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좋은 날에는 징조가 있다. 아침에 까치소리를 듣는다거나 거미가 내려온다거나 화투패의 끝이 딱 맞아 떨어진다거나 ….
어느 화창한 겨울날 차 뒤칸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잔뜩 싣고서 빨간색 차를 몰고 가던 한 여성이 통행료 내는 곳에 이르러, 징수원에게 일곱장의 티켓을 내밀며 말한다. 한 장은 내꺼고 나머지는 뒤에 오는 여섯 대의 차를 위해 내가 대신 내주는 거예요.
‘작가는 이런 말을 했었다. 선행은 전염성을 갖고 퍼져나간다.그래서 누가 당신의 통행료를 대신 내줬다면 당신 역시 언젠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그런 일을 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우리는 아주 작아 보이는 일에서도 세상을 다 얻은 것과 같은 감동과 희열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커다랗게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주르르 흘러내리는 한낮의 뙤약볕 아래 대로변으로, 가사 장삼 수하고 직접 마중나오실 줄은 몰랐다. 일요일에는 금당절(석천사에서 운영하는 포교당) 법회가 있는 날이라 했는데 아마 법회 중간에 잠시 나오신 모양이다. 바로 코앞이긴 해도 웬만하면 다른 스님 내지는 보살들을 시켜 길안내를 당부하실 법도 한데 ….
애시당초 뒤로 물러앉아 무게잡고 권위잡는 것은 질색이라는 소리는 들은 바 있다. 나이든 티 내느라 한없이 퍼질러 앉아 방바닥에 엉덩이 뭉개는 꼴은 남들뿐 아니라 자신에게 더 용납 못한다. 늘 푸른 소나무의 성성한 기개로 항상 깨어 있기를 서원한다는 진옥 스님.
스님은 말한다. 전생에 지독하게게을렀던 모양이라고. 그래서 지금도 틈만 나면 그 습이 도져 게으름으로 유혹한다고. 스님은 잠이 곧 죽음이라며 경계한다. 그 유혹에 넘어가는 시간이 늘면 늘수록 죽을 때가 임박한 증거라 깨어 있으려 두 눈 부릅뜨며 안간힘 쓴다나.
스님의 ‘잠’이라는 시다.
또 죽을 시간인가 보다.
매일 하는 일이라
이 시간만 죽고 싶으면
다행이다.
시도 때도 없이
가고 싶을 때가 있다.
맨날
번뇌가 들끓지 않으면
죽고 만다.
또 반복한다.
그대는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가.
방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했다. 며칠 전 한 번 찾아뵙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벌써 그 사이에 새로운 일정 하나가 어느새 껴들어와 있었다. 광주지역 포교사단에서 법문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스님이 법문을 거절하는 예가 없다. 얼핏 훔쳐본 스님의 수첩에는 한달간의 계획이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빽빽하게 짜여져 있다.
석천사 법회 만도 13개에다 강원강의, 복지관 조회… 등등.
이런 정기적 일정에 수시로 접수되는 법문까지 가세하면 과연 이 많은 것들을 어찌 소화하시는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필생의 사명으로 받아들이는데야 걱정은 쓸데없는 일. 원이 하나 있다면 법상에서 법문 하다 그대로 앉은 채 죽는 것이라니. 계기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한 큰스님의 법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스님이 주장자를 높이 들어 세 번 법상을 치고는 ‘할‘하며 묻는거야,알겠습니까?
그리고는 화두 한마디 던지시고 법상에서 내려가셨어. 그러자 어떤 노보살님이 따라나서며 스님께 합장하며, 스님 법문 정말 잘 들었습니다 해. 참으로 놀라웠지. 나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법문을 저 노보살님은 이해를 했나보다 싶어 물었어, 보살님 뭐가 그리 좋습디까, 그런데 대답은 간단해,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내 여러 사람한테 물었는데 대답은 한결같애.그후 법회를 수없이 찾아다녀 보았지만 그나마 법문을 하는데도 드물고 한다해도 스님 생각에 제대로 된 법문을 해 주는 곳은 한군데도 없었다. 그때 원이 생겼다. 부처님 말씀을 쉽게 전해 줘야겠다.
그 한생각으로 평생을 일관할 참이다. 처음에는 틀니 뺏다 꼈다 하는 할머니 하고 지팡이를 짚어야 걸을 수 있는 할아버지 그리고 그 딸 이렇게 서너명 앉혀 놓고 시작했지. 경전을 중심으로 생활과 관련된 인과법 등의 얘기였는데 그러니까 노보살이 내 말 듣고 물어.
그게 누구 말이냐고. 그게 바로 부처님 말씀이라고 일러 주니까 하는 말이, 난 맨날 부처님이 등이나 켜라고 하신 줄 알았데. 스님들이 부처님 말씀은 전달하지 않고 앉아서 복 장사나 하고 있었다는 거야. 신도들은 복 받으러 절에 가고.
미안해서 어쩐다. 어제 다시 한 번 연락을 하고 오지.석천사에 들르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스님 법문 들으러 일부러 먼길 마다 않고 달려오는 불자들도 꽤 많다는데 광주가 아니라 제주도면 어떠한가. 잠시 스님 시자가 되어(?) 광주행에 동참했다.
