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해인사 경내가 활기로 가득 찬다.
젊은이들로부터 나이 좀 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해인사 여름수련법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나야 뒷방에 앉아 한가하게 지내는 늙은이라서 그들과 동참은 안 하지만, 그래도 참 보기 좋다. 젊은이들을 보 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다. 젊어서 불법에 눈을 뜬다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다. 더욱 요즘은 늙으나 젊으나 ‘물질’에 목을 매고들 있는데, 저렇듯 젊은 나이에 ‘사람 제대로 사는 일’에 마음을 열고 있으니 사람 사는 길에 있어 그보다 더 지혜로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나이 든 이들을 보아도 마음이 흐믓한 건 마찬 가지다. 아마도 그들은 그간 자신이 붙들고 살아온 맹목적 사고나 생활방식의 흐름에서 역류하고 싶었을 것이 다. 자신의 삶이 어떠했는지, 남은 생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에 눈을 돌린 그들이 있어 우리 불교의 앞날이 밝 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눈에 거슬리는 것을 보면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해서 행락철에 함부로 옷을 입고 경내에 오 락가락하는 사람이라도 눈에 띄면 야단을 치곤 한다.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이 어디 경내를 오고 가는 몇 사람 뿐이겠는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면 머리가 아플 지경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이면 저렇 듯 ‘마음공부’를 하겠다고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면, 불법의 위대성에 다시 한 번 감 탄하곤 한다. 어쨌거나 여름이면 저들이 있어 이 노승의 마음이 절로 훈훈해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내 나이 일흔다섯, 뭐 이 나이에 무슨 욕심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으나 그래도 젊은 사람들에게 자꾸 잔 소리를 하게 되니 마음을 온전히 비우려면 아직도 멀은 것 같다. ‘나이 먹으면 죽어야 한다’던 옛어른 말씀 이 자꾸 생각나는 걸 보면 이제 나도 어지간히 늙어 갈 나이가 되긴 된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하루하루를 쾌 활하고 명랑하게 산다. 지금도 운동을 많이 한다. 젊었을 땐 씨름선수를 했을 만큼 힘이 좋았고, 지금도 정구 하기를 즐긴다. 또한 잘 먹고 잠을 잘 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꾸물거림 없이 명확하게 일처리하는 성격이라 서 무엇을 미루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며칠 두고 생각해 봅시다’, 이런 말은 한평생 별로 써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일이 잘 되면 고맙고 그렇지 않 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늙어서도 노상 걱정거리가 많다. 가끔 이 늙은이를 찾아와 얘기 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저 걱정보따리를 안고 사는데, 가만 들어보면 누가 안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끌 어안고들 있다. 그저 나이 들수록 놓고 놓아야 하는데 대체로 그렇지 못하다.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자식들 시집, 장가가면 그날로 자식에 대한 생각을 놓아라. 그만하면 부모로서의 책임은 충분했다. 이제부터 당신들의 인생을 찾아라. 손주자식들 보아줄 생각일랑 말아라. 이제 자신의 건강관리에 힘쓰라. 그리고 이제 수행하는 일을 삶의 중심에 놓아라’. 그리고 마지막 꼭 덧붙이는 것은,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이다. 늙으면 왜 그리들 남의 일에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없는 법, 그것처럼 쓸데없는 소모는 없다. 그저 남의 일엔 입 꾹 다물고 자신의 건강 지키고 묵묵히 수행에 힘쓸 일이다. 수행하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며, 밝아지면 통하기 마련이다. 수행을 ! 삶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긴 수행에 힘써야 함이 어디 늙은이들에만 국한된 것 이겠는가.
이 땅에 광복이 오기 직전 고향 황해도를 등지고 남으로 왔다. 그때가 스물한 살, 경찰직에 몸을 담고 있다가 소위 늦깎이로 산문에 들어왔다. 세상인연을 다 잊고 ‘마음 닦아 제대로 살아보리라’ 마음먹고 들어온 출가 의 길이었으나, 돌아보면 뼈저린 회한이 가슴을 친다. 되든 안 되든 출가한 그 길로 ‘화두’ 하나 잡고 목숨 을 내놓고 정진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속세에서 익힌 습을 놓지 못해 절집의 행정이다 주지다 하느라 때를 놓치고 말았으니 누구를 탓할 것도 없는 일이다. 선방으로 들어가 선승으로 늙지 못할 인연이 아니었겠 는가. 본디 지난 일에 마음을 두고 살지 않는 성격인데도 그 일 하나만은 뼈저린 회한으로 남는 걸 보면 ‘야 무진 중노릇’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그에 맞추어 불법도 방편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하나, 중이란 무릇 삿갓 쓰고 검정 고무신 신고 산속에서 화두 들고 세상사람들과 멀리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출가해야겠다’는, 이미 젊지 않은 나를 그 당시 종정이며 해인사 방장으로 계셨던 고암 스님께선 얼른 ‘그러마’ 하지 않았었다. ‘세속의 인연을 끊고 들어오려는데 자비문중이라면 백세 된 사람도 받아 주어야 되지 않느냐’며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나를 한없이 인자하셨던 스님께선 결국 허락하시고 계를 설해 주 시긴 했으나 여러 가지로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행자시절을 가져보지 못했다. 아마도 나이탓, 시절 탓이었을 것이다. 계를 받고 노스님 을 잠깐 용탑선원에서 모셨던 세월이 남들이 거친 행자시절 같았을까. 고암 노스님은 참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분이었다. 남이 들어 싫은 소리는 하시는 법이 없으셨고 누구한테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어도 나무라는 법 없이 ‘이다음엔 조금더 잘하라’는 말씀 뿐이었다. 아침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빗자루를 들고 마 당을 쓸어 ‘그만두시라’고 하면 운동 삼아 한다며 늘 손수 마당을 쓸곤 하셨다. 새 런닝을 입으실 때면 손 수 먹물을 들여 입었고 빨래도 늘 손수 빨아 널었다가 입으셨던 분이다. 언젠가는 내가 요강을 한 번 치워드 렸는데 언짢은 기색으로 혼을 내셨다. ‘자비의 화신’으로 내 심중에 남아 있는 어른이다.
‘선방으로 들어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어느덧 세월이 훌쩍 지났다. 이 생애 부처님법을 만나 산문에 들어올 수 있는 복을 누렸으니, 지금에 와서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부처님의 품안에 감사하며 수행자는 모름지기 물 처럼 바람처럼 걸림없이 살도록 해야 한다.
하루,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영원을 놓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