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로 인해서 집안의 숙업을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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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삼우
2000년 08월 222호
내가 송광사 천자암에 있을 때 어느 겨울날 한 부부가 여덟 살 되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와서는 은사스님에게 자기 아이를 맡아달라고 애원하였다. 은사스님은 왜 아이를 절에 맡기려고 하는지사연을 물어보니 그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 아이가 마귀에 씐 것 같습니다” 하였다.
은사스님께서 “이 똘똘한 애가 마귀에 걸려 있다니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보시지요” 하자 그 부모님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그 아이에게서 정상적인 아이에게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말이 튀어 나왔다.
“당신들은(자신의 부모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제 집으로 돌아가거라. 내가 살 곳을 찾은 것 같으니…” 하는 것이 아닌가!
은사스님과 나는 당돌한 그 아이의 말에 놀라서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 부모님은 항상 겪은 듯이 개의치 않고는 큰스님께 다시 한 번 간청하였다.
“큰스님!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저희들의 책임으로 달게 받겠사오니 저의 자식을 꼭 좀 맡아 주세요.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이 애가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못할 말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이 정도인 걸 보니 여기 천자암과 큰스님과는 인연이 있나봅니다.”하면서 흐느끼며 부탁하자, 은사스님은 어린 소년에게 밖에 나가 있으라고 말하고는 아이 부모들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라 하셨다.
그 아이 아버지는 중학교 교사요,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인 두 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 그 아이가 여섯 살 되던 해부터 집에서 가출하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밥먹듯 하며 이웃집 아이를 괴롭히고 빈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고 장독을 깨고… 그래서 방에 가두어 두면 자해自害하여 상처투성이가 되고…
그래서 부모님은 자신이 열심히 다니는 교회 목사님을 통해서 안수기도를 하는 날이면 이층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기도하다 다행히 다리만 부러지....부모님께 욕을 하며 절에 데려 달라 고함도 치고 해서… 부모들은 이 애가 마귀에 걸려 있음을 확신하고는 효험 있는 기도원을 찾아 기도를 올렸지만 모두 헛일이었다.
두 분은 모두 교직에 몸을 담고 있는지라 자식으로 인한 그들의 마음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기독교 신자라서 애 말만 듣고 절에 데리고 가기란 자존심과 신앙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자신이 일학년 담임을 자청하여 자기애를 자신의 학교에 조기 입학 시켰다. 공부와 친구를 통해서 아이의 마음을 돌려 바로잡아 보려 했으나 아이는 학교에서도 친구의 공책을 찢고 유리창을 깨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장난도 치고… 이것도 허사였다. 부모님은 이제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어 자존심 상했으나 자식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아이 말대로 가까운 절에 데리고 갔으나
“이 절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하며 스님을 놀리곤 했다.
아이 따라 이 절 저 절 찾아다니다 조계산 천자암에 큰스님이 계신다는 말씀을 듣고 이렇게 찾아 왔는데 이 아이의 표정과 반응이 다른 절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은사스님께서 그 아이 부모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는 그 부모님에게 이제 집에 가시라는 말만 하시고 아무 말씀을 않으시자 그 부모님은 집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시는데 그 아이는 부모를 쳐다보지도 않고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자기자식이지만 마귀가 들었다는 굳은 신념을 확인한듯 자식을 포기하고는 어둡게 내려가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인연이 무엇인지? 종교가 과연 무엇인가? 한번 더 생각해보며 그 아이를 지켜보게 되었다.
은사스님은 그 아이와 함께 하루종일 이야기도 하며 손잡고 포행도 하시더니 파격적으로 하루만에 선주라는 법명을 지어 주며 삭발을 손수 하시며 앞으로 절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가르쳐 주었다. 천자암은 다른 절보다 한시간 앞당겨 새벽 두 시에 일어난다. 초발심으로 뭉쳐진 행자인 나도 그 시간에 일어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는데 그 아이는 어김없이 정각에 일어나 아침 예불을 보고 기도가 끝나면 아침 공양을 먹고는 바로 걸어서 애들 걸음걸이로 한시간 반이나 걸리는 아래 초등학교를 하루도 빠짐없이 육 년을 천자암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 아이 부모님들이 일년에 한두 번 아이를 살펴보러 절에 오면 그 애는 부모를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천자암에 온지 육 년이 되던 초등학교 육학년 여름방학 때 그의 부모님들이 찾아왔을 땐 나도 놀랬다. 그 아이가 부모님들에게 “아버님 어머님 오셨습니까.”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언제나 부모님을 본채 만채 하더니만… 그날 부모님은 자식을 부둥켜안고 감격해서 한 시간 정도를 울었을 것이다.
은사스님은 부모들을 방에 불러들여 이 아이가 마귀에 들린 것이 아니라 아이 할머니가 살아 생전에 절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당신들이 집안 대대로 내려온 종교를 달리하자 당신 아이가 할머니 숙업을 풀어 준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은사스님께서는 당신 아이는 스님이 될 운명은 아니니 겨울방학이 끝나면 집으로 데려가라고 하자 부모들은 잃어버린 아이를 되찾은 것에 감격하며 좋은 인연으로 제도해 주신 스님께 큰절을 올리며 앞으로 돌아가신 어머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며 평소에 법당 근처에도 가지 않던 그들이 그날은 오랫동안 법당에 머물며 부처님께 많은 절을 올린 것 같다.
지금도 우리들의 주위에는 부모와 자식, 형제들과 시어머니와 며느리간의 종교적 갈등을 어떻게 현명하게 풀어나가야 될지 우리들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겪거나 찾아오는 각종 어려움은 어떤 인因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매듭을 풀어 가는 지침이기도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