222호
현대인은 자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남의 말이나 여론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남의 말이나 여론에 따라 행동할 때 남이나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소위 정상인으로 취급받거나 사회적 모범인이 된다. 이 때 남이나 사회로부터는 인정과 칭찬을 받지마는 자기자신으로부터는 그렇지 않다. 그러기에 이런 사람들은 내면으로는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떠난 정상이나 사회적 모범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허구虛構에 불과하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기실현의 존재다. 자기실현으로 나아가지 않고는 자신과 사회는 건강할 수 없다. 이를테면 병이 발생한다. 병이란 항상 어떤 원인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뿐만 아니라 목적의미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여 자기실현을 촉구하는 목적의미를 갖고 있다.
오십대 초반의 주부가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녀의 삶은 모범적인 가정주부로서 자식들을 모두 훌륭히 키워 시집 장가 보내고 남편에게는 헌신적이었다.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아왔다. 그런데 수개월 전부터 이유없 이 삶에 대한 공허함과 허무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불안하기도 하고 잠을 잘 잘 수가 없었다. 자신감도 떨어지 고 그간 자신이 자식과 남편을 위해 헌신해 온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원래는 강박적일 정도로 철 저한 성격이었으나 병이 생긴 후로는 매사에 흥미를 잃고 가정일을 제대로 꾸려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남편의 권유로 바깥바람을 쏘이기도 하였으나 재미가 없고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꼈다. 말하자면, 이 환자는 발병 전과 발병 후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정반대로 되었다.
정신치료를 하는 과정에서 꿈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그 꿈속에서 그녀는 어떤 화실 같은 곳에서 열심히 그림 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예술대 회화과에 가려고 했으나 가정형편 상 포기해야만 했다. 이 꿈을 꾼 후 환자는 그림 그리는 일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 있었다. 우선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그림으로 그려오도록 하여 그 그림을 통해 치료를 해 나갔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원과 이해로 지금은 모대학에서 시행하는 회화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그림 공부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 환자는 그동안 아내와 어머니로서 남편과 자식의 기대와 사회적 평가에 철저하게 자신을 일치시켜 오느라 고 자기자신의 개성을 살리지 못했다. 그동안 자신의 개성이 억눌려 온 것이다. 우울증상은 환자로 하여금 지 금까지 어쩔 수 없이 자식과 남편에게로만 향했던 그녀의 시선과 노력을 이제는 자신을 위해 돌리도록 강요하 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에게 생긴 우울증상은 지금까지는 자식과 남편을 위해 헌신할 필요가 있었으나 지금부터는 당신 자신의 고유한 삶, 자기자신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신호인 셈이다. 이 환자에게는 우울증상은 자기실현의 기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치료받기 전에는 그런 우울증의 의미가 인식 되지 못한 채 우울증상의 포로가 되어 오직 증상의 불쾌감에서 허덕이고 있었을 뿐이다.
이 환자뿐만 아니라 대체로 인생의 후반기에 놓여 있는 사람의 노이로제 증상을 보면 이와같은 자기실현의 의 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인생의 후반기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그동안 가정이나 사 회에서 해야 할 일들을 성취한 사람들이다. 그 성취를 위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볼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바깥세계에만 열중해 온 사람들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자신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된다. 그것이 일종의 자 기소외自己疏外, 자기상실自己喪失이다.
노이로제는 이런 자기소외의 결과인 동시에 자기소외를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자신으로 되돌아가게 하는 목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이로제는 자기자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요 기회다. 이것이 바로 노이 로제의 고통이 갖고 있는 의미이다. 그러나 노이로제 환자 가운데는 이젠 살 만하게 되어 아무 걱정이 없는데 왜 이런 병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면서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다. 사실 외부적으로 볼 때는 아무 걱정이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모르고 있는 것을 깨우 쳐 주는 것이 치료이다.
인간은 쓸데없는 환상이나 생각을 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쓸데없는 생각임을 알면서도 마음대로 떼어버릴 수 도 없고 왜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 매달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수가 많다. 가령 아침 출근길에 별 이유없이 기 분이 안 좋지만 그 기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 기분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아무도 고통을 받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 우리들의 본래 마음(一心)이다. 그 본래 마음에 귀를 기 울이고 거기에 순응할 때 나와 나의 본래 마음은 하나가 되어 노이로제적인 고통은 사라지는 것이다. 노이로 제의 고통은 자신의 본래 마음으로 되돌아가라(歸一心)는 지시이다. 그러기에 노이로제 환자는 자신의 고통을 불평할 것이 아니라 그 고통에 감사해야 한다. 본래 마음을 유가儒家에서는 하늘에 비유하여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하고 순천자順天者는 존存이라 하여 천명을 거역하는 자는 죽고 천명에 따르는 자는 산다고 했다.
그러나 문제는 자신의 본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쉽지 않은 점이다. 자신의 본래 마음에 귀를 기울인다 는 것은 일종의 수신修身이나 수심修心의 태도이다. 현대인은 대체로 가치를 외부에서 찾고 있고 특히 물질에 두고 있어 수신이니 수심은 무가치한 것으로 되어 버리고 있다. 모든 고통을 자신 혹은 자신의 마음 밖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오늘날 정신의학에서 심성을 다루는 정신치료가 쇠퇴일로에 있고, 치료자나 환자가 심리적 문제를 약물 등 물리적 방법으로 쉽게 치료하고자 하는 경향은 이런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마음에서 오는 고통은 마음으로 풀어야 한다. 이열치열以熱治熱과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그 고통을 마음으로 푸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닌, 새로운 고통이다. 그러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해결하기 보다는 회 피하게 된다. 그러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감수하는 고통은 무명집착無明執着에서 오는 고통과는 달리 그 고 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각自覺된 고통이다. 전자가 염연기染緣起, 염훈습染熏習에서 오는 고통이라면, 후 자는 정연기淨緣起, 정훈습淨熏習에서 오는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중생이 무명집착의 염훈습의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라면, 수도자는 자각된 고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따라서, 고통의 진정한 의미는 자각된 고통을 통해 무명집착의 고통을 일으키는 번뇌煩惱를 치단治斷하여 본 래 마음을 회복하는 데 있다. 본래 마음을 회복하는 과정이 수도이고 본래적 의미의 정신치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