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은 장난을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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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승오
2000년 08월 222호
사람은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장난끼가 있기 마련이다. 나는 어렸을 때는 어지간히 장난이 심했던 것 같다. 절 집에 와서도 장난끼가 남아 있었으니… 나는 지금 차 한잔을 마시며 잠시 지난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7∼8년 전의 일이다. 어느 토요일 날 저녁, 모 스님을 골려줄 심산으로 장난끼가 발동하여 가장 친했던 도반과 그 스님이 화장실에 올 때 공포에 떨게하여 뒤도 안 닦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꾀를 내었다. 내가 정진했던 그 절에는 밤이면 으슥해지는 일명 공포의 화장실이 있었다. 도반과 나는 대나무를 화장실 아래 비스듬이 세워두었다가 끈으로 당기면 대나무 끝 잎이 엉덩이를 스치도록 해 놓고 스님이 오도록 기다렸다.
그 스님이 희미한 가로등 사이로 손전등을 들고 멀리서 오고 있었다. 두고보자 ……
모두가 경험한 일이겠지만 화장실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아 힘을 주어 한 덩이를 내보내면 시원하고 긴장도 풀리게 된다. 우리는 그 스님이 화장실에 와서 긴장이 풀린 이때를 공포를 주는 시간으로 택했다. 이윽고 화장실 바닥에 “투둑”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신호로 원격 조정으로 줄을 당겨 대나무 잎이 스님 엉덩이를 스치게 했다. 비명을 지르고 놀래서 뒤도 닦지 않은 것은 물론 바지도 올리지 않고 나오다 바지에 걸려 넘어져 네 발로 기어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 그런데 이것을 어쩐담! 그 스님은 우리가 노린 스님이 아닌 선방스님이었다. 그것도 무섭게 생긴 스님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부터 거의 한 달간 그 선방스님은 매일 해우소 주위를 염탐하며 기웃거렸다. 아마 우리를 잡으려는 심산이었는데 그것을 모를리 없는 우리는 이 일이 웃음보 터지는 좋은 지대방 한담閑談 꺼리였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들키는 날엔 끝장나기 때문이었다. 거의 한 달이 되었을 즈음 그 스님은 장난끼 심한 나를 뚤어 지게 쳐다보면서 “네가 그랬지!” 하고 묻는 것이었다. “뭘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하면서 시침을 뚝 뗏다. 몇 일이 더 지난 후 나는 마음이 도저히 편하지 않아 사실을 이야기하고 잠깐 혼이 난 적이 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동심으로 시작된 일이다. 이렇게 해우소에 얽힌 얘기들은 많이 있다. 15년 전엔 백담사에서 있었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
장난이 심하면 꼭 장난을 당하는 것이 순리인 것 같다. 이것도 인과응보라 할까? 나도 역시 장난에 당한 적도 많이 있었다. 그렇다. 인과란 역연歷然한 것이니까.
우리가 어떠한 일을 하면 반드시 그에 대한 대가가 온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욕을 하가나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것도 역시 인과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훼욕진법문毁辱眞法門이요, 심해대불사甚害大佛事니라」는 말이 있다. “남이 나를 비방하는 것은 진실된 부처님 법문이요, 남이 나를 침해하는 것은 큰 불사를 지음이라.”는 말이다.
어떠한 일이 닥쳐올 때 그 일이 나의 지난 업장을 소멸하는 일인 줄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미래의 인연은 아름다운 좋은 인연으로 맺어 질 것이다. 불자들이 기도하고 정진함은 바로 이런 좋은 인연을 맺어 놓고 궁극에는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