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화엄경계송산책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화엄회해 - 반산 2000년 08월 222호
요즈음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필자는 강원 학인시절 홍제암 뒷계곡에서 발 담그던 옛 추억이나, 지리산 자락에서 대성골 계곡물에 서투른 멱을 감던 기억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이제 제4회 설법의 중심인 십행품十行品 제21의 게송을 음미할 차례이다. 십행十行이란 ‘보살의 열 가지 행’을 말한 것이니, 공덕림보살이 선사유善思惟 삼매에 들어가 여러 부처님이 가피하시는 지혜를 받들고, 삼매에서 일어나 먼저 장항으로 말하였다.

불법이 불이세간법不異世間法하고 세간법이 불이불법不異佛法하며
“보살이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모두 깊고 깊음을 알며, … 불법이 세간법과 다르지 않고, 세간법이 불법과 다르지 않고, 불법과 세간법이 섞이지 아니하며 또 차별도 없음을 이해하나니, 법계의 자체 성품이 평등하면 삼세에 두루 들어감인 줄을 분명히 아는 것이니라.[ … 佛法이 不異世間法하고 世間法이 不異佛法하며 佛法世間法이 無有雜亂하고 亦無差別하며 了知法界가 體性平等하야 普入三世하니라]”

이어서 게송을 보자.
“중생들의 근성이 같지도 않고 욕망과 이해들도 제각기 차별이며 가지가지 세계를 밝게 아나니 널리 들어간 이가 이 길 행하네[了知衆生根不同과 欲解無量各差別하며 種種諸界皆明達하니 此普入者行斯道로다]”
“시방의 한량 없는 모든 세계에 태어나는 수효가 그지없건만 한 생각도 피로한 마음 없나니 즐거워하는 이가 이 길 행하네[十方世界無量刹에 悉往受生無有數호대 未曾一念生疲厭하니 彼歡喜者行斯道로다]”
“보는 이로 하여금 헛되지 않고 불법에 좋은 인연 심게 하지만 하는 일에 마음이 집착 없나니 모든 것 수승한 이가 행하시는 길이네[能令見者無空過하야 皆於佛法種因緣호대 而於所作心無着하니 彼諸最勝所行道로다]”

『육조단경』 반야般若 제2에 말하였다. “불법이 세간에 있어서 세간을 떠나서 깨달을 수 없나니 세간을 떠나 깨달음을 구하려 한다면 마치 (본래 없는) 토끼의 뿔을 구하려는 것과 같으리[佛法在世間하야 不離世間覺이니 離世覓菩提하면 恰如求兎角이니라]” 위의 장항에 말한 정신이 단경에 투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제22이다. 여기서는 공덕림보살이 이 단계에서 더 훌륭하게 나아가는 덕을 보이는데 열 가지 무진한 행상을 말하고 제4회의 법문을 마치고 있다.

부처님이 보리를 얻음은 날짜에 얽매이지 않나니
이어서 제5회의 설법장소인 도솔천궁으로 한 계단 더 올라가보자. 수많은 보개寶蓋와 화장華帳, 의복, 방울 등의 장엄이 늘어선 보배궁전에서 게송이 설해진다.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 제23을 지나 서론격인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제24의 게송을 살펴보자.
지혜가 적은 이는 부처님의 참된 경계 알지 못하니 청정한 업을 오래 닦아야 이것을 분명히 알게 되리라.[少智不能知 諸佛實境界하나니 久修淸淨業하야사 於此乃能了로다]
마치 비옥한 밭에 뿌린 씨 잘 자라듯이 깨끗한 마음밭 그와 같아서 부처님의 법 생장하나니.[譬如良沃田에 所種必滋長인달하야 如是淨心地에 出生諸佛法이로다]
마치 아가타阿伽陀약이 모든 독을 소멸하듯이 부처님 법도 그와 같아서 모든 번뇌를 소멸하나니.[譬如伽陀藥이 能消一切毒인달하야 佛法亦如是하야 滅諸煩惱患이로다]중생들은 말하기를 어느 날 부처님 성도하셨다 하나 부처님이 보리를 얻음은 날짜에 얽매이지 않나니.[衆生如是說 某日佛成道나 如來得菩提는 實不繫於日이로다]

위의 게송 중 그 마지막 게송에 유의해보자. 이것은 『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서 말하는 정신 곧 ‘오랜 세월 전에 성불하신 부처님[久遠實性의 本佛]’의 사상이 깃들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법화경에서는, “내가 성불한 지는 이와 같이 오래이고 멀지마는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해서 부처님 도에 들게 하려고 이렇게 말하였느니라[我實成佛已來는 久遠若斯언만은 但以方便으로 敎化衆生하야 令入佛道일새 作如是說이니라]”고 하였다. 게송[법화경 여래수량품]에 말하였다.
“내 스스로 성불하여 지나온 그 겁수는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가 되느니라[自我得佛來의 所經諸劫數는 無量百千萬 億載阿僧祗라]중생제도 위하여 열반을 말하지만 그 실은 멸도 않고 항상 이 법 설하나니[爲度衆生故로 方便現涅槃이나 而實不滅度하야 常住此說法하노라]”

이러한 구원실성의 부처님을 말하는 것은 대승불교사상의 근간이 되어왔다. 그리하여 법화경과 화엄경의 사상은 서로 보완적으로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지은 모든 공덕 모두를 위해 회향하리
다음은 십회향품十廻向品 제25이다. 금강당보살金剛幢菩薩이 지광智光삼매에 들어가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지혜를 얻었고, 그 삼매에서 일어나 열 가지 회향을 말한다. 각각 세 곳으로 회향하였으니, 첫째 대비심을 중생에게 베풀어 교화하기 위해서는 아래로 중생에게 회향하고[중생회향], 둘째 위로 보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보리에 회향하고[보리회향], 셋째 회향하는 사람이나 이치가 모두 고요함으로는 진여의 실제에 회향하여서[실제회향] 그지 없는 수행의 바다로 보현법계의 공덕을 성취하는 일을 말하였다. 이것이 바로 불공시 축원문에서 항상 만날 수 있는 ‘회향삼처실원만廻向三處悉圓滿’의 정신이다.

하지만 얼마나 어려운 것이 이 ‘회향’이란 말이던가! 그래서 사람들은 순간순간 마음을 비웠다고 말하지만 과연 마음 비운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한국동란 이후 경제발전에 매진해 온 우리들의 피땀을 북한과의 통일에 그 공덕을 회향하는 자세가 없다면 민족통일은 얻어지기 어려울 게 틀림없다. 요즈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려고 남의 불편이나 국민의 생명을 돌보려는 마음이 적은 사회현상을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깊이 반성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