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에는 반드시 내가 스승 삼아 배울 만한 사람이 있다. 삼인지행필유아사三人之行必有我師」 라는 말은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고 사양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일 줄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러한 태도는 수행자에게 더더욱 필요한 덕목으로 하심下心하는 수행이라고 한다. 아무리 나보다 못난 사람이 나를 멸시하고 따돌림 한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잘난 체하지 말고 무조건 하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수행인이다. 더구나 일체중생을 모두 부처로 본다면 나만 잘났고 저들은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삼국유사를 저술하신 일연 스님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소년 시절에도 스님은 언행이 가볍지 않았고, 성품에도 거짓이나 꾸밈이 없었으며 사물을 대할 때에도 진정을 다하여 성실하게 하였다. 또한 함부로 무리들과 섞여서 분별없이 놀지 않았으므로 친구들과 함께 있을지라도 홀로 있는 것 「처중약독處衆若獨」과 같았으며 출가하신 후에 스님께서는 수행인으로서 최고의 자리인 국존國尊에 이를 만큼 존귀한 신분이 되었지만, 마음은 늘 겸손하여 높은 지위에 있어도 낮은데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거존약비 굴기자 능처중 호승자 필우적 居尊若卑 屈己者 能處重 好勝者 必遇敵」이라. 자기 자신을 굽힐 줄 아는 사람은 장차 중요한 지위에 오를 수 있지만,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나고 말 것이다.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여기며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자기가 감당해 낼 수 없는 강적과 맞부닥쳐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미끄러지고 말 것이 당연지사다. 그러나 겸손하여 남을 자기보다 낫다고 여기면서 자기를 굽힐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나아가 지위가 올라 중요한 직책까지 맡게 될 것이다.
맹자가 말한 사양지심辭讓之心도 바로 자기를 굽힐 줄 아는 겸손의 마음인 것이며, 자기를 굽히고 다른 사람에게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손해를 보는 듯 하지만 결국 그 이익은 모두 나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겸손과 하심은 모두 「총명사예수지이우 聰明思睿守之以愚」라. 총명하고 깊은 생각은 어리석음으로써 자신을 지키는 지혜인 것이다. 자기가 총명하고 깊은 생각을 지니고 있어도 잘난 척하지 않고 도리어 어리석은 척함으로써 자신의 빼어난 부분을 감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화경』에는 겸손의 극치라고 할만한 인물이 소개되어 있다. 부처님께서 과거세상 아만我慢이 가득한 사람들이 많이 살던 때에 상불경보살이라는 비구스님으로 인행因行하셨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그 사람에게 ‘나는 그대를 공경합니다. 당신은 보살도를 닦아 마침내 부처가 되실 것이므로 나는 그대에게 진심으로 예를 올립니다.’ 라며 합장하고 예를 갖춤으로 상불경常不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 보살은 경전을 독송하거나 참선한다든가 하는 다른 수행은 하지 않고 오로지 만나는 사람에게 이 말을 하면서 합장하고 예배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았다. 심지어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을 보더라도 일부러 그에게 가까이 찾아가 예배하며 찬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심瞋心이 많아 마음이 청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보살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화를 내고 욕하며 말하기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는 것을 보니 필시 미친 놈이로구나.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대들을 업신여기지 않노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수기授記하여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하나, 우리는 이런 거짓된 수기를 믿지 않노라”고 하였다. 보살은 이런 말을 들어도 화를 내거나 예배를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간절한 마음으로 합장을 올리며 ‘당신은 마침내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더욱 화를 내면서 보살을 막대기나 돌로 때리기도 하였지만,어떤 수모를 당할지라도 보살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상불경보살이 마침내 수명이 다하여 임종에 다다랐을 때에 일찍이 위음왕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화경을 듣고 육근六根이 청정해지고 그 수명이 이백억나유타로 늘어나서 널리 법화경을 설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예전에 상불경보살에게 돌을 던졌던 모든 대중들이 보살의 대신통력大神通力과 요설변력樂說辯力, 그리고 대선적력大善寂力을 보고는 마침내 신복信伏하여 수순隨順하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법구경』에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천하제일이라고 뽐내면서 자신과 맞서 상대할 자를 찾아 다녔다는 범지梵志를 그 아만에서 깨우치게 하셨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대낮에 횃불을 들고 다니곤 하였는데,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면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어 눈이 있다고 하여도 아무 것도 보지 못하니 그들의 어리석음을 비춰 주기 위하여 횃불을 들고 다니노라’고 거드름을 피었으나 그 누구도 이러한 범지의 오만함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 범지의 아만심을 꺾어 주기 위하여 그의 앞에 나타나서 ‘조금 아는 것이 있다고 하여 스스로 뽐내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것은 마치 장님이 횃불을 들고 나선 것과 같아서 남을 비출 수는 있지만 자기자신을 밝히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범지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깊이 뉘우치며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였다. 부처님께서 허락하시고 하심의 수행을 닦게 하였으며, 그리하여 교만과 아만심이 모두 없어진 범지는 마침내 밝은 지혜를 갖춘 아라한을 이루었다.
상불경보살이 갖은 박해 속에서도 ‘그대들은 반드시 부처를 이룰 것이니라’는 말을 되풀이하여 강조한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들의 성품 안에 깃들어 있는 불성佛性을 보았으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예배와 찬탄을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똑같은 생명체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나와 동등하게 모든 인류가 부처요,절대자임을 자각한 데서 오는 큰 감동이 그것을 일깨워 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나’라는 테두리 안에서 불성을 회복하려는 아만이 아니라,처음부터 온 중생들의 불성을 자각함으로써 다같이 성불하려는 대승정신의 순수한 발로發露이며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요설변력 법문을 설하는 언변이 뛰어나다는 뜻. 듣는 사람들이 모두 진심을 내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경하는 마음을 말로 나타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뛰어난 힘을 말한다.
※대선적력 적寂은 고요해서 흔들림이 없는 것이며, 선善은 최상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완전하고 미동조차 없는 상 태, 말로는 쉽지만 지극히 어려운 경지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