올 같은 장마를 마른 장마라던가. 농사짓는 우리 어머니 걱정하며 말씀하시는 표현이 재미있다. 비가 쇠코에 땀나듯 하누만. 습기가 가시지 않다보니 연일 후덥지근한 날의 연속이다. 요즘 차들은 에어컨 성능이 좋아 빵빵하게 찬바람을 제공함에도 쏟아지듯 내리쬐는 햇빛과 점심 직후의 나른한 식곤증까지 몰아내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그래도 스님 계신데 차마 졸 수도 없고 스님 법문 하실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나 그것은 야무진 꿈이었다. 스님은 아직 오실 양반들이 많이 안 오셨으니 10분만 기다렸다가 법회를 시작하자는 진행자의 양해도 일거에 거절하시고 시간을 엄수하시더니 법문을 여시면서 하시는 말씀,나는 강의할 때 조는 것은 용납 못한다며 3가지 죽는 법부터 설하시는 게 아닌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만 죽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도 죽는 것이요, 의식없이 사는 것도 죽는 것이요. 그래서 조는 사람이 발견되면 아미타불 장엄염불을 해 주겠다는데 그 앞에서 무슨 용기로 졸 수 있을까.
스님 법문을 노도怒濤와 같다고 하면 너무 거친 표현일까? 일반 불자들에게는 예를 들어가며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자상하게 말씀하시더니, 지도자들 앞에 서니 야단도 치고 노래까지 부르면서 한시도 긴장을 멈추지 않게 한다. 그 와중에서도 두 번 정도 아미타불 염불이 있었으니 수면욕이란 대단한 것이다.
“청산첩첩 미타굴 나무아미타불창해망망 적멸궁 나무아미타불 물물염례 무가해 나무아미타….”
집이 보리암 아래였다. 외가도 근처에 살았는데 살림이 넉넉했다. 외할머니가 보리암의 큰 보살이었다. 할머니 따라 보리암을 내 집 드나들 듯 했는데 그래서인지 보리암에는 언제 가도 낯설지 않다.
외할머니에게는 예지력 같은 것이 있었다. 다른 사람은 예상치 못하는 말씀이대체로 맞아떨어졌다. 할머니는 스님들께 손수 베를 짜서 물을 들여 옷을 지어 드리는 일을 무척 정성스럽게 했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어린 외손주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으니 안경 너머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하나 만들어 줄끄나, 아이는 고개를 끄떡였다. 스님은 아마 여섯 살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때는 왜 그 옷이 그리도 입고 싶었는지. 아주 오랫동안 할머니가 지어 주신 승복을 아주 자랑스럽게 입고 다녔던 기억이 남아 있다. 할머니는 아마 그 때 이미 어린 손주의 미래를 예견하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여수는 오래 전부터 기독교세가 강한 곳이다. 스님이 처음 석천사에 왔던 10년 전만 해도 석천사는 대웅전과 요사채 하나 달랑 있던 초라한 암자에 불과했고, 불교신자는 눈 씻고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오늘, 석천사는 웬만큼 사격이 갖추어졌고(스님은 아직도 성에 차지 않지만) 1000여 명의 불자들이 법회를 보는 전당이 되었다.
스님은 포교라는 과제를 지역사회의 현안과 함께 해결해 왔다. 종합사회복지관과 노인복지관을 위탁 운영하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적극적인 봉사활동도 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해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불교와의 접촉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향토사연구에도 적극 동참해 승군의 활약상을 찾아내는가 하면, 환경운동연합과 연계해 청정해역 오염원을 밝히고 공단에 압력을 가하는 등 환경지킴이로서의 역할도 주도하고 있다.(현재 환경운동연합 사무실을 석천사 내에 두고 있다.) 2년 전에는 여수 시내 금당에 금당절이라는 포교당도 세웠다.
스님은 불자들에게 사회봉사를 강조한다. 그런데 그런 의식이 타종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안타깝다고 한다. 일전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줄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고 지역신문에 광고했는데 불자는 한 사람도 없고 기독교인 세 사람이 왔지 뭔가.
문득 아주 오래 전의 생에 스님은 승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정치승들이 들끓는 총무원 근처에는 발길도 하지 않는다는 대쪽 같은 성품 하며, 의로운 일에는 물불 안 가리는 기백 그리고 스님이 거쳐온 태안사며 흥국사, 석천사 등등이 모두 승군의 활동무대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여수의 향토사 정리를 통해 승군의 활약상을 규명해 낸 것도 진옥 스님이니. 스님께 기자의 어설픈 추측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했더니 스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단다. 말 잘 타고 활쏘기에 능한 거며, 왠지 방안에 긴 장도를 두고 싶은 충동 등은 과거의 습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 싶다고. 그러나 지금은 모두 부질없는 것으로 접어 두고 있다. 그러나 전생은 알 수 없는 일 허허허.
그러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스님을 뵙고 나오는 길. 이 가슴 든든함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늘 답답하다. 올바른 길은 교과서 속에서만 있는 것이라고 포기하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데 어느새 익숙해 있다. 세속과 불교를 불문하고. 바른 것을 고수하며 곧게 살아가는 이를 본다는 것은 희열이다. 사막에서 물웅덩이를 발견한 것만큼이나.확실히 운좋은 날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