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피즘 시인 후즈위리의 말이다.
유월 이십삼일부터 칠월 십칠일까지 이십사일간의 긴 휴가를 다녀 왔다.
생전에 처음 가보는 낯선 땅에서 철저한 이방인이 되어 들려오는 말의 소음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맛보며 오롯하게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사람으로부터의 자유와 시간으로부터의 자유를 찾으며 홀가분하게 길을 나섰던 터라 비행기 트랙을 오르며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되뇌었다. 누가 나를 얽매고 있었던가…. 결국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결박하고 자유도 자기가 부여하는 것인데 무엇으로부터의 얽매임이었고 누구로부터의 구속이었기에 그렇게 자유를 열망했던가를 생각하니 공허한 웃음만 입가에 맴돌았다.
핑계는 유럽 음악고장 순례라는 거창한 명분을 마음에 새기며 배낭 하나 메고 길을 떠났던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돌아 독일을 순례하던 중 그래도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가보지 않을 수 없었고, 베를린 하면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이기도 해서 베를린을 일정에 넣었다. 베토벤의 고향인 본을 들러서 베를린을 향했다. 베를린을 향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베를린 동쪽에 있는 한국 사찰 보문사를 방문해서 생김도 언어도 낯선 나라에서 어떻게 한국 불교를 전하고 있는지 그 정황을 둘러보기 위한 마음도 내심에는 있었다.
저녁 공양 전에 베를린 오페라 하우스와 베를린 필하모니 홀을 둘러보기 위해서 지하철노선 지도 하나 들고 보문사를 나섰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그날 공연은 이미 시작이 되었고, 그곳까지 달려간 발품이 아까워 로비만이라도 구경해야 했었다. 요즘 공연되고 있는 프로그램들만 손에 쥐고 다시 베를린 필하모니 홀로 향했다. 다리도 아프고 여행의 피로가 쌓여 있던 터라 그 날 오후의 일정은 그것으로 마무리하고 보문사로 돌아갔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홀에는 테이블에 손님이 꽉 차고, 동양의 차를 즐기는 손님, 한국 라면을 먹는 손님, 잡채를 먹는 손님… 다양한 메뉴로 저녁 시간을 즐기고 있는 독일 현지인들이 가득했다. 찻집을 겸해서 분식을 주메뉴로 하는 이유가 객으로 방문한 나에게 약간의 궁금증을 품게 했다. 주지스님의 말씀인즉, 법당을 임대한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더 큰 목적이라면 동양의 차와 음식을 통해서 독일 현지인들에게 한국의 불교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수행자가 차를 내고 음식을 만들어 임대비용을 벌어야 한다는 현실을 대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나 자신은 나름대로 명분을 가지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그것도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보문사의 현실을 보고 돌아 나오며 ‘꼭 이러한 방법 밖에는 없을까… 나는 너무 안일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종단에서 해외포교에 대한 지원은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다음 목적지인 드레스덴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행히 마음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렵게 외국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 애쓰는 스님들의 노고가 결코 헛되지만은 않으리라고… 그곳이 분명 스님의 단단한 수행도량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열차는 독일 동부 어느 곳인가를 향하고 있었고, 수행자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일지라도 당당하게 “수처작주隨處作主” 하라는 어른 스님의 말씀이 강하게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당당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부처님 가르침을 생각하니 가슴 가득히 설명할 수 없는 충만감이 가득했다. 언제나 서 있는 자리가 좋은 수도장이 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