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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 공동체와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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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오성 1997년 10월 188호
요즈음 우리 절집안에 개인 ‘토굴’을 마련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수행의 노정에서 토굴은 ‘쉼터’ 로서, ‘노후 대책’ 으로서 필요하다는 인식이 깊이 깔려 있다. 이러한 오늘날의 토굴은 옛 스님들이 토굴을 피 나는 수행의 마지막 장소로 여겼던 것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수행하려는 의지도 승가 공동체의 의식도 사라진 사적 소유개념의 토굴이다. 이러한 형태는 승가의 근본 정신을 흐트려 놓을 뿐만 아니라 사원 경제를 낭비하게 하고, 재가신자들에게 올바르지 않은 신앙 생활을 하게 한다. 더불어 토굴은 ‘나의 것’ 이라는 사적 소유의 개념인만큼 집착과 이기심을 낳게 하기 때문에 불교가 이 시대에 서 있어야 할 근본 가르침을 잃게 한다. 그러나 대중의 승가 공동체가 개인의 삶을 보호해 주고 이끌어 주지 못한다면 이러한 풍조를 막을 길 없는 것이 현실의 상황이다. 또한 승가 공동체가 불교 본연의 수행풍토에서 벗어나 있다면, 개인의 욕구를 개별적으로 해결하려는 장소로 토굴은 더욱 선호될 수밖에 없다.
이즈음 우리는 토굴이라는 승가의 빗나간 수행 형태에 대해 어떻게 하면 승가의 올바른 풍토를 조성할 것인지 하는 대전제를 놓고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개인과 대중이라는 양면의 입장에서 이해가 선행되야만 한다. 결국 출가정신과 사문의 정신에 입각해서 어떻게 이해하고 풀어야 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잡아함 선니경仙尼經을 보면 출가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족정자族姓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여 집 없이 도를 배우고 범행을 닦은 까닭은 법을 보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증득하여 나의 태어남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서고, 할 일은 이미 마쳐 다시는 뒤의 몸을 받지 않을 줄을 스스로 알아 아라한이 되는 데 있다 하였다.
계속해서 개인의 사적 소유에 관한 교단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기 교단의 사문들은 사적인 재물을 축척하는 그 때 바라문들과는 달리 세속적인 모든 재물을 버리고 출가해서 걸식하며 수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붇다의 출가하는 과정에도 그 점은 잘 나타나고 있다. 수행의 길에서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 경제적 재물을 구하는 욕망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교단에서 개인적인 소유물은 말할 것도 없고 교단의 공유 재산도 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아無我의 존재임을 깨닫고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주체성을 확립하고자 함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초기 유행 생활에서 안거라는 형태의 집단 거주 형태가 나타나면서 이러한 종전의 형태는 바뀌어 나갔다. 승가 집단이 정주 생활로 바뀌는 과정에서 장자들이 승가에 ‘승원’ 을 회사하였다. 승원에는 종교적 집회, 수행 및 진리에 관한 토의를 할 수 있는 갖가지 시설이 정비되어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하여도 비록 승원의 소유가 개인에서 승가로 바뀌기는 했지만 희사 한사람이 그 재산을 자발적으로 관리하고 유지하였다. 그러나 붇다가 입멸하신 뒤 교단의 장로들과 대중부의 갈등이 표출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금은정金銀律’ 을 포함한 계율에 대한 열가지 해석상의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교단을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누는 발단이 된다. 상좌부는 사적 소유는 불교의 근본 입장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대중부는 수행에 도움이 된다면 소유를 허용해도 무관하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사적 소유에 대한 의식의 역사적 변화 과정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경제적 영향과 지배를 받지 않고 살아 갈 수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아무리 비경제적인 종교라 하더라도 현실의 경제 행위와 아무런 관련 없이 존립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소유의 개념을 얻게 된다. 소유의 개념이 수행과 대중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토굴이 과연 수행처로서, 대중 생활의 연장 선상에서 만들어졌는가 하는 점을 정리해야만 한다. 지금에 있어서 가장 염려스러운 점은 ‘대중적 사고’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큰 절도 객을 주연으로 받아들이며 원융 살림을 하는 곳이 없다.
화합 승가라고 부르는 절은 문중과 그 절의 영향력 있는 몇몇 스님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이것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승가공동체의 정신과 형태가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출가자가 어떠한 문제에서든지 출가를 했을 때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에 있다. 이러한 점을 승가는 대중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는지, 개인은 자신의 문제를 대중적 문제의식으로 반전시켜 보리심과 환희심을 발하게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현실이다.
반면 수행자가 저마다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산방야화山房夜話’에 나오는 상당히 오래 된 옛글에는 요즘의 수행지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무런 영험이 없는 것은 세 기지 까닭 때문이다. 첫째, 고인들과 같은 진실한 기지가 없고, 둘째, 생사와 무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일대사를 삼지 않고 있으며, 셋째, 무량겁래에 익혀 온 버릇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데 있다. 온종일 비록 남을 따라 화두를 든다지만 좌복에 앉자마자 혼침과 산란에 둘러쌓여 있고, 또한 구원 불퇴전하리라는 신심도 갖추고 있지 못히니 어려운 일이다”라 하였다.
지금의 지리에 서서 승려의 모습을 돌아본다. 우리는 생사와 무상을 일대사로 살고 있으며 영속하는 습의 번뇌를 전부 놓아 버렸는지 자문해 보지만 대답은 쉬이 들리지 않는다. 삭발하고 염의를 걸쳤지만 단절과 비상으로서의 승려의 세계를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비상하지 못한 승가에, 단절하지 못한 승려의 의식 속에 세간은 물에 비친 달처럼 그대로 따라온다. 헛된 욕망과 소유욕. 모든 것을 놓아 버렸다고 말하지만 아무 것도 놓아버린 것이 없다. 평화로운 공동체인 승가는 승려 낱낱이 그려 놓은 작위적인 욕망의 사슬에 갇혀 고통의 신음을 하고 있다. 승려가 없는 승단, 승려 모두가 자신의 안위를 위하여 믿을 수 없는 승단을 떠나 자신의 소유를 구체화 하고 있다면 대중이라는 말은 무색하기만 하다.
철저한 수행정신의 상정이었던 토굴은 이제 개인적으로는 소유욕의 구체적 표현으로 전락해 버렸고, 종단적으로는 대중 생활을 파괴하는 가장 첨예한 도구로 떠오르게 되었다.
우리의 공부는 세 가지 인연에 의해 좌우된다고 한다. 스승과 도량과 도반의 인연. 이 세 인연의 조화는 대중 생활 속에서 가능한 것이다. 토굴은 이 세 인연이 부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 곳은 또한 공부가 되어 더 이상 스승이나 도반을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스님들이 가행정진을 위하여 가야 할 곳이다. 익지 않은 공부를 들고 토굴을 찾는다는 것은 개인에게나 종단 전체적으로 볼때 커다란 손실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종단에서 토굴을 갖는다는 말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그것은 곧 종단자체에 대중적 사고와 대중적 토론이 차츰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대중적 사고가 사라지고 개인만이 남는다면 그것을 어찌 승가라 이름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우리 승가 대중과 저마다의 수행자들이 대중적 사고를 회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오늘날 토굴의 풍토는 이러한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한 예이다. 